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회에 이어) 어머님은 할 만한 말을 하는 것이다. 헛말은 없다. 단지,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게 있을 뿐이다. 어머님이 하시는 말이 앞뒤가 안 맞고 사실이 아니라 해도 어머님은 그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86년의 세월을 바친 것이다.
어머님의 굴곡진 삶에서 비롯된 것이 지금의 치매다. 오늘의 어머니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고른 삶뿐 아니라 굴곡진 삶도 받아들여야 된다. 어머니의 굴곡진 삶이 오늘 치매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일찍이 어머니 인생은 부러졌을 것이다. 그런 말,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오늘의 어머니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치매는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 치유의 과정이다. 어머님의 고통을 덜어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뭔가를 해 볼 일이다. 쉬지 않고 말을 계속함으로 지쳐서 똥오줌을 옷에 실수하게 되는 일이 잦다면 미리 막아 드릴 일이다. 여기까지가 내 삶의 방식으로 바라보는 치매다. 현대의학은 공식적으로 치매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선언했다. 완치는 없고 진행을 완화시키는 약이 있을 뿐이라고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나는 치매의 원인도 알고 처방도 알고 돌보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50년 살아 온 내 삶을 던져 이르게 된 성과다. 사회적 실천과 명상과 수련을 통해 얻은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실용적 지식도 많이 작용했다. 그동안 내가 공부한 자연의학 또는 대체의학의 지식들이 큰 몫을 차지한다.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것.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며 거기서 삶의 이치와 하늘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무슨 일이든 원인을 알고 대응법을 알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으면 편해진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이 세 단계의 어느 한 곳이 막혀버린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든가 나중에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을 때 고통스럽다. 그런데 이 고통이라는 것, 괴롭다는 것도 넘어 설 수 있다. 치매 부모를 모시다 보면 자기 할 일도 못하고 몸과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아프다’와 ‘괴롭다’는 동의어가 아니다. 아프면 아플 뿐이다. 밥을 못 먹으면 배가 고플 뿐이다. 괴롭거나 고통스럽다는 것은 인간만이 창조해 내는 독특한 사유의 산물이다. 어떤 동물도 아프거나 배고프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며 후회하고 누군가를 저주하지는 않는다. 인간만이 유독 그 더러운 카테고리에 얽매인다. 본래의 삶이 아니다. 지금 내가 원고를 쓰는 동안 어머님은 따듯한 온돌방 아랫목에서 내가 차려 준 통 몇 개를 끼고 앉아 팥을 가리고 계시면서 누구는 인정머리가 없고 누구는 팥죽을 끓였는데 한 그릇 나눠 먹을 줄도 모른다며 몇 시간째 50년, 60년 전 이야기를 혼자 하신다. “어머니. 저 지금 공부해요. 좀 있다 얘기하세요. 시끄러워 공부도 못하겠어요” 했더니 “찌랄, 공부는 눈으로 하지 귀로 하냐?”고 하시면서 아랑곳하지 않고 누가 듣든 말든 이야기를 계속하신다.
이게 어떻게 병이란 말인가. “어머니, 저 저쪽 방으로 어머니 미워서 도망갈래요” 하면서 노트북을 들고 넘어왔다.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팥을 가리고 계실 뿐이다. 나는 내 할 일을 그냥 하면 된다. 내 할 일을 온전히 하면 그 뿐이다. 어머님이 어떻게 하고 안 하고는 내 할 일을 흔들지 못한다. 나의 이런 판단과 처신을 대체로 동의해 주는 주장을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1998년 9월에 나온 책이다. 일제 때도 투옥을 마다않고 교리를 지켰고 지금도 집총을 거부하며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고 있는 워치타워협회(여호와의 증인)에서 펴 낸 ‘깨어라’라는 책에서다. (28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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