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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 일곱 시 오십 분, 사진기 하나 어깨에 걸치고 길을 나섭니다. 이즈음 동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학교 가는 길을 따라서 함께 걸어 보기로 합니다.

남달리 도드라지지 않은 머리집이지만, 오랜 세월 동네사람들 머리를 손질하며 골목길 한켠을 조용히 지켜 왔습니다.
▲ 골목길 머리집 남달리 도드라지지 않은 머리집이지만, 오랜 세월 동네사람들 머리를 손질하며 골목길 한켠을 조용히 지켜 왔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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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나서며 맨 먼저 마주하는 골목길 가게는 머리집. 머리 깎을 일이 없어 머리집을 안 가 본 지가 참 오래되었습니다. 딱히 머리를 기르려고 기르지 않았고, 목까지 닿는 단발머리였다가 등에 닿는 긴 머리가 되면서, 이렇게 긴 머리가 되니 따로 간수하지 않아도 좋고, 고무줄로 묶어 놓으면 일하기에도 좋아요. 머리 깎는 돈 나가지 않으니, 그만큼 책값으로 더 쓰거나 살림돈을 아낄 수 있습니다.

동네 골목길을 걸어가는 학교길입니다. 학교 둘레에 '유해업소나 시설'을 들이지 못하도록 조례나 규정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학교 둘레에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낸다면, 이 길 둘레에서 배우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은 어찌해야 할까요.
▲ 학교 가는 길 동네 골목길을 걸어가는 학교길입니다. 학교 둘레에 '유해업소나 시설'을 들이지 못하도록 조례나 규정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학교 둘레에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낸다면, 이 길 둘레에서 배우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은 어찌해야 할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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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영화정보산업고등학교 아이 하나를 만납니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이 학교로 몰려들고 쏟아져 나옵니다. 이 아이들은 자기들이 학교를 오가는 길 한복판에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가 뚫리려 한다는 일을 알고 있을까요. 그 길 때문에 앞으로는 학교 길을 마음 놓고 걸을 수 없고, 먼지와 소음에 시달리며, 여름철 한낮에는 창문도 못 연 채 교실에서 갇혀 지내고 땀을 뻘뻘 흘려야 하는 줄 내다볼 수 있을까요.

아니, 동네 한복판에 산업도로를 뚫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보지 않은 사람들이며, 동네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공무원이겠지요. 오로지 길그림책에 적힌 대로, 책상에서 길그림(지도, 지적도)으로만 펼쳐 보며, 반듯하게 길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개발업자이겠지요.

동네 주민들 반대에 못이겨, 인천종합건설본부에서는, 공사를 한동안 '멈추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울타리를 쳐서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또 안쪽이 공사를 하며 어떻게 망가지는지 안 보이도록 가려 놓습니다.
▲ 임시로 막은 공사터 동네 주민들 반대에 못이겨, 인천종합건설본부에서는, 공사를 한동안 '멈추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울타리를 쳐서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또 안쪽이 공사를 하며 어떻게 망가지는지 안 보이도록 가려 놓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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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은 사진에만 나오는 자연이 아닙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만 멋들어진 자연 풍경을 즐길 수 있으면 될까요. 집집이 일터마다 학교마다 들여놓는 정수기가 우리 마실 물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지켜 줄까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한테도, 학교 길에 잠깐 멈추어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을 보고 햇볕을 쬐고 바람을 느낄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길만이 아니라, 보송보송한 흙을 밟고 꺼끌꺼끌한 모래를 밟으면서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을 느낄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도시 문화란, ‘명품 도시’란, 쇠붙이와 시멘트로 빚어낼 수 없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먹고 마셔야 하는 모든 먹을거리가 태어나는 흙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좀 더 많이 모여들어 부대낄 수 있는 터전을 이루어내는 일이 제대로 된 도시 문화요, ‘명품 도시’로 가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주민 복지, 주민 삶하고는 아랑곳없는 공사를 인천시에서 밀어붙이건 말건, 골목집 꽃그릇에는 푸성귀와 온갖 들꽃이 쌀쌀한 날씨에도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 골목집 1 주민 복지, 주민 삶하고는 아랑곳없는 공사를 인천시에서 밀어붙이건 말건, 골목집 꽃그릇에는 푸성귀와 온갖 들꽃이 쌀쌀한 날씨에도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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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도로 공사가 잠깐 멈춘 자리’ 앞에 있는 세거리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사람과 차가 덜 다니는 길이 오른쪽 골목길. 철길을 따라 걷는 길. 지난날에는 사람 살던 골목집이 옹기종기 있던 길.

