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360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인 '2007 대선시민연대'와 공동으로 대선 주자들의 공약을 심층적으로 검증하는 기획을 진행합니다. 이와 함께 각 부문별로 후보자들이 채택해야 할 바람직한 공약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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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제 해결에 자주 등장하는 '자율화' '다양화'라는 말이 좋게 들리는 이유는 '자유'와 '선택'의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슈퍼마켓에 가서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고르듯이 학교도 선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고 하니 흥미롭게 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자율화' '다양화' 뒤에는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무서운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 특목고는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해도 들어가기 어렵다고 한다. 여기 입학하기 위해 우리 아이들은 한참 뛰어놀 나이에 학교, 학원 뺑뺑이를 돌고 있고, 그나마도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아이들은 그런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거기다가 천신만고 끝에 특목고나 자사고에 진학하더라도 한해 5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결국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더라도 입시 중심 교육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 중고등학교를 다양화 하겠다는 것은 학력 양극화와 학벌을 통해 빈부 세습을 고착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가고싶은 학교 입학하는 '자율화? 특목고 가려 뺑뺑이 도는 '서열화' 학부모들은 나날이 늘어가는 사교육비에 지칠 대로 지쳐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대학에 가기 어렵고, 소위 명문대에 들어가려면 사교육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대선후보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사교육비를 절감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명박 후보는 "사교육 팽창은 곧 계층 간의 사교육 격차로 이어지고, 가난이 교육으로 대물림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저소득층 학생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공교육 틀 내에서 질높은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고품질 교육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명박 후보가 제시한 프로그램은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포기하고, 평준화 정책을 폐기하겠다는 것으로 '다양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부자들을 위한 정책', '소득 수준이 높은 특별한 계층을 위한 정책'만을 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자율형 사립고 확대 등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와 학교 영어수업 확대 방안은 많이 줘도 30점을 받기 어려운 공약이다. 자율형 사립고, 기숙형 공립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중학교 입시지옥이 부활하고, 학교 영어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영어 사교육이 더 치열해 질 것을 생각하면 미래가 암담하다.
정동영·문국현 후보도 사교육비 폭등의 원인을 질 낮은 공교육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건드리는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대다수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하는 이유는 공교육의 질이 낮기 때문이 아니다. ‘영어교육’을 공교육에서 해결한다거나(정동영 후보), 고교 학력평가를 4지 선다형에서 논술형으로 바꾸는 등 내신제도를 고친다 해도(문국현 후보) 현행 입시제도, 나아가 학벌 중심 체제가 깨지지 않는 한 사교육비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학벌사회 해결책 내놓은 후보는 권영길·문국현 뿐 이렇게 힘겹게 사교육비를 들여서라도 특목고나 자사고에 가고 명문대에 진학해야하는 이유는 무얼까? 물으나마나 소위 좋은 학력·학벌을 얻기 위해서이다. 한국 사회는 출신학교가 같은 집단이 배타적인 파벌을 형성하여 독점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다. 즉 어떤 대학을 나왔는가에 따라 개인의 삶의 수준, 삶의 질을 결정한다. 대학교육을 받아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행세할 수 있다는 인식은 우리의 전근대성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출신대학이 기업 채용의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에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간판이 좋은 대학을 가는 것에 돈과 혼을 모두 쏟아 붓고, 급기야 학력위조까지 감행한다.
대선 후보 중에 학벌사회 해소 공약을 내놓은 후보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뿐이다. 권 후보는 대학 서열체제를 떠받들고 있는 '사교육비와 입시, 학벌사회'를 3적으로 규정하고 대학평준화를 통해 이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고등교육재정을 GDP 대비 1.5%로 확대하고, ▲3통(통합전형·통합학점·통합이수) 정책으로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 하며, ▲학벌·학력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한다. 한편, 문 후보는 교육의 기회균등을 골자로 현재의 3불 정책을 유지하고, 국립대 공동학위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학력과 학벌사회의 폐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열화 되어 있는 대학체제를 개혁하는 일이 최우선이라는 점에서 두 후보의 문제의식과 진단은 평가할 만하다. 정동영 후보는 “고통스러운 초중고, 앞길이 불안한 대학”을 “창의력과 개성을 키우는 초중고, 자신 있게 준비하는 대학, 세계를 선도하는 대학원”으로 탈바꿈시키겠다면서 듣기 좋은 수사만 남발하고 있다. 교육 개혁의 방향과 대안, 프로그램이 모두 부실하다.
유권자는 ‘교육 양극화 부추기는 공약’ 폐기 운동에 나서야 서열화된 대학체제를 그대로 두고, 명문대의 일방적인 입시전형을 무시한 채 중, 고등학교의 다양화만 내세운 공약은 그야말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각 후보가 교육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는 대학서열체제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살펴봐야 한다. 교육복지실현국민운동본부가 2007년 10월 24일 발표한 ‘교육 분야 대국민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3.1%는 대학 서열화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서울대를 포함한 국공립대 통합전형’과 ‘공동학위제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 특히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추진은 ‘국공립대부터 통합전형을 시작해서 공동 학위를 주겠다’는 것으로 대학 평준화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학벌 카르텔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것은 너무도 견고하여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학벌사회의 틀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육은 종속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입시제도, 나아가 학벌 체제를 바꿔야 진정 교육이 바뀐다. 학생을 잘 가르치기 보다는 우수한 학생 선발에만 골몰하고 있는 대학을 바꾸고, 학벌사회의 정점에서 우리 교육을 망치는 대학의 기만을 엄중하게 심판해야 한다. ‘교육 양극화를 부추기는 공약’은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최소한 학력차별 금지법을 제정하고, 국공립대학 네트워크와 통합전형, 공동학위제 도입을 촉구해야 한다. ‘골라 뽑기’ 경쟁에서 대학이 연구ㆍ교육 경쟁으로 전환해야 교육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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