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3) 인간과 디자인


- 글쓴이 : 픽터 파파넥
- 옮긴이 : 한도룡, 이해묵
- 펴낸곳 : 미진사(1986.6.25.)


 하루하루 자취를 감추어 가는 골목길을 찾아다니며 걷습니다. 큰길에서는 차소리가 너무 시끄럽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골목길을 찾아듭니다. 차소리가 더 들려오지 않는 골목길을 걸으며 비로소 한숨을 돌립니다. 골목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차소리에 시달리지 않아야 마음을 놓고 잠이 들거나 쉬겠지요.

 

 차소리에 시달리지 않아야 마음 놓고 쉴 수 있기로는, 길거리에서 자라는 나무도 마찬가지이며, 고속도로와 국도 가 논밭에서 자라는 곡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눈에 뜨이지 않는 깊은 산속에 숨어 지내는 들짐승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도시에서 엉겨붙고 있는 비둘기며 까치며 참새며 마찬가지이겠지요.

 

 시끄러운 차소리를 내내 들으면서 마음이 차분하거나 따뜻할 목숨붙이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람들은 온통 시끄러운 차소리가 범벅이 되도록 도시를 짓고 늘리고 키웁니다. 골목길을 없애고 빌라나 아파트를 올립니다. 입으로는 문화니 예술이니 경제니 읊지만, 몸으로는 돈벌이 되는 쪽으로만 움직입니다. 이른바 ‘번화가’는 온통 술집과 밥집뿐. 번들번들 북적북적이어야만 돈이 잘 벌릴까요? 그러면 이렇게 하여 번 돈은 어디에 어떻게 쓰나요?

 

 처음부터 바퀴걸상이 들어갈 틈을 마련하지 않은 버스와 전철입니다. 시늉으로 바퀴걸상 자리를 마련하기는 했으나, 바퀴걸상으로 움직여야 할 사람들은,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러 가는 거님길에서 높은 턱에 걸리고 짧은 신호 건널목에서 아찔해 하며, 수많은 계단과 군데군데 걸림돌 많은 동네길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처음부터 자전거가 오갈 자리를 마련하지 않은 찻길입니다. 자전거는 찻길로도, 거님길로도 다닐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우리 나라 법규입니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말은 코흘리개 아이들도 읊고 있지만, 어느 하나 몸으로 움직이거나 나서지 않습니다. 입으로 읊는다고 이루어질까요. 십자가를 보며 불상을 보며 절을 하고 비손을 한다고 이루어질까요. 우리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데, 우리 손으로 바꾸지 않는데, 우리 몸으로 함께하지 않는데.

 

 사람을 생각하는 일과 놀이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람을 생각하는 책과 학문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람을 생각하는 경제와 문화는 어디에 있지요. 사람을 생각하는 교육과 예술은 어디에 잠들어 있나요. 사람을 생각하는 디자인은, 우리 나라에 있기는 있는가요.

 

 

(14) 지나온 세월


- 글 : 이방자
- 펴낸곳 : 남영문화사(1974.7.30.) / 비매품


 앞머리를 ‘ㅎ’으로 쓰는 이름나고 큰 출판사가 여럿 있습니다. 이 가운데 어느 ㅎ출판사에서 면보기를 했던 분이 출판편집자 인터넷방에 글을 하나 남깁니다. “면접내용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라는 말로 첫머리를 여는 글은, “평소에 좋아하던 출판사라 기분 좋게, 기대감에 부풀어 그 회사 면접장소에 갔습니다. 저는 출판사는 소위 식자들이 많아서 교양있는 질문만 할 줄 알았죠. 그 출판사의 사장(워낙 출판사가 유명하다 보니 익히 알려진 인물이죠)이 하는 질문인즉슨, - 집이 자택이냐, 세냐? - 일반주택이냐, 아파트냐? - 몇 평에 사느냐? - 아버지와 어머니 직업은? - 아버지 직업은 얼마나 하신 거냐? -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 차는? 등등 ……” 하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면보기를 하신 분은 ㅎ출판사 사장이 피우는 거드름에다가, 자기가 써낸 희망연봉이 너무 많다는 소리까지 들으며 화가 치밀어올랐다고 합니다. “책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뒷전이고 그 외부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고 물어 보는 것은 정상인가요? 아니면 제가 오버하는 걸까요? 제가 면접보는 사람이라면 오직 책을 얼마나 좋아하고 그 사람의 가능성은 얼마나 있는 사람인지만 볼 텐데 말이죠” 하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제가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에도 다르지 않았고, 제 앞에 일하던 분들 때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대로라면 앞으로도 죽 이어갈 곳이 많을 수 있겠지요.