인천에서 용산을 오가는 급행전철을 동인천까지 늘리면서, 이곳 금곡동과 창영동 골목집이 많이 헐려 나갔습니다. 급행전철은 서울사람이 인천으로도 찾아와서 삶과 문화를 누리거나 즐길 수 있게 하지 않는데, 오로지 인천사람이 서울로만 빠져나가게 하는 길인데, 그런 길을 놓으면서 조그마한 터전 다부지게 지켜나가는 사람들 삶터를 밀어냈으니.

박이 지붕에서 자라는 골목집. 덩굴풀이 벽을 타고 오르는 골목집. 길과 바로 맞닿아 있는 집이 있는 골목집. 골목집 동네는 조용하기도 하지만, 골목집에 사는 사람부터 이웃사람한테 시끄러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 골목집 2 박이 지붕에서 자라는 골목집. 덩굴풀이 벽을 타고 오르는 골목집. 길과 바로 맞닿아 있는 집이 있는 골목집. 골목집 동네는 조용하기도 하지만, 골목집에 사는 사람부터 이웃사람한테 시끄러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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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던 걸음을 늦춥니다. 아예 우뚝 섭니다. 왼편으로 죽 이어지는 골목집을 바라봅니다. 골목집 할아버지 한 분이 아침 빨래를 하셨는지, 한 손에 빨래를 얹어서 담벼락 빨랫줄에 하나하나 널어 놓습니다.

학교 앞에서 분식집을 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오기 앞서 부지런히 비질을 하며 길을 씁니다.
▲ 학교 앞 길 학교 앞에서 분식집을 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오기 앞서 부지런히 비질을 하며 길을 씁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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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봅니다. 오늘 날씨는 어떠려나. 해가 좀 나려나. 모르겠는데. 이것 참. 해가 갈수록 하늘을 종잡을 수 없으니. 비가 올지 맑은 날이 될지, 매지구름으로 뒤덮을지 어떻게 될는지.

무지개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가 떠오르지 않고, 새로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무지개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없고. 이제 아이들한테 무지개는 더는 볼 수 없는 자연 모습이기 때문에, 아이들 입에서도 ‘무지개’라는 말은 그예 사라지고 말까? 만화책에 얼핏설핏 비치는 무지개를 보며, 색연필로 일곱 줄 죽 긋는 무지개만을 생각하지는 않을까?

골목집에서 사는 이들은, 아침저녁으로 골목길을 걸으며 일터를 오갈 때마다, 길 한쪽에, 또는 담벼락 한쪽에 나란히 세워 놓거나 텃밭을 일구며 가꾸고 있는 '골목 풀숲'을 느낄 수 있습니다.
▲ 골목집 3 골목집에서 사는 이들은, 아침저녁으로 골목길을 걸으며 일터를 오갈 때마다, 길 한쪽에, 또는 담벼락 한쪽에 나란히 세워 놓거나 텃밭을 일구며 가꾸고 있는 '골목 풀숲'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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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땅을 내려다봅니다. 지금 걷는 이 골목길은 온통 시멘트 길. 흙 한 줌 찾아볼 수 없는 길. 비록 골목집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흙을 퍼 와서 크고 작은 꽃그릇을 가꾸고 있으며, 벽돌을 주워 와 아예 텃밭까지 일구는 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 꽃그릇과 텃밭을 빼고는 흙 땅 한 뼘 찾아볼 수 없는 곳.

그래, 서울에서 지낼 때에도 그랬지. 종로구 평동부터 무악재를 넘어 홍제동과 녹번동을 지나고 불광동에서 기자촌으로 접어들 때까지도 흙 땅 한 번 밟을 수 없었잖아. 인왕산을 타고 오를 때에도 흙길 밟기가 어렵고, 북한산을 탄다 한들 흙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가. 광화문을 지나 종로를 걷고 을지로를 걷고 세종로와 퇴계로를 걸어도, 명동을 걷고 정독도서관 길을 걷는다고 해도, 누하동을 걷고 가회동을 걸어도 맨땅으로 된 길, 흙 땅으로 된 길을 그예 없었잖아.

