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한적한 길을 걸으면서 머리도 식힐 겸 생각을 정리하고자 단풍이 무르익은 공원을 찾았다. 호수 주변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한 바퀴 돌고 천천히 정문을 향해 가던 중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어스름한 그곳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한 사람이 보면대(악보를 놓는 대)를 펼치고 악보를 놓더니 색소폰을 꺼냈다.

 

무심코 지나쳐 정문을 향하던 중 애절한 색소폰 연주가 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구성진 옛 노래를 연주하시는 모습에 뭔가 사연이 묻어나는 것 같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곳에 자리를 잡고 연주를 감상했다. 가까이서 뵈니 얼핏 보기에도 연세가 꽤 들어 보이시는 할아버지 주름진 골 사이로 세월의 무상함이 묻어난다.

 

 

잠시 쉬는 틈을 타 어디에서 왔으며 연주는 얼마쯤 하는지, 이곳에는 언제 오는지, 젊은 사람들도 연주하기 어려운 색소폰을 연주하시게 된 동기 등을 물어봤다. 올해로 73세인 최승천 할아버지는 인천에서 아들과 함께 사신단다. 현재도 건설회사 현장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할아버지는 굉장히 열정적인 분 같다.

 


색소폰 연주는 3년 정도 되었고 한가한 오후 시간을 택해 자주 오신단다. 한 번도 불어보지 못한 나는 그저 부러울 뿐이다. 색소폰 연주 실력이 대단하다. 얼핏 보니 보청기도 끼셨다. 보청기를 끼고 음악을 하신다.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셨으리라 생각을 해 본다.

 

하기야 음악의 천재 베토벤도 들리지 않은 가운데 많은 명곡을 작곡하지 않았던가. 세월에 흐름이 그분의 귀를 먹게 했을지언정 타오르는 열정은 잠재울 수 없었기 때문에 부단한 노력으로 색소폰 연주를 하시는 게 아닌가 싶다.

 

 

 

점점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요즈음, 집에서는 자식들과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백화점 직원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백화점으로 출근하는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그래도 조금은 덜 번잡한 문화센터 부근에는 눈치가 덜 보이고 편안한 의자도 있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니 이보다 더 좋은데가 어디 있겠수'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허전함과 쓸쓸함이 묻어났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있을까? 좀 더 적극적인 생활태도로 자기 자신에게 맞는 취미 생활을 찾아 열심히 노력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단풍이 곱게 물들고 낙엽이 쌓인 시월의 마지막 날, 작은 음악회에 초대해준 고마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나에게 할아버지께서 한 말씀 하신다.

 

"사진 잘 나오면 한 장 보내주시구려…."


태그:#황혼의 부루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세상을 오늘도 나는 꿈꾼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