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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설악산
 아! 설악산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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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입에서 “저 산은 내게 오지마라 오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이라는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우리들도 바람을 따라 한계령 계단을 올라갔다.

새벽 한계령에서 오르는 계단 위에 둥글게 떠 있는 달은 눈이 시리도록 맑다. 사방은 조용한데 낙엽도 다 떨어져 앙상한 나무 잔가지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달이 투명하다. 잊으라 잊어버리라는 바람결의 외침에 우리들은 나무가 되었다.

“소소소 곁친 가지를 그릴 수 있다면, 오도도 쏟아지는 설벽을 그릴 수 있다면, 화가이지 못함이 잠시 서러워졌다”는 정금자 선생은 어둠에 죽고 달빛에 살아나 서로를 넘나들며 탐닉하고 있는 한계령의 선과 윤곽에 탄성을 질렀다고 했다.

 “아 -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죽었다. 죽어서 살아있는 한계령. 어둠에 죽고 달빛에 살아나는 선과 윤곽이 서로를 넘나들며 탐하고 있었다. 간결함이 품고 있는 깊은 오묘함에 후- 탄성이 터진다. 별이 박혔다.  흔들린다. 암벽에 걸린 소나무 한 그루. 그가 온 가을을 품고 있었다. 가을은 한계령의 밤. 하늘에 있었다. 아프고 황홀한 가을 산행. 나를 남기고 온 설악”

아직 지지 않은 달에 비치는 햇살
 아직 지지 않은 달에 비치는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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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단풍을 찾아 떠난 무박산행

황홀한 가을 산행을 위하여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29명은 26일 밤 10시 광주를 출발하였다. 목적지는 설악산 한계령으로 대청봉에 오르고, 희운각 대피소를 거쳐 천불동 계곡을 따라 설악동 소공원까지 코스이다. 밤 내내 차를 타고 가서 새벽에 산행을 하고 또 밤 내내 차를 타고 귀향하는 이른바 무박산행을 시작한 것이다.

한계령(1004m)에서부터 오르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 약 1km 정도 계속된다. 모두들 출발부터 헐떡거린다. 대부분 산행을 시작하면 처음 한 시간 정도가 몹시 힘이 드는데 계단의 연속이니 모두 지칠 수밖에 없다. 금방 온 몸에 땀이 흥건하게 젖는다. 모 방송국에서 설악산 산행에 저체온증을 주의하라고 하여 두껍게 껴입은 등산복이 더 무겁다.

하지만 계단 위 나무 가지 사이로 내려다보는 맑은 달이 큰 힘이 되었다. 정 선생의 말처럼 장애물에 가리면 캄캄해졌다가 다시 달이 보이면 환해지는, 능선의 선과 윤곽들이 서로 넘나들며 죽어서 살아나는 설악을 보면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다. 그러자 투명한 달이 우리들에게 내려온다.

약 1km 정도 많은 땀을 흘리며 능선에 도착하자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한계령에서 대청봉까지 8.4km에서 가장 힘든 곳을 지나 온 것이다. 이제부터는 오르락 내리락 능선을 따라가는 산행이어서 마음은 더 편해진다.

설악산 대청봉을 감싸고 있는 구름
 설악산 대청봉을 감싸고 있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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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보고 따라가던 산행은 약 두 시간만에 서북능선 귀때기청봉과 대청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올랐다. 이 서북능선에 오르자 대청봉 너머 해는 이미 솟아 있었다. 그렇지만 주변에 펼쳐진 붉은 기운들이 우리들에게 황홀함을 가져다주었다. 모두 제자리에 서서 탄성을 질렀다. 앞에는 떠오르는 햇살에 비친 붉은 기운이 출렁이고, 뒤에는 투명하게 우리들을 뒤따라오던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대청봉 위에 쌓인 구름이 감동적이다. 하얀 눈이 가득 쌓인 것처럼 햇살을 받은 구름이 대청봉 위에 펼쳐져 있다. 아늑하고 부드럽게 펼쳐진 구름은 어떤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것 같이 대청봉 위를 감싸고 있었다. 그 신비한 광경에 우리들은 옷깃을 여미며 바라보고 있었다.