시청, 또는 구청에서는, "길이 좁아서 안 된다"고 하면서, 골목집을 함부로 헐어버립니다. 이리하여 차 다니는 길은 넓어지지만, 차 다니는 길이 넓어지는 만큼 사람들이 걷기에도 좋을까요?
▲ 골목집 4 시청, 또는 구청에서는, "길이 좁아서 안 된다"고 하면서, 골목집을 함부로 헐어버립니다. 이리하여 차 다니는 길은 넓어지지만, 차 다니는 길이 넓어지는 만큼 사람들이 걷기에도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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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들여서 떠나는 여행지에서는 시멘트길이나 아스팔트길이 아닌 흙길을, 냇물과 바닷물을, 들판과 너른 산을 바라면서, 어찌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 한국 도시에서는 자연이 숨을 쉴 수 없고, 깃들일 수 없는 쇠붙이 콘크리트 물질문명만 빚어 놓고 있을까요.

한 해에 여름과 겨울 두 번, 또는 주말을 맞이하여 자가용 몰고 씽 떠나기만 하면 좋을까요. 시골은 도시 사람들이 여행하는 곳으로만 머물러 있으면 좋을까요. 시골 사람은 도시 사람이 여행한다며 찾아갈 때 ‘어솹쇼!’ 하며 꾸벅 절을 하며 진수성찬 차려 주면 좋을까요.

도원역 뒤편 골목집 꽃밭. 전철역을 새로 짓고 찻길을 넓히느라 골목집은 "길보다 낮은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얼레벌레 계단을 놓는 땜질 마무리를 했는데, 이렇게 얼레벌레 땜질 마무리로 골목집 사람들 삶터를 망가뜨려도, 골목집 사람들은 크게 성을 내지도 않고, 그 계단을 알뜰히 써서 "계단 꽃밭"을 가꿉니다.
▲ 골목집 5 도원역 뒤편 골목집 꽃밭. 전철역을 새로 짓고 찻길을 넓히느라 골목집은 "길보다 낮은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얼레벌레 계단을 놓는 땜질 마무리를 했는데, 이렇게 얼레벌레 땜질 마무리로 골목집 사람들 삶터를 망가뜨려도, 골목집 사람들은 크게 성을 내지도 않고, 그 계단을 알뜰히 써서 "계단 꽃밭"을 가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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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얼마나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걷는 이 골목길 사람들은 얼마나 골목길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유와 권리가 지켜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골목길 사람들도 틀림없이, 아니 오래도록 세금을 내어 온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골목길 사람들이 내어 온 세금에 따라 지키지거나 가꾸어진 ‘골목길 문화’란 한 가지라도 있었을까 모르겠어요.

도시개발을 한다면서 한데로 내몰아 쫓겨난 골목집 사람들입니다. 아파트값 떨어진다며 내몰아 쫓겨난 골목집 사람들입니다. 아파트 새로 지어서 ‘사람 살 집을 늘려야’ 한다는 이름에 따라 내몰리며 쫓겨난 골목집 사람들입니다.

바지런한 집안 일꾼은, 아침 일찍 빨래를 해서 햇볕이 내리쬐이는 집 마당, 또는 집 옥상 빨랫대에 가지런히 널어 놓습니다.
▲ 아침 빨래 바지런한 집안 일꾼은, 아침 일찍 빨래를 해서 햇볕이 내리쬐이는 집 마당, 또는 집 옥상 빨랫대에 가지런히 널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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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자동차만 다니라고 놓은 길이 아닙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은, 큰 차만 다니라고 놓은 길이 아니며 비싼 차만 다니라고 놓은 길이 아닙니다. 길을 오가는 자동차는 사람이 탑니다.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길입니다. 길에 움직이는 것이 온통 자동차인 듯하더라도, 길을 오가는 중심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자동차라는 쇳조각을 빌어 움직일 뿐입니다.

한강 자전거 길은 자전거를 빈 사람이 다니는 길, 사람이 쉬는 길, 사람이 한강을 느끼며 어우러지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 한강 자전거 길에서 사람은 얼마나 사람대접을 받고 있을까요.

