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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취재 물리치기


 아침에 ㅈ일보 기자한테 불쑥 전화가 왔습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 갈무리를 하거나 글쓰기를 하거나 ‘50미터 산업도로 반대 시민운동’ 일을 돕거나 헌책방 나들이를 하거나 여러모로 바쁘기 때문에 이곳을 찾아온다는 분이나 취재한다는 분이나 달갑지 않습니다. 제 자유시간을 빼앗겨 버리니까요. 그렇지만 ㅈ일보 기자는 자꾸자꾸 물고늘어집니다. “도서관을 찾아오겠다는 손님이라면 누구라도 사양하면 안 되겠지요.” 하는 말이 한숨과 함께 나옵니다.

 

 저도 참 딱합니다. 옳은 일이면 옳다 하고 그른 일이면 그르다 하면 되는데, 똑부러지게 끊지 못했으니까요.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일은 하고 저 일은 안 한다’는 잣대를 세우고 싶지 않고, ‘누구는 만나고 누구는 안 만난다’는 잣대 또한 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저한테 내키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이가 저한테 일깨우거나 가르치는 이야기가 없지 않습니다. 제가 반가운 사람이라고 해서 그분들이 늘 일깨움이나 가르침을 베풀지는 않아요.

 

 한참 글쓰기를 하던 낮, 드디어 ㅈ일보 기자가 찾아옵니다. 그동안 우리 도서관을 찾아온 다른 언론사 취재기자와 다르게 양복을 잘 빼입었습니다. 차림새부터 다르군요(하지만 이런 차림새를 안 느끼면 되는데, 양복 차려입은 사람들이 풍기는 냄새가 코를 간지럽혀서 자꾸 느끼게 됩니다).

 

도서관을 들어오며 처음 꺼낸 말은 “책이 많네요?” 속으로, ‘그래도 여태까지 온 기자하고는 보는 눈이 조금은 다른가 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기자도 다른 사람하고 그다지 다를 바가 없음을, 더욱이, 다른 기자한테서는 그렇게까지 느끼지 못했던 권위주의를 느끼면서, 대단히 거북살스럽습니다.

 

 이 기자 분께서는 우리 도서관에 왜 왔을까요. 취재를 하러? 취조를 하러? 저는 이 기자 분이 와도 나쁘지 않다는 뜻을, “도서관을 찾아오는 손님”으로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기자 분께서는 ‘손님’이 아니라, 먹잇감을 확 잡아채서 깃털을 뽑아다가 살을 발라내어 구워먹으려는 ‘사냥꾼’이라는 느낌이 자꾸자꾸 듭니다.

 

 

 시간이 아깝습니다. 몸이며 마음이며 괴롭습니다. 어떻게 하나. 이 사람을 어찌하나? 이 불쌍한 사람을, 이 딱한 사람을 어찌하나?

 

 기자 분께서는 이야기합니다. 자기 같은 기자들이 찾아와서 이렇게 취재하여 보도를 해 주면, 도서관에 찾아오는 사람이 더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자기 같은 기자들이 취재를 해서 신문에도 싣고 방송에도 실어 주기 때문에, 인천시장이 배다리 골목집 한복판에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 뚫는 일을 반대하는 까닭이라든지, 이곳 서민들 살림살이나 현실이 세상에 알려져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도 나오고 당신들이 하는 운동도 뜻을 이루지 않겠느냐고.

 

 그렇지만 제 속내로는 이분 말씀이 내키지 않습니다. 꼭 취재기자가 기사로 담아내야만 참과 거짓이 세상에 드러나지는 않으니까요. 기자힘을 빌지 않고도 동네사람들 힘으로 똘똘 뭉쳐서 잘못된 정부 정책이나 지자체 정책을 거스를 수 있으니까요. 힘이 들지만, 시간이 걸리지만, 사람품이 많이 들지만, 우리 스스로 이곳에서 조그마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서민들임을 뼛속 깊이 느끼면서, 다른 사람 손힘이 아닌 우리 손힘으로 마을을 가꾸며 고즈넉하게 우리 마을 문화를 일구면 좋다고 느껴요.

 

글재주 있는 동네사람이 없고, 여든 평생 붓 한 번 잡아 본 적도 없는 분들이지만, 자기들이 어처구니없이 짓눌리고 쫓겨나는 서글픈 마음을 울부짖는 목소리로 털어놓습니다. 저는 이분들 옆에서 귀와 눈이 되어 온몸으로 이야기를 듣고, 모자라나마 글과 사진으로 이분들 삶을 보여줄 수 있도록 쪼매난 소식지 하나라도 엮어내며 함께 싸웁니다.

