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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한번쯤 이들의 사상을 동경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무정부주의자'로 불리워진 이들의 삶의 족적을 가기를 원했다. 군부독재가 인간 본성과 양심을 억압한 것을 경험했던 대한민국을 살아간 일부는 저항정신이라는 명목으로 '아나키스트'를 동경했고 그들의 사상을 체화(體化)하는데 무던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키즘, 아나키스트의 개념 정립을 명확히 내리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단순히 그들을 그냥 무정부주의, 무정부주의자로 결론지었고, 오늘 역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도 국가와 정부가 자신을 옥죄고 있는 것을 거부하고 그들의 삶을 따라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29' 조세현의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을 만나보시라.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에 대한 이해가 우리에게 얼마나 빈약한지 채찍질하고 있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아무도 아나키즘이란 용어를 독점할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이는 아나키즘을 어느 누구도 명확히 정의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세현은 아나키스트와 아나키즘을 서양의 시각이 아니라 동아시아 시각에서 보았다. 그는 동아시아의 아나키즘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동아시아 아나키스트의 극적인 삶을 알아보고 싶은 충동 때문이다. '나의 양심은 나의 것이고, 나의 정의는 나의 것이고, 나의 자유는 최고의 자유'라 선언했던 역설의 명수 푸르동(Pieer Joseph Proudho), 자유에 대한 열정을 안고 '파괴는 새로운 창조'라면서 바리케이트 위에서 반역을 꿈꾸었던 바쿠닌(Mikhail Bakunin), 민중은 '권력에 쉽게 굴복하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숭배하지는 않는다'며 민중을 무한히 신뢰하고 사랑했던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양 아나키스트들의 삶은 한결같이 매우 열정적이다. 이런 모습을 동아시아의 아나키스트에게서도 찾아 그것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었다."(7쪽)

 

인간 자체를 지독히 사랑했다. 체제와 구조, 권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자신을 지독히 사랑하면서 다른 이가 가는 그 길을 막지 않았고, 다른 이가 가진 신념을 존중했다. 그 신념이 인간 자체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본의 아니키스트 '고토투 슈스이'는 사회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변화한 사람이다.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다른 신념으로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대자들로부터 '변절'의 표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선거를 통하여 권력을 창출하려는 의회주의를 비판하고, 직접 행동하기를 원하다 '대역 사건'으로 죽임을 당했다. 고토쿠는 일본의 애국주의를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애국심이란 국민의 허구와 미신의 결과이며, 애국주의란 야수의 천성이자 미신이요, 광란이자 허구이며, 호전적인 마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군국주의와 애국주의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로 보아 함께 부정했고, 세계주의에 기초해 민족과 조국을 초월한 보편적 인류애를 강조했다."(28쪽)

 

'단일민족' 개념이 철저한 우리에게 고투쿠 슈스이 발언은 이해할 수 없다. 국가주의 망령을 비판하는, 군부독재를 비판하는 이들도 애국심에는 관대하다. 국가주의가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것은 '국기에 대한 맹세'다.

 

얼마 전 문구를 조금 고쳤지만 아직도 양심과 사상을 옭아매고 있다. 모든 행사에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필수다. 거부하면 국가를 반역했다고까지 비판을 받아야 한다. 체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더라도 양심과 종교에 따라 국기에 대한 맹세는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일본제국주의의 코투쿠 슈스이가 지금 우리보다 훨씬 앞서 간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신채호는 과연 아나키스트인가? 민족주의자인가? 이승만과 안창호의 외교론과 준비론에 동의할 수 없었던 민족주의자 신채호! 그가 어떻게 아나키스트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많은 논의와 논쟁이 있다. 아나키스트는 민족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럼, 신채호는?

 

한국의 아나키스트에게는 민족주의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고 크럼은 비판했다. 그는 그 원인이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있다고 했다. 한국의 아나키즘은 민족주의에서 출발했고, 민족주의 때문에 타락했다고 비판했다. 이는 서양의 아나키스트들에게는 매우 예외적이다. 국제주의를 옹호하는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에 대하여 조세현은 말한다.

 

"근대민족주의는 영토와 국경을 확장하는 침략적인 제국주의로 나타나기도 하고, 타민족의 간섭을 반대하는 민족해방운동으로도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해서 민족주의가 무척 다의적인 개념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118쪽)

 

공산주의자가 민족주의자가 될 수 있다. 아나키스트도 민족주의자가 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자도 민족주의자가 될 수 있다. 즉 민족주의는 일차적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이차적인 개념일 수 있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02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에서 전재호는 민족주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째, 민족주의는 다른 이데올리기와 결합하여 자신의 목표를 구체화시킨다. 둘째, 민족주의는 진보와 반동이라는 양면성, 이차성을 갖는다. 이런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신채호가 민족주의자이면서 아나키스트로 전향할 수 있다고 본다.

 

개인의 자유, 평등의 세상을 꿈꾸면서 어떤 때는 폭력을 정당화했던 그들, 권력자·민족주의자·공산주의자의 경계의 대상이었던 그들, 어느 누구에게도 동의받지 못하였던 그들. 이제 그들의 사상이 새로이 날개짓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국의 일극주의, 국수주의, 폐쇄적 민족주의가 다시 창궐하는 현상 앞에 우리는 다시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를 생각하고 조명할 필요가 있다. 국가체제를 완전히 부정하고, 민족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우리는 분명 한 개인의 무한한 자유와 양심을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파괴하는 일을 존중할 수는 없다.

 

개인의 자유를 갈구했던 아나키스트들이 걸어간 삶을 다시 반추할 시간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  조세현 | 책세상 | 2001년 01월  ㅣ4,900원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

조세현 지음, 책세상(2001)


#아나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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