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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역시 생물인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 대선 정국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혼미 상태다. 말할 나위 없이 돌출한 '이회창 변수'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정치권뿐만이 아니다. 신문, 특히 보수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과 번뇌도 높디높은 청명한 가을 하늘만큼이나 깊어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세상에 뭐 이런 날벼락이 있는가. 졸지에 복잡한 계산에 머리가 아플 보수 신문들에겐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이 지금처럼 실감나는 때도 없을 듯하다. 보수신문들의 ‘위기관리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나아가,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스릴도 만끽하게 됐다.

 

<조선일보>, 조심조심 이회창 눌러앉히기

 

지난 주 보수언론 가운데 맨 먼저 '이회창 출마'를 사실상 '확정'한 <조선일보>는 이회창 주저앉히기에 나서곤 있지만, 조심스럽다. 상황이 간단치 않음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회창 출마가 사실상 굳혀지는 상황에서 <조선일보>는 지난 주말까지 침묵했다. 양상훈 논설위원이 10월 31일자 칼럼 '이회창씨의 소원과 운명'에서 이씨의 원칙과 소신, 그리고 그것을 저버리게 하는 '유혹의 운명'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회창씨에게 겸허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원칙을 지킨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일독을 권고했지만, 이회창씨의 '의지'를 바꿔놓을 수는 없었다.

 

<조선일보>는 지난 주말인 3일 사설을 통해 이회창씨에게 포문을 열었다. '무엇을 위한 출마냐'고 물었다. 결국 욕심 때문이 아니냐며 '인간적으로도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질타했다. 그의 출마가 '요행수'를 바라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명박 후보에 '일침'을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후보가 리더십을 발휘해 박 전 대표와 화합을 이뤘다면 이씨는 출마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 후보 책임론을 거론했다. "결정적 시험대에 놓인 것은 이 후보"이며 한나라당 내에서 제기된 '대선잔금' 문제도 다 밝히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오늘(5일)도 이회창씨에게 '국민의 저울'을 들이댔다. 더 나은 후보일 수 있다는 이회창씨의 '주관적 판단'이나 앞으로 요동칠 '여론조사의 향배'에 기대는 것은 '기회주의적 처신'이라고 질타했다. 이씨를 두 번이나 밀어주었는데도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 '국민의 생각'으로 자신의 행보를 재보라는 이야기다.

 

물론 여기에서 '국민의 생각'은 '한나라당 지지자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게다가 '한나라당 지지자'들 가운데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이회창 출마'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실 <조선일보>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조선일보>는 오늘 사설에서도 이런 소란스러움은 결국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후보의 무능·무책·자만·부덕의 탓"이라며 "한나라당과 그 후보는 국민들에게 진사"하라고 촉구했다. <조선일보>가 이회창 출마에 제동을 걸면서도 여전히 '조심스럽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적극적인 <중앙일보>, 화끈한 <동아일보>... 그런데 국민은?

 

역시 지난 주말까지 사태 추이를 보던 <중앙일보>는 보다 '이회창 공격'에 보다 적극적이다.

 

3일 사설 제목만 보아도 그렇다. '가당찮은 이회창씨 출마설'로 뽑았다. 대선을 40일 앞두고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저울질하는 이회창 씨의 처신은 '기회주의적'이라고 질타했다. 이른바 '스페어 후보론'도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론에 대한 책임론도 빼놓진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나 이회창 전 총재를 끌어안는 데 소홀한 점을 짚었다. 통합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후보 측에 대한 질타의 정도에선 <조선일보>에 미치지 못한다. 통합의 리더십은 '이 후보의 몫'이고, 정치도의상 문제는 '이 전 총재의 몫'이며, 그 평가는 '국민의 몫'이라고 했다. 졸지에 '국민'의 책임이 무거워졌다.

 

역시 화끈한 것은 <동아일보>다. 일찍부터 '이회창씨'에게 '미련의 창 닫아야 할 때(10월 26일자 사설)'라며 '이회창 주저앉히기'에 적극 나선 <동아일보>다.

 

지난 주말(3일) 사설에서는 '이회창 씨가 되살린 5년 전 차떼기의 추억'을 들추며 그의 출마움직임에 쐐기를 박았다. 그의 출마는 '심각한 자기부정'이자, 민주주의 원칙 및 정당정치에 대한 도전이라고도 했다. "민주주의 역사의 후퇴를 국민이 용납할 것 같은가"라고 묻기도 했다. 여기에서 '국민'은 이제 '역사의 심판관'으로까지 '격상'됐다.

 

<동아일보>는 오늘도 '국민'을 내세웠다. <동아일보> 사설은 '한나라당, 이회창 씨가 아니라 국민 보고 뛰라'고 독려했다. 이회창 씨가 아직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동아일보>는 그를 "우리 정치를 다시 10년 전으로 후퇴시킨 구태"이자 "최소한의 민주주의 게임 규칙마저 유린한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 정도 되면 거의 '규탄' 수준이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국민만 보고 뛰라"는 당부다.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지지율’이 50%를 넘고 있다고도 했다. 역시 '국민' 만세다.

 

조중동의 '국민 만세'... 국민들은 바쁘다

 

깊어가는 고민 속에 <조선일보>는 '국민의 생각'을, <중앙일보>는 '국민의 몫'을, <동아일보>는 '국민의 심판'을 각각 내세운다. 이회창 전 총재는 또 무슨 '국민'을 들고 나올지 궁금하다. '국민'들도 덩달아 바빠지게 생겼다.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물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 국민 맞아?"

 


태그:#이회창, #이명박, #조중동, #대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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