서울, 인천, 대구, 부산, 대전, 광주, 울산, 목포, 전주, 익산, 남원, 진주, 마산, 창원, 양산, 청도, 밀양, 원주, 춘천, 강릉, 충주, 청주, 괴산, 옥천, 파주, 문산, 금산, 양구, 인제, 서귀포, 김녕, 해남, 강진, 서산, 당진, 구미, 구례, 수원, 안산, 광명, 구리, 남양주, …… 이 수많은 도시(또는 도시가 다 된 시골)에 놓은 길에서는 누가 임자가 되어 있는가요.

골목길을 걷노라면, 조금 트인 자리에는 어김없이 평대가 놓여 있습니다. 평대는 골목집 사람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고, 골목집 사람이 모여서 일을 하는 자리가 되며, 고추를 말리는 자리가 되었다가, 길손이 다리를 쉬며 앉았다가 가는 자리도 됩니다.
▲ 골목집 6 골목길을 걷노라면, 조금 트인 자리에는 어김없이 평대가 놓여 있습니다. 평대는 골목집 사람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고, 골목집 사람이 모여서 일을 하는 자리가 되며, 고추를 말리는 자리가 되었다가, 길손이 다리를 쉬며 앉았다가 가는 자리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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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도원 전철역 앞입니다. 신호등 없는 건널목을 살며시 건넙니다. 인천 역사를 다룬 어느 책을 보니, 인천시에 신호등이 처음 생긴 때는 1962년이었던가, 1961년. 그때까지 신호등 하나 없이 차와 사람이 길을 오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첫 신호등이 생긴 것도 동인천 큰길에 딱 하나 섰을 뿐, 다른 데에도 신호등이 생긴 때는 더 세월이 흐른 뒤 일이라지요.

그렇다면, 인천시만 해도 1970년 앞뒤까지 신호등이 거의 없던 도시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천뿐 아니라 남녘땅 다른 도시들도 신호등이 건널목마다 놓인 때는 얼마 안 되지 않을까요. 아니, 건널목이란 아예 없이 사람은 사람대로 자유롭게, 차는 차대로 자유롭게 뒤섞이지 않았을까요.

아파트를 지을 때면, 돈으로 비싼 나무를 사들여서 심습니다. 골목집 사람들은 처음 자기 집에 터를 잡을 때 어린나무를 심어서 알뜰히 가꾸어 아름드리 큰 나무로 키워 내어, 자기뿐 아니라 이웃한테도 시원한 그늘을 내어줍니다.
▲ 골목집 나무 아파트를 지을 때면, 돈으로 비싼 나무를 사들여서 심습니다. 골목집 사람들은 처음 자기 집에 터를 잡을 때 어린나무를 심어서 알뜰히 가꾸어 아름드리 큰 나무로 키워 내어, 자기뿐 아니라 이웃한테도 시원한 그늘을 내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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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역에서 나오는 학생들을 봅니다. 깔깔 하하 호호 큭큭 웃으면서 팔짱을 끼기도 하고 앞뒤로 걷기도 하는 무리를 봅니다. 학교 밖에서 이렇게 맑은 얼굴로 어울리는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도 맑고 해사하게 자기 삶과 생각과 마음을 키우고 보듬고 추스르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얻어 알고 느끼고 있을까요. 그렇게 하고 있겠지요? 그렇게 배우고 있다고 믿으면 되겠지요?

