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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서기하역을 맡은 문소리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서기하역을 맡은 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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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 문소리씨 안티팬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바람난 가족> 등을 보며 그의 연기에 감탄한 바 있다. 그리고 '참 매력적인 배우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왕사신기>에서 그가 기하의 성인역으로 처음 등장하는 순간, 마음 한 구석에서 강렬하게 밀려드는 실망감을 어찌할 수 없었던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그것은 사실 애당초 그녀의 탓이라기보다 일정한 미녀상을 가슴 속에 만들어 놓은 내 탓이 가장 크다.)

"어째서? 어째서?"

성인이 된 기하역으로 그녀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내가 한 일은 머리를 감싸쥐고 '어째서'를 끊임없이 외친 것이다. 믿고 싶지 않았다. 왜? 왜 믿고 싶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답한다는 것이 사실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분명 난 그녀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녀의 연기력은 분명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그런 능력 있는 그녀가 내가 재미있게 보고 있는 <태왕사신기>에서 한 축을 담당한다면 프로그램의 완성도도 높아질 터,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싫었다. 그냥 싫었다! 아니 잠깐, 정말 그냥 싫었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보다 솔직하게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냥은 아니었다. 돌려 말하지 말자. 그래, 그저 그녀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예쁘다는 것은 상대적 관점이니 내 관점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정말 인형처럼 예쁜 여배우들이 넘쳐나는 연예계만 놓고 보자면 그녀는 분명 예쁜 얼굴이 아니다. 만약 그녀가 청순하고 인형처럼 예쁜 이미지였다면 과연 '미스 캐스팅 논란'에 그토록 시달렸을까?

연기력이 아닌 외모 때문에 미스 캐스팅 논란?

립싱크 가수가 부족한 가창력 때문에 논란에 휘말리는 것처럼 연기자라면 부족한 연기력 때문에 미스 캐스팅 논란에 휘말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의 '미스 캐스팅' 논란은 연기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 기하의 이미지가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역시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 기하를 맡은 아역 배우는 꽤 예뻤다. 그리고 무엇보다 순수한 느낌이 묻어났다. 그런 순수한 느낌을 성인 배우가 이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예뻐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청초하거나 청순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배우여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이미지를 '문소리가 갖고 있냐?'고 묻는다면 냉정하지만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것이 나만의 생각이 아닌 듯 '미스캐스팅' 논란이 일었다. 그것도 '연기력'이 아닌 그녀의 '외모', '이미지' 때문에!

그렇게 그녀에게 '미스캐스팅' 딱지를 붙여준 이들을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비판이라니, 나 역시 그들의 의견에 적극 동조했는데 비판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이 곳을 빌어 적어도 나 스스로에 대한 자기 비판은 좀 하고 넘어가야겠다.

좀 불편하긴 하지만 스스로 가슴을 열고 들여다보면 '미스캐스팅' 이라며 제작진을 비판한 근원적 힘은 내 마음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외모지상주의'였다. 어린 시절 예쁘장한 기하를 보면서 묘한 만족감을 느꼈던 나는 성인이 된 기하를 보면서도 같은 감정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드라마, 영화, 만화를 보다가 남자 주인공이 굉장히 예쁘고 청초한 이미지의 여주인공과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 할 때 자신의 가슴도 찢어지는 듯하고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게 되는 거 말이다. 난 이런 감정을 내 눈에, 내 마음에 그 여주인공이 예뻐 보일 때만 느끼곤 했다.

그런데 그 여주인공이 내 눈에 예뻐 보이지 않으면 어떨까? 그때는 괜한 영화 제작자나 여주인공을 탓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감정 이입이 하나도 안 되네'하는 핑계를 대면서. 문소리씨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성인이 된 기하를 바라보는 내 감정이 그랬다.

분명 담덕이 기하를 바라보는 마음은 애절한 것일 텐데, 난 그 마음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저렇게 예쁘지도 않은 여자를 무엇 때문에 좋아한단 말인가! 게다가 담덕을 좋아하는 또 다른 여인 바로 수지니! 이 수지니의 존재로 인해 나는 더욱더 기하에 대해 애절한 마음을 갖는 담덕의 심정으로 빠져들 수 없었다.

예뻐야 감정 이입이 되지!

수지니 역을 맡은 이지아가 1981년생, 기하역을 맡은 문소리가 1974년생, 이러다 보니 극중이라지만 나이 차이가 안 느껴질 수가 없었다. 결국 혼자서 이런 말을 되뇌기까지 했다.

"이거야 워 이모랑 조카랑 한 남자 두고 사랑 싸움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드라마도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할 터, 연상인 여자와 연하인 남자가 사귀는 것이 대세인 시대라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남자들이 어린 여성을 좋아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인데 훨씬 어린 수지니를 두고 나이 많은 기하를 좋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말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투덜대고 있었으나 역시 결론은 문소리가 내가 생각하는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미녀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그것 때문에 나는 성인 기하를 열연하고 있는 문소리를 미워하고 안 어울린다고 비판하며 다른 여배우가 캐스팅 되었으면 하는 어이없는 생각까지 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토록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 요새 들어 점점 기하역에 문소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 기하가 담덕을 미워하면서 그와 적이 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하가 조금씩 담덕의 반대편에 서서 악녀 이미지로 변해가면서 나도 모르게

"역시 문소리가 연기는 잘하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마음의 변화란 말인가. 착한 기하 역을 할 때는 문소리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가 악한 기하 역으로 변하니 문소리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다니! 이것은 마치 실생활에서 내가 보기에 못 생긴 여자를 보면 '저 여자 분명 성격 나쁠 거야'라고 생각하고 예쁜 여자를 보면 '이야 분명 마음씨도 고울 거야'라고 믿는 꼴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이를 한심하게 쳐다봤으면서도 정작 내 마음 속 깊은 곳은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원할 만큼의 예쁜 여자가 아니라면 악한 역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아 정말 나는 나쁜 남자구나.' 이렇게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악녀로 이미지 변신하니 미스 캐스팅 오명 벗었다라고?

'문소리 미스 캐스팅 오명 벗어'

하필 그녀가 담덕이 적이 된 이 시점에서,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지. 사실 어떻게 보면 <태왕사신기> 미스캐스팅 논란은 문소리를 미스 캐스팅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 그리고 또 이름 모를 어떤 이들 가슴 속에 머리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미녀의 모습들과 그녀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까?

아니라고? 어린 시절 기하 이미지와 문소리 이미지를 연결시키지 못한 것이 비판의 핵심인데 무슨 소리를 하냐고? 그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가슴에 손을 얹고 이거 하나만은 꼭 물어봐라. 착한 모습일 때 기하를 연기하는 문소리와 악한 모습일 때 기하를 연기하는 문소리 둘 중 어느 쪽이 드라마에 몰입이 잘 되는지 말이다. 둘 다 똑같다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당신도 나처럼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태그:#태왕사신기, #서기하, #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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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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