 

 속사포처럼 터져나오는 ㅈ일보 기자 질문공세를 듣다가 머리가 어질어질 아파 옵니다. 문득문득, 이 기자 분은 기자된 사명이나 보람보다는 기자된 권위나 권력을 누리고 있구나 싶으면서, 이런 얄궂고 속보이는 마음을 얼마나 느끼고 계실까 궁금해지는 한편, 자기 스스로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거듭나지 못하는 몸가짐이 훤히 보여서 안쓰럽습니다. 왜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며 가꾸지 못할까요? 왜 자기 자신을 더 애틋히 돌보면서 보듬지 못할까요? 한 줌도 안 되는 돈과 힘과 이름에 끄달리는 삶이란 얼마나 애처로운가요.

 

 속사포 질문공세를 끊고 ‘취재거부’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취재는 바라지 않는다고, 우리는 이 도서관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도서관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북적거리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내가 헌책방을 열여섯 해를 다니며 묻혀진 책을 캐낸 까닭은, 그 책이 수많은 사람한테 널리 읽혀도 나쁘지 않지만, 누군가 한 사람한테라도 빛줄기가 될 수 있으면 좋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고, 내가 없는 살림에도 없는 달세를 빚지며 내는 가운데 도서관을 지키는 뜻은 많은 사람한테 많은 책이 아니라, 알맞은 사람한테 알맞은 책을, 바라는 사람한테 바라는 책을, 숨가쁘게 조이면서 조여지는 줄 모르는 자기 삶을 차분하게 풀어 놓으면서 자기 삶을 조용히 되돌아볼 수 있는 사람들한테 마음밭 갈고닦는 길동무가 될 책을 한 권 건네려는 데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고는 기자를 내쫓고 도서관 문을 쿵 닫습니다. 오늘은 일을 더 하지 말자. 바람 쐬자!

 


 〈2〉 마음스승


 사진기를 챙기고 길을 나섭니다. 동인천역으로 가서 전철을 탑니다.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면 좋을까? 떨리는 마음을 내리누르면서 책을 읽다가 덮고, 또 읽다가 덮습니다. 그래, 이곳으로 가자.

 

 노량진에서 내립니다. 뚜벅뚜벅 걷습니다. 언제나처럼 사람이 북적이는 학원거리 노량진. 이 노량진 학원거리를 채우는 수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요. 자기 삶을 가꾸는 지식을? 자기 마음을 보듬으며 세상을 굽어살필 수 있는 슬기를?

 

 학원거리에서 빠져나올 즈음, 건너편에 동작구청이 보이고, 오늘 제가 가려는 헌책방 코앞에 닿습니다. 〈책방 진호〉. 1994년부터 찾아온 이곳. 헌책방 아저씨는 1979년부터 노량진 한켠에 아주 자그마한 자리를 얻어 아주 조그맣게 헌책방을 꾸리시면서도 우리들한테 깊디깊은 책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늘 말수가 적은 〈진호〉 아저씨는 언제나 책에 눈을 꽂았고, 책손이 조금이라도 허튼 꾐수를 보일라치면 터럭만큼도 흔들리지 않고 딱 잘랐습니다. “내가 매길 만큼만 매긴 책값”이기 때문에 그 값에서 더 깎을 수 없다는 〈진호〉 아저씨 생각줄기입니다. “비싸게 팔아서 돈 벌려고 붙인 책값이 아니라, 손님이 집은 그 책한테 가장 알맞은 값으로 매긴 책값입니다” 하고 똑부러지게 말하면서 두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진호〉 아저씨 말본새입니다. “책은, 알아보는 사람한테 가는군요.” 하면서, 소중한 자료로 길이 이어갈 책을 즐겁게 사 가는 책손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진호〉 아저씨 마음결입니다.

 

 헌책방을 하려면, 아니 책방을 하려면, 아니 책을 사랑하거나 아끼려면, 누구보다도 노량진 〈책방 진호〉 아저씨한테 책을 배우고 책을 사면 좋다고 느낍니다. 한두 번 찾아간다고 해서 이런 마음을 배울 수 없지만. 한두 해 찾아간다고 해서 이런 마음됨을 얻을 수 없지만. 열 해나 스무 해를 찾아갔다고 해도, 제 뱃속을 채우려는 욕심그릇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아니 욕심그릇을 사랑그릇으로 고쳐쓰지 않는다면, 〈책방 진호〉 아저씨가 다부지고 억센 손길로 추슬러 놓은 책 하나하나에 배어 있는 땀방울마다 심겨진 넋을 껴안을 수 없지만.