누가 보라고 이렇게 앙증맞게 난간에 가지런히 꽃그릇을 늘어놓았을까요.
▲ 골목집 7 누가 보라고 이렇게 앙증맞게 난간에 가지런히 꽃그릇을 늘어놓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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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역 건너편 숭의동에 자리한 야구장이 2008년에는 사라진다고 합니다. 누가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숭의동 사람들이, 그 옆 도원동과 신흥동과 신생동 사람들이 야구장을 헐고, ‘축구 전용 구장’을 1조 원이라는 돈을 들여서 새로 짓기를 바랐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야구장을 허무는 데에 들어갈 돈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올지, 축구장을 새로 짓는 데 쓰일 돈이 누가 낸 세금에서 나올지 알 길이 없습니다. 손바닥만 한 쉼터(공원)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은, 인천시 중구와 동구에 새로운 축구장이 하나 더 있어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야구장 옆에는, 야구장 역사와 마찬가지로 오래된 공설운동장(이자 축구장)이 있습니다. 이 공설운동장을 조금 손질해서 쓸 수는 없었을까요. 야구장은 야구장대로 지역 문화와 역사를 함께 해 온 이웃님인데, 하루아침에 허물어 없애도 좋을까요. 문학동에 큼직한 야구장을 새로 올렸으니, ‘낡아 보이는 작은’ 야구장은 헐어도 좋을까요. 아마추어와 동호회 사람들이 땀방울 송글송글 맺으며 뛰어놀고 운동을 즐길 터전은 사라져도 좋을까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이루어낸 골목길 예술 작품 가운데 하나가, 골목집 덩굴풀이 담벼락을 꾸민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 골목집 8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이루어낸 골목길 예술 작품 가운데 하나가, 골목집 덩굴풀이 담벼락을 꾸민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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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동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옵니다. 자동차는커녕 자전거도 지나갈 수 없는 조그마한 계단 길을 올라 골목길로 접어듭니다. 생각해 보니, 숭의동 야구장이 없어지는 일을 안타까워하는 인천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도원역 뒤편에 조그맣게 모여 있는 골목집을, 달동네 집들을 허문다고 할 때 눈물 흘릴 인천사람도 안 보일 듯합니다.

인천사람이면서도 인천땅 구석구석을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자전거라도 타고 골목길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인천사람들이 여행을 한다면,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몇 시간 동안 멀리멀리 나가는 일만 생각할지 모르니까, 전철 타고 영등포역이나 용산역이나 서울역이나 청량리역에서 내려 기차 타고 멀리멀리 가는 일만 생각할지 모르니까, 도원동 골목길 한켠에 옹송그리고 있는 조그마한 꽃에서 날마다 살그머니 피워내는 꽃내음을 맡을 줄 모르니까.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 가는 길을 따라 슬그머니 골목길 나들이를 해 보았습니다. 골목길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골목길 한켠에 우뚝 서 있는 해바라기 한 줄기 봅니다.
▲ 아침 해바라기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 가는 길을 따라 슬그머니 골목길 나들이를 해 보았습니다. 골목길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골목길 한켠에 우뚝 서 있는 해바라기 한 줄기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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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을 한참 찍다가, 골목집 얕은 담벼락에 기대어 숭의동 교회 뾰족탑을 바라보고 쉬다가, 아랫배가 살살 아파서 집으로 들어가기로 합니다. 조금 더 머물고 싶은데, 조금 더 아침바람을 쐬면서 골목길에서 아침일 나가는 사람들을 느끼고 싶은데.

좁은 길에서 빠져나와 큰길. 도원역이 다시 보입니다. 어디로 갈까. 왼편? 오른편? 두리번두리번하다가 오른편 골목집 앞텃밭에서 자라는 해바라기 한 줄기 봅니다. 어, 여기 해바라기가? 여기에 해바라기가 자라고 있었나?

몇 번씩 오가던 길이고, 수없이 드나들던 길인데 그동안 해바라기 자라는 줄 몰랐습니다. 그 해바라기 참. 곱네. 꽃송이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야, 참 많기도 하네.

왼손으로 아랫배를 살살 문지르며 해바라기 자라는 텃밭 가에 쭈그리고 앉습니다. 오 분쯤 그렇게 앉아 있다가 일어섭니다. 발걸음을 재게 놀리며, 그러다가 후다닥 뛰면서 집으로, 집으로.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

지금 인천시는, 중ㆍ동구 둘레를 놓고 ‘도심정화사업’을 벌여 골목집과 재래시장을 몰아내고, 동구 배다리 둘레는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골목집이 몰려 있는 동네 한복판에 놓으려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대단한 이름이나 많은 돈벌이나 큰 힘 하나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동네가 이곳 인천 중ㆍ동구입니다. 경제개발과 경제성장하고는 조금도 안 어울릴 수 있겠지만, 온 삶을 바쳐 땀흘려 일하고 조그마한 몸뚱아리 드러누울 작은 집 한 칸이나 방 한 칸 마련하여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도 ‘내 집에서, 내 땅에서, 조용하면서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다가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님 정책을 한 번도 거스르지 않고 허리 구부정할 때까지 살아온 사람들 숨결을 사랑합니다. - 배다리 골목길 이야기를 띄우면서.



태그:#골목길, #배다리, #인천, #산업도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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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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