 

 세상 즐겁고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 팍팍하고 미웁고 못나게 살아가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세월이 지난 뒤 우리들은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을 어떻게 돌아볼 수 있을까요. 죽음을 앞두고 자리에 누워 몸도 못 움직이는 그때에 이르러서도 ‘듣는 쪽에서는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생채기’ 남길 말을 아무렇게나 뇌까릴까요.


.. 나는 결국 한국과 일본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열한 살에 고국과 부모를 떠나 온 외로운 그분의 따스한 벗이 되기를 결심했었다 ..  〈머리말〉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려고 했던 일본사람들은 숨을 거두는 자리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식민지 조선에서도 잇속을 챙기며 살던 한국사람들은 숨을 거두는 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을까요. 봉건사회와 식민지사회와 독재사회를 거쳐 오며 늘 짓눌린 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은 세상뜨는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할까요.

 

 

(15) 노동헌장 (교황 레오 13세 회칙)


- 옮긴이 :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 위원회 교육분과
- 펴낸곳 : 성바오로출판사(1982.7.5.)


.. 노동자들이 하느님을 공경하여 종교적 가르침을 충실하게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주일과 대축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강력하게 권유해야 한다. 우리들 모두의 공통된 어머니인 성교회를 사랑하고 존경하도록 노동자들을 일깨워야 하며 아울러 계명을 착실히 지키고 교회의 성사를 자주 받도록 해야 한다 ..  〈68쪽〉


 “사용자의 의무 가운데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노동자가 정당하게 받아야 할 몫을 제대로 줌으로써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28쪽)”고 말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주는 몫’이 얼마만큼인지를 밝히지 못한다면, ‘노동자한테 제몫을 주지 않는 사용자’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따지지 못한다면, ‘노동자한테 제몫을 주지 않아서 말썽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헤아리지 않는다면, ‘노동자한테 제몫을 안 줄 뿐 아니라, 사용자한테 항의하는 노동자를 짓밟고 누르며 입을 막는 사용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노동헌장>이란 사탕발림으로 가득한 종이꾸러미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요.

 

 “노동의 결실이 노동한 당사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지극히 공정하고 정당하다(18쪽)”고만 말하고, 이 말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를 찬찬히 파고들기보다는 “사회주의라는 그릇된 사상에 물들어 최대한 혼란을 조장시켜 폭력을 선동하고 혁명적 변화를 열망하는 자들도 적지 않다. 국가의 공권력은 이같은 선동자를 규제하여 그들의 기만적 전술로부터 노동자를 지켜 주고, 약탈의 위험으로부터 합법적 재산소유자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 개입하여야 한다(48쪽)”고만 읊는다면, 무엇이 올바름이고 무엇이 참일까요.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라는 제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천주교나 불교라는 종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울에 살든 봉화에 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땀흘려 일한 사람은 땀흘린 대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야 하’며,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에서는, 땀흘린 사람들 대가를 얌체처럼 빼돌리거나 울궈내는 사람들을 꾸짖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면, 이런 이야기를 온몸으로 옮겨 보일 수 없다면 <노동헌장>은 누구한테 바쳐지는 말씀모음이 될까요

덧붙이는 글 | 비록 새책방에서 사라지고, 도서관에서도 찾아보기 수월하지 않은 책들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무엇이고, 우리 삶이란 무엇인지, 또 사람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책들이라고 느끼며, 소개하는 글을 적어 봅니다.


인간과 디자인

빅터 파파넥, 미진사(1986)


태그:#헌책방, #절판, #빅터 파파넥, #이방자, #천주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