 

 

 책방 앞에서 사진 두어 장 찍은 다음 안으로 들어갑니다. 가방을 내려놓으며 인사를 합니다. 책손이 없는 책시렁 앞에 섭니다. 책손이 있는 책시렁은 그분이 옆으로 옮겨갈 때 둘러보기로 합니다.

 

 먼저 <孝橋正一/편집부 옮김-로자 룩셈부르크>(여래,1983)라는 책이 보입니다. 일본사람이 로자 룩셈부르크 이야기를 평전으로 썼군요.


.. 사람은 항시 양끝이 타오르는 촛불과 같이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이 말은 로자가 그 생애를 통해서 가장 좋아한 말이었다. 이 말에서 다음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 한쪽 끝에는 작열하는 흰빛의 심지에서 타오르는 붉은 불꽃을, 다른 쪽 끝에는 대조적으로 파랗게 빛나는 불꽃이 타오르면서 한결같이 그것이 다 타들어갈 때까지 쉬지 않는 인간의 삶의 모습이다. 빨강과 파랑의 불꽃은 각기 사랑과 지혜를, 감정과 의지를, 역사와 자연을, 이론과 실천을, 그리고 예술적 감각과 과학적 법칙을, 그 외에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해 보아도 별 지장은 없을 것이다. 로자라는 여성은 이러한 대립과 모순의 인생을 역사적 사회의 생활과 운동의 실천 속에 몸을 던짐으로써 창조와 통일을 목표로 하여 자기 자신을 다 불태우기까지 무한히 멈추지 않는 노력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  〈21쪽〉


 ‘color books’라는 이름으로 나온 손바닥책 가운데 두 가지, <林 順信 엮음-驛幷>(保育社,1986)과 <加治木義博-燒酎入門>(保育社,1982)을 봅니다. <驛幷>은 기차역이 많은 일본 문화를 잘 보여줍니다. 기차역마다 ‘다 다른 선물 과자’를 만들어 판다고, 이 책을 엮어낸 사람은 자기가 돌 수 있을 만큼 일본 구석구석을 기차로 돌면서 ‘역 기념품 과자’를 사서 모았습니다.

 

 우리는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글쎄. 서울역이나 부산역이나, 목포역이나 대전역이나 그다지 다를 바 없는데. 전철역은? 인천 지하철과 대구 지하철이 무엇이 다를는지? 이야기가 없는 삶을 꾸역꾸역 꾸리고 있는 우리들이니, 이야기가 없는 책을 하염없이 꾸역꾸역 쏟아낼 뿐이고, 이야기가 없는 책이 재미있는 줄 알면서 꾸역꾸역 헛삶을 보내니, 우리가 낳아 기르는 아이들도 이야기가 없는 아이들로 키우기만 하는구나 싶은 느낌.

 

 <大川周明-中庸新註>(大阪屋號書店,1939)는 책이 예쁘장해서 고릅니다. 우리 오래된 고전문학을 이처럼 작고 가볍고 예쁘장하면서도 값이 싼 책으로 새롭게 묶어서 펴내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일을 하는 출판사가 있으면 얼마나 고울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만드는 사람도 웃고, 이 책을 사서 읽을 사람도 웃으며, 뒷날 이런 책을 물려받을 사람들도 ‘이야, 우리 어르신들은 책을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왔구나’ 하고 몸속 깊숙이까지 뜨거움을 느낄 텐데.

 


 〈3〉 레논한테는 요꼬 같은 사람


 <안토니 포세트/이해성 편역-존 레논, 신화와 비극 사이>(일월서각,1981)라는 책이 있습니다. 존 레논? 으흠. 어떻게 할까? 레논이라……. 난 서양 노래꾼은 달갑지 않은데. 비틀즈 노래도, 존 레논 노래도 잘 모르는데. 못 본 척 지나칠까? 그렇지만 이 책을 ‘일월서각’에서 펴냈잖아?


.. 나는 집안일에만 관여를 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 일도 정말 시간을 빼앗더군요. 나는 이제 모든 가정주부들의 비명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설명하려는 것은 모든 여자, 나의 어머니, 숙모, 당신의 어머니 등 모든 여자의 삶입니다 ..  〈182쪽〉


 책을 집어듭니다. 이 책을 사든 안 사든 제 마음이지만, 책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를 살펴보고 나서, 사든 안 사든 마음을 굳히자고 생각합니다.


