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본동 104마을의 지분시세가 꿈틀거리고 있다. 개발제한구역이었던 이 일대가 그린벨트 해제를 위한 주민공람에 들어가면서 재개발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여기에 강북 교육의 메카인 은행사거리가 가까이 있어 학부모들의 인기가 더욱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뱅크 2007년 10월 2일자 기사) 요즘 신문에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104 마을'이 자주 등장한다. 상계 3·4동 일대와 함께 서울에 마지막 남은 달동네인 104마을에 '재개발'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노원구는 3년 안에 재개발 사업을 시작해, 최고 20층 높이의 프리미엄 아파트 단지(주택공사 시공, 총 2729 가구 중 임대아파트 물량은 1189가구)를 이곳에 만들 예정이다.
이를 위해 1999년 104마을 일대를 그린벨트 우선해제 대상지(1971년 그린벨트 구역으로 설정됨)로 지정했고, 지난 9월 14일에는 개발제한 구역해제 및 제1종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을 위한 주민공람을 마쳤다고 한다.
또 이달 서울시 도시건축심의에서 그린벨트지구가 최종 해제되면, 중계본동 104 마을 일대는 도로, 공원, 학교 등 각종 도시기반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상향조정 된다. 다시 말해 재개발을 위한 '구역지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용했던 달동네에 '재개발' 바람불다지난 2일 찾아간 '104 마을'은 조용했다. 간간히 리어카를 끌며 동네를 누비던 과일장수의 확성기 소리만 들렸다. '104 마을'은 지난 1967년 서울 청계천, 용산, 남대문시장, 합정동 일대에서 판잣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이 강제 이주되어, 형성한 동네다.
'104 마을'이란 동네명은 이주당시 이곳이 중계본동 104번지여서 불려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노원구 중계본동 30-3번지로 바뀌었다.
경사길을 따라 '104 마을' 중턱에 오르자, 조그만 슈퍼가 나타났다. 성성한 흰머리, 깊게 패인 주름…. 노인 한 분이 가게 앞 의자에 앉아있었다. 내가 낯설게 보였는지 대뜸 어디서 왔냐고 묻는 그는, '104마을' 토박이 서경팔씨(71)였다.
서씨는 합정동에 살다 지난 1968년 이곳으로 강제 이주되어 왔고, 지금까지 '104마을'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살아오고 있다고 했다.
"내가 그때…날짜도 잊어 먹지 않아…68년 5월 31일…. 그 때 내가 살던 합정동에 발전소가 있었지. 갑자기 박정희 그놈이 시찰 나온다고 하니깐, 시에서 발전소 주변에 있는 판잣집들을 모두 부수고 철거하는 거야. 그리고 당장 우리 보고 나가라고 했지. 시에서 나온 트럭을 타고 이곳까지 왔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말하는 내내 쓴웃음을 짓던 그는 아무 이유 없이 강제이주 당한 지난 설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104마을'에 정착하며 겪은 어려움들을 이야기 해주었다.
60년대 말, 판자촌 이주민들이 일군 '마지막 보금자리'"처음에 이곳에 도착하니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어. 땅에 분필로 이주민들이 살 구획만 그어 놓았더라구. 정말 막막했었지…. 근데 더 황당했던 것은 시에서 천막 한 개를 달랑 나눠주고 여기에서 4세대가 함께 살라는 거야. 날씨도 덥고 산 벌레에 물려 고생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었지." (한숨)
하지만 서 씨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열심히 살다보면 기회가 오리란 믿음 때문이었다.
"그 때 내 옆에 있던 세 살 된 딸, 돌을 갓 지난 아들을 보니 이대로만 주저앉을 수가 없었어. 산에서 돌을 캐 오고 자재를 구해 우리 스스로 여기에 집을 지었어. 볼품없었던 집이지만 지금까지 잘 살아왔잖아. 그리고 밥 지으려고 나무구해오고 물 길러오던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우린 여기서 맨주먹으로 다시 일어 난 사람들이야."
'104 마을'에 대한 추억을 되돌아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에게 최근 동네가 재개발 될 예정이란 말을 건네자 갑자기 얼굴빛이 변했다. 금시초문인 듯 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난 그 얘기 첨 들어봤는데…. 아, 저번에 도장 돌리고 그런 게 다 재개발이니 뭐니 그런 것 때문이었구나.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몰라. 재개발이고 그런 것…. 그냥 뒷집 통장 아저씨가 와서 도장 찍어 달라면 그냥 찍어주는 거지 뭐."
서씨와 한창 '104 마을'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의 슈퍼 앞으로 동네 주민 권씨(그냥 자신을 '권씨'라 불러달라 했다)와 김석보 씨(69) 그리고 이명자 씨(74)가 왔다. 권씨와 김씨는 '104 마을' 세입자다. 대화가 이어졌다.
'104 마을' 세입자들, "우린 돈도 없고 갈 곳도 없는데..."권 씨 "뭐? 우리 동네가 재개발이 된다고? 그럼 우린 어디에서 살아. 이거 큰일 났네…. 우리 세입자들한테는 한 마디 상의도 해보지 않고."
김석보 "난 얼마 전에 신문보고 알았는데, 우리 동네가 재개발되면 잘 나가는 황금투자처가 될 거라네…. 그거 보고 얼마나 어이없고 한숨 밖에 안 나오던지. 여기는 우리의 마지막 보금자리인데…."
권 씨 "원래 재개발 그런 거 하면 집주인(권리자)들한테만 물어 보잖아.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세입자들은 동네 허문다고 나가라고 하면 반항도 못하고 나가야 되잖아. 우린 소유권 없으니깐. 우리 동네에서 세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한숨 밖에 안 나오네…."
이명자 "맞아. 우리 동네에서 세만 주고 여기에 안 사는 사람들도 있잖아. 그 사람들이 동의했다고 재개발해야 하나. 집주인(권리자)이나 세 사는 사람이나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의견을 더 많이 물어봐야지."
서경팔 "자네 이야기들이 맞아. 나도 이 친구 통해 재개발 소식을 알게 됐는데, 내가 일자무식이라도 여길 떠나면 다시 못 돌아오는 건 알고 있어. 우리가 돈이 있어 뭐가 있어. 예전에 '난곡'에 살던 사람들 봐봐. 다시 동네에 못 돌아오고 있잖아 지금도…."
한 신문보도를 보면 "'104 마을' 재개발 사업에 주민 73%가 동의했다"고 한다.(중앙일보 9월 12일자 기사) 하지만 재개발에 대한 '104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다소 냉소적이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주민들 상당수가 재개발에 대해 의사결정권이 없는 세입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104 마을'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향후 담당기관의 계획과 주민대책이 궁금했다. 노원구청 도시개발과 김남수 주임은 전화통화에서 "재개발이 완료되면 원주민들에게 입주우선권을 주고, 집주인(권리자)은 일반 분양분, 세입자는 임대 분양분(총 공급량의 50%)을 공급받는다"고 했다.
이어 "재개발 사업에 대한 권리가 없는 세입자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이주비용은 지불해주겠지만, 공사기간 중 살 거처나 그 이외에 보상대책에 대해서는 아직 마련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곳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 거야…."달동네를 내려오면서 서경팔씨의 한숨 섞인 말이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그리고 1년전 재개발 사업을 마친 서울 신림 7동(옛 난곡마을)의 경우를 떠올리게 했다.
지금 난곡에는 오래된 판잣집들이 헐리고 고급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원주민(달동네 사람들) 입주자는 약 5%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원주민은 달동네 보다 못한 지하 단칸방으로 밀려 났다. 재개발 열풍 속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을 우린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