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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바람. '창풍'이 불고 있다.

 

오늘(5일) 보도된 <동아일보> <한겨레> 등의 대선 여론조사 결과들에서도 이회창 전 총재는 지지율 20%대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가 출마할 경우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을 10% 이상 하락시키고, 정동영 후보를 3위로 밀어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쯤되면 적어도 여론조사상으로는 '창풍'이 분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대선정국 상황에 따라 '거품'이 빠질 가능성은 커보이지만, 일단 '창풍'이 대선구도를 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창풍'은 한국 정당정치의 재앙

 

대부분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 전 총재가 출마해도 한 자리수 지지율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러한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은 단번에 20%대에 진입하며 기염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기적으로 김경준씨의 귀국 소식과 맞물리면서 이명박 후보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한 덕을 본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범여권세력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깊고, 그 연장선상에서 보수화의 기운이 사회 전체를 주도하고 있다는 징표라 할 수 있다.

 

이번 대선에 불어닥친 '창풍'은 우리 정당정치의 재앙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이 전 총재의 출마는 정당정치의 기본을 무너뜨리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던 그가 대선을 불과 40여일 앞두고 탈당해서 대선에 나선다는 것은, 정당민주주의의 요체인 후보경선의 의미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경선불복을 금지한 법을 교묘하게 피해 예선을 거치지 않고 본선으로 직행하는 것은 정치적 무임승차이다. 그런 인물이 출마선언도 하기 전에 지지율 2위로 올라섰다. 이런 편법이 성공하면 우리 정당정치는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가 없다.

 

둘째, '창풍'으로 대선구도가 '이명박-이회창'의 대결로 되어버린다면 우리 정당정치의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이번 대선에는 보수의 축만 존재하고 개혁·진보의 축은 사실상 붕괴됨을 의미한다.

 

이념의 오른 쪽만 존재하고 왼쪽은 무너져버리는 상황에서는 정당정치가 사회통합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정당정치의 왼쪽 날개와 오른 쪽 날개가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국민의 의사가 균형있게 반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창풍'으로 인해 같은 보수진영, 같은 한나라당 출신 인사가 대선의 1· 2위를 차지하고 자신들끼리의 대결을 벌이는 상황은 우리 정당정치의 재앙이라 할 만 하다.

 

범여권 공멸의 위기, 후보단일화 적극 나서야

 

따라서 '창풍'은 단지 한나라당 내부의 분열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창풍'의 타격은 이명박 후보에게만 향하고 있지 않다. 범여권 후보들 모두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동영 후보는 하루아침에 지지율 3위로 전락하는 굴욕을 겪고 있다. '이명박 대 반 이명박'의 구도를 만들어가려는 전략도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한동안 꾸준한 지지율 상승세를 보이던 문국현 후보는 지지율이 꺾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 후보의 경우 당분간 '창풍'에 가려 관심권 밖에 위치하게 되면 군소후보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출신 두 사람이 '2강'을 형성하는 구도는 범여권에게는 수모와도 같은 것이다. 얼마나 지지율이 바닥이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를 탄식하게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범여권 후보들은 각개약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구도에서 범여권이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못하고 각개약진한다는 것은 사실상 이번 대선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대로 가면 범여권세력은 공멸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범여권세력이 분열된 상태에서 '이-이'의 대결을 바라보는 처지가 되었을 때, 그 후과는 단지 대선 참패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보수 정치세력과 -개혁·진보 정치세력 간의 극심한 불균형이 초래될 것이며, 그 결과는 내년 총선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한번 초래된 세력간의 불균형이 정상적인 상황으로 회복될 때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지 모른다.

 

문국현, 후보단일화에 열린 자세 필요

 

범여권세력이 지금 후보단일화를 한다고 해서 과연 승산이 있을까. 누구도 자신있게 답을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후보단일화를 해도 여전히 승산이 작은 대선임에 분명하다.

 

다만 몇 가지 변수들은 아직 남아있다. 김경준씨 귀국에 따른 파장, 그리고 '이-이'의 대결이 낳을 보수층의 분열. 이러한 변수들이 상황에 따라 대선판을 다시 흔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명박 대세론'이 일단 꺾인 상황에서 보수진영의 분열이 수습되지 못할 경우에는, 범여권은 '위기'를 다시 '기회'로 돌릴 가능성을 아직은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태세라면 범여권은 설혹 그런 기회가 찾아온다 해도, 속수무책으로 그냥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소한 후보단일화의 원칙을 공유하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의지 표현이라도 있어야 기회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을 지지해 온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책임이다.

 

후보단일화에 대한 범여권 세 후보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정동영 후보와 이인제 후보는 일단 후보단일화에 적극적인 입장이다.

 

반면 문국현 후보는 "필요하면 연정은 가능하지만, 후보단일화는 가능성이 없다"며 후보단일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 후보는 단일화 없이 대선을 치르고 내년 총선을 기약할 생각인 것으로 파악된다.

 

범여권의 후보단일화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문 후보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보수진영의 두 사람이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차별없는 성장'과 '사람중심의 진짜경제' 사이에 존재하는 '가치의 차이'를 논하고 있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보수와 개혁·진보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본질적이고 커다란 흐름을 봐야지, 자신들 내부의 미시적인 차이를 논하는데 매몰될 때가 아니다. 범여권 후보단일화 논의가 진척되기 위해서는 문 후보가 보다 열린 자세로 변화해야 한다.

 

벌써 11월 5일이다. 지금부터 논의가 시작되지 않으면 후보등록 이전에 후보단일화는 불가능해지고, 그 때 분열된 범여권세력은 '창풍'이 아닌 '보수풍' 앞에서 궤멸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단, 전제가 필요하다. 후보단일화 논의를 하더라도 '지분' 흥정을 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범여권세력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 속에서도 지분흥정 때문에 다투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때 후보단일화는 '약'이 아닌 '독'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범여권세력이 후보단일화를 이루는 것은 어느 세력의 이해관계를 넘어 우리 정당정치의 균형있는 발전을 찾기 위한 길이다. 비상한 상황을 맞아, 당사자들의 비상한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태그:#후보단일화, #창풍, #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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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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