.. 한 어린아이만을 위해서는 그럴 수 없겠지요. 몸만 다 큰 어른들의 쓸데없는 짓이지……. 그렇지만 어떤 문화적 상황에서도 어린아이들은 두 살이 될 때까지는 엄마 잔등을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지 않는 한 부모가 그들 곁을 떠나선 안 되지요. 준비가 되면 어린아이는 자연히 떠나게 되는 법입니다 ..  〈173쪽〉


 앞쪽에 나온 이야기는 훌쩍 건너뜁니다. 뒤쪽에 ‘사람들이 존 레논과 만나서 나눈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존 레논과 나눈 이야기가 책에서 1/2을 차지합니다.


.. 나는 여자에 관해 그 정도밖엔 모르는 노동계급 출신의 남성우월주의자에 지나지 않았읍니다. 요꼬는 나에게 여자에 대해 가르쳐 주었읍니다. 나는 엘비스와 많은 스타들처럼 서비스를 받는 것에만 익숙해 있었읍니다. 그런데 요꼬는 그것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그녀는 비틀즈를 퍽 우습게 알았읍니다. “비틀즈 따위가 도대체 뭐냐? 나는 오노 요꼬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말입니다 ..  〈151쪽〉


 존 레논은 당신한테 ‘오노 요꼬’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요꼬를 만나서 함께 지내기까지는 바보이자 멍텅구리로 세상을 헛살았지만, 요꼬를 깊이 알게 되면서 자기가 얼마나 바보이자 멍텅구리였는지 깨달으면서 새 삶을 산다’고 이야기합니다.

 

 노래꾼 존 레논은 확 바뀐 사람이군요. 스스로 바꾼 사람일까요? 그 뒤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4〉 내가 매여 있는 사슬


 고른 책은 셈대에 올려놓습니다. 〈진호〉 아저씨는 한 권씩 살피며 ‘음, 음.’ 하다가는 책값을 말씀합니다. 주머니에서 종이돈 몇 장을 꺼내어 책값을 치릅니다. 고른 책은 가방에 넣습니다. “오늘도 좋은 책 구경 잘하고 갑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하고 인사를 한 뒤 돌아나옵니다.

 

 이제 어디로 가 볼까. 터덜터덜 걸으며 초등학교 앞을 지나고 장승배기까지 걷습니다. 장승배기 〈문화서점〉 앞에서 잠깐 기웃기웃 하다가는 대방동 안쪽 골목길로 들어섭니다. 찻길 바로 옆 골목길이지만, 요만큼 들어왔다고 시끄러운 차소리가 거의 다 잠듭니다. 한갓지며 조용하군요.

 

 슬금슬금 옮기는 발걸음은 롯데캐슬 건물 건너편 작은 골목길 안쪽 깊숙이 들어가 있는 〈대방 헌책방〉까지 이어집니다. 건널목을 건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값비싼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대여섯쯤 휙 하고 가로지르며 지나갑니다. 건널목을 모두 지나고서 돌아보는데, 자전거 무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습니다. 어, 저 자전거 무리, 나는 왜 저 자전거를 ‘비싼’ 자전거라고 느끼지? 그 자전거들 상표가 무엇인 줄 알고, 그 상표가 붙은 자전거 값이 얼마 나가는 줄 안다고 해도. 저 사람들은 자전거를 상표값으로 타는 사람일 수 있으나, 자기가 좋아서 타는 사람일 수 있고, 그 자전거가 성능이 뛰어나니까 애써 일하여 번 돈으로 장만했겠지. 그런데 나는 왜 저 자전거가 돈값으로 보이지?

 

 세상 살아가면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은 하지만, 나부터 돈셈에 매여 있지는 않나? 세상 살아가면서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는 하지만, 나부터 이름값에 묶여 있지는 않나? 세상 살아가면서 권위나 권력이란 한낱 가랑잎도 안 된다고 읊고 있지만, 나부터 그 권위나 권력에 손쉽게 휘둘리거나 내 알량한 힘을 휘두르지는 않나?

 

 도서관 앞에 쪽지 하나 붙여야겠다. ‘책과 사람과 문화와 지역과 책방과 도서관과 우리 삶터와 자연 모두를 애틋하게 사랑하거나 돌볼 마음이 있는 기자가 아니라면 우리 도서관에는 발을 들여놓지 말아 주셔요’ 하고 적어서.

 

덧붙이는 글 | - 서울 노량진 〈책방 진호〉 / 02) 815-9363


태그:#책방 진호, #진호서적, #헌책방, #서울, #노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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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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