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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하다.

 

정부의 기사송고실 통폐합 조치 등에 대해 언론탄압이라며 한국언론사상 두 번째로 모임을 갖고 '언론자유 수호'를 외쳤던 신문·방송 편집국장과 보도국장들은 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자유를 그렇게 외친 분들이 어떻게 신문을 이렇게 편집하고 방송 보도를 이렇게 편성할 수 있을까.

 

정말 의문이다.

 

삼성그룹의 핵심 가운데 핵심인 구조조정본부에서 전무급 법무팀장까지 지냈던 사람이 폭로한 '삼성비자금 계좌' 사건이 어떻게 2단, 3단 기사 하나로 처리하고 끝낼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일단 폭로를 한 사람의 '비중'만 보더라도 결코 흘려듣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명색이 현직 변호사 신분이 아니던가. 법관 한 분이 법원통신망에 글 하나를 올려도 대문짝만하게 보도해왔던 신문과 방송이 아니던가. 신정아-변양균 사건 때 수천만 원의 그림 값까지도 시시콜콜 따져보았던 기자들 아니던가.

 

액수만 대략 50억 원 규모다. 그 기법이 또 기가 막히다. 차명계좌에 처음 들어보는 '보안계좌'까지 나온다. 은행까지 '공모'한 흔적도 짙다. 금융실명제를 위반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자소득세까지 대신 내주었다고 하지 않는가.

 

어디 그 뿐인가.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때 삼성의 대 검찰 로비 실상의 일단도 드러났다. 삼성으로서는 '성공한 로비'였다. 삼성의 비자금이 실은 수백억 원대라는 증언도 나왔다. 삼성의 '빛나는 전통' 이야기도 나왔다. 삼성은 돈 준 것을 먼저 불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신문들 면치레한 <한겨레>

 

어쨌거나 이렇게 재미있고, 이렇게 새로운 '뉴스'도 없다. 그런데 30일 신문들을 보자.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사회면 구석에 2단 기사로 처리했다. <동아일보>는 기사 제목 활자도 가늘디가늘다. 눈물겹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대부분 신문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3단 정도 처리가 고작이다. <경향신문>과 <서울신문>이 2면에 두드러지게 전진 배치한 것이 그나마 눈에 띈다.

 

이 사건을 제대로 대접한 곳은 <한겨레>가 유일하다. 1면 머리기사에 이어 3, 4, 5, 6면 4개 면을 깔았다. 한마디로 무식하게 치고 나갔다. 사설로 '삼성 비자금 실체 철저히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그나마 다른 신문들이 못한 면치레, <한겨레>가 '물량'까지 포함해 대신해 준 셈이다. '총량 불변의 법칙'이 이런 데서도 적용되는 것일까?

 

해도 너무 한다.

 

아무리 삼성이라고 하더라도 대다수 신문과 방송, 통신이, 그리고 기자들이 이렇게 꼬리를 내릴 수 있는가. 평소 하던 바에 비춰보더라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만약 청와대 전직 비서관 출신이 '비자금 50억을 관리한 통장'이 있었다고 '증언'했다면 도대체 어떻게 했을 것인가. 현대자동차 전직 임원이 똑같은 '폭로'를 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2, 3단 기사로 처리하고 끝냈을 것인가?

 

비자금 계좌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식'과 '자질', '윤리'의 문제도 나온다. 김용철 변호사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는 '호의호식'했고, '잘못된 길'을 걸었으며, '나쁜 짓'도 많이 했을지 모른다. 그것 또한 얼마나 좋은 기사 감들인가. 그런데 왜 이리 관심이 없나. 신정아의 '누드'까지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서비스했던 그 신문의 서비스 정신은 도대체 어디로 출장 나갔나.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언론 자유를 위해 그렇게 정부의 기사송고실 통폐합에 맞서 점거투쟁, 농성투쟁, 연좌투쟁까지 불사하던 기자들은 또 모두 어디에 가 있는가. 이번 사안이야말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또 언론의 자유와 그 지평을 넓히기 위해 기자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야할 일이 아닌가. 지금 언론자유를 위해 탄핵 할 자들은 누구인가.

 

오늘 신문은 이렇게 묻고 있다.

 

삼성이 그렇게 대단한가? 아니면 대다수 신문과 방송이 완전히 맛이 갔나? 그것이 아니라면 <한겨레>만 터무니없이 용감한 것인가?


태그:#삼성 비자금, #김용철, #삼성구조본, #차명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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