햇살을 받고 뻗어 있는 설악의 영봉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두근거리는 설악의 능선에 서서 수없이 펼쳐진 바위들의 향연에 우리들은 말없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바위 하나하나에 내 마음을 두드린다. 끝청(1604m)까지 이어지는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바위들, 과연 설악이었다. 모두 설악의 능선들과 바위들에 마음을 빼앗겨 말이 없다.

대청봉 가는 능선에서 바라보이는 바위
 대청봉 가는 능선에서 바라보이는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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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의 바위들
 설악산의 바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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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의 바위 틈새의 소나무
 설악산의 바위 틈새의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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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소나무만으로도 아름다운 천불동계곡

10시에 중청대피소에 도착하였다. 중청대피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대청봉(1708m)에 올랐다. 대청봉을 알리는 표지석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는데 모두 들떠 있다. 맑은 날씨에 사방으로 뻗은 설악의 능선과 용아장성, 공룡능선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이른 점심을 먹고 11시에 중청대피소를 출발하였다. 소청에서 희운각 대피소로 내려가는 길은 아주 급경사이다. 1.3km 정도의 길 대부분이 계단으로 되어 있다. 오르는 사람들은 몹시 힘들어 하는데, 내려가는 우리들의 발걸음도 몹시 무거웠다.

천불동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너무 아름답다. 능선은 온통 기묘한 바위들로 빼곡하고 그 바위 틈새에 푸른 소나무들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다. 양쪽의 기암절벽이 천개의 불상이 늘어서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천불동, 웅장한 기암절벽과 톱날 같은 침봉들 사이로 깊게 패인 협곡에 폭포와 웅덩이가 연이어 있어 설악산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이자 우리나라 계곡의 대명사이다.

설악산 용아장성 능선
 설악산 용아장성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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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천불동 계곡의 바위
 설악산 천불동 계곡의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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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운각대피소 부근의 나뭇잎들은 대부분 지고 푸른 소나무만 우거져 있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양폭을 지나 오련폭포를 내려오니 나뭇잎의 붉은 기운들이 그대로 있었다.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따라 계곡에 하얗게 놓여 있는 커다란 바위들은 둥글둥글하게 닳아 세월의 아쉬움까지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귀면암에서부터 더 많아지기 시작한 단풍은 비선대에 다다를수록 황홀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웅덩이의 맑은 물까지 붉게 흔들거렸다. 설악의 단풍은 대청봉에서 내려와 이제 아래 부근에서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비선대에는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설악의 단풍을 즐기고 있었다.

새벽에 한계령을 출발하여 대청봉에 오르고, 이어서 천불동계곡을 따라 설악동 소공원까지 약 20km 12시간의 산행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발은 무거워 자꾸 땅에 달라붙지만 마음에 남아 있는 설악은 더 크게 우리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동행한 김애영 선생은 하루에 산길 20km를 걷다보니 종아리가 아프지만 멋진 추억을 간직한 설악산 산행이었다고 좋아한다.

“새벽 은은한 달빛에 취해 걸으면서 환상적인 구름에 달이 막 떠다니고 불그스레한 해가 나올 무렵의 하늘 빛깔들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 행복한 산행이었습니다. 부드러운 구름이 그리 멋진 광경은 또 처음이었습니다. 삐쭉삐죽 바위와 노란 빨간 단풍들은 하나님의 작품을 칭송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설악산 천불동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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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당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설악산을 찾아 크게 혼잡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찾았을까? 그것은 자명하다. 설악은 능선의 웅장함, 기기묘묘한 바위들, 단풍, 물, 계곡, 나무, 그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이 최고이기 때문에 찾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도 밤새워 차를 타고 와서 산행을 하고 또 밤새워 차를 타고 귀향을 한다.

설악의 그 뾰쪽뾰쪽한 바위 하나 하나의 내 마음을 실어 주었더니 설악은 내 마음에 더 크게 자리잡는다. 내려다보는 맑은 달을 보며 옮겼던 발길에 스며오는 설악의 살아 있는 숨결이 더 크게 내 몸에 퍼진다. 나를 남기고 온 설악이 내게 가득 차 있다. 황홀한 가을 산행, 나를 남기고 온 설악이다.

설악산 천불동계곡의 단풍
 설악산 천불동계곡의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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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을여행, #설악산, #한계령, #대청봉, #천불동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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