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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낙 신전에 오후에 간 것을 후회하면서 서안 구경은 힘들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그냥 혼자 강을 건너서 하나하나 찾아다니려고 했었지만 혹시나 이 더위에 어디서 쓰러지지 않을까 겁이 났다. 이곳 날씨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갈증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카르낙 신전에서 경험했기에 밤부터 물통을 호텔 냉동실에 꽁꽁 얼려 놓았다.

룩소르의 나일 강 서쪽은 서안이라고 불린다. 지금은 나일 강의 힘이 미치는 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고 옛 유적지 옆에서 관광업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이곳은 무덤으로 가득한 지역이었다. 나일 강의 물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사탕수수 밭으로 푸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상이 바뀐 듯 풍광이 바뀐다. 풀 한 포기 살 수 없을 것 같은 누런 돌산뿐이다.

 왕들의 계곡. 풀한포기 살지 못하는 누런 산 속에 위치하고 있다.
왕들의 계곡. 풀한포기 살지 못하는 누런 산 속에 위치하고 있다. ⓒ 김동희

어느 순간부터 파라오들은 그들의 무덤과 죽음을 위한 신전을 만들 새로운 곳이 필요했다. 선조들의 무덤은 이미 도굴꾼에 의해 파헤쳐져 있었고 자신들의 무덤이 그렇게 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이때 선택한 곳이 룩소르 강 서쪽인 이곳이었다. 도굴꾼이 찾기 힘든 곳이고, 해가 지는 서쪽은 죽음을 의미했고 죽음은 다시 해가 떠오르듯이 새로운 다음 생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비가 오지 않아 무덤을 만들기에는 최고의 지역이었다.

나는 비가 안 온다는 의미를 몰랐다. 비가 오지 않아도 일년에 몇 번은 내리거나 아주 조금이라도 오겠지, 그런 것을 비가 오지 않는다고 말하겠지 싶어 가이드에게 물어봤다.

"전혀 오지 않아요. 저는 태어나서 한번도 비 오는 것을 보지 못했는 걸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무도 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라면 모를까 옛날부터 도시를 이루고 사는 이곳에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믿을 수가 없어서 가이드 북의 맨 끝에 온도 및 강우량 막대 그래프를 뒤졌다. 책에도 믿을 수 없이 이 지역 강우량 막대 그래프는 없었다. 갑자기 속이 갑갑하기 시작했다. 내 몸 속의 수분도 다 달아날 것 같은 두려움에 밤새 얼려온 물을 들이켰다.

도대체 이곳은 언제부터 비가 오지 않았던 것일까? 이곳에 무덤을 파고 신전들을 만들었던 2000년 전 그 때에도 비는 오지 않았을까? 2000년 이상 비가 오지 않는 곳에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신은 그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나일강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이 없었다면 이집트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근원이 어디서 왔기에 그 오랜 시간 동안 하늘에서 물방울 하나도 내리지 않는 곳에서 살아 남았는지, 이 메마른 이집트를 훑고 지나 지중해로 빠져 나갈 때까지 큰 줄기를 유지할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강을 건너면서 괜히 한번 더 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었다. 장하다고,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어떤 힘든 상황에 처해 있든지 자기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바다를 만나 흩어 없어질 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그 장엄한 모습을 닮고 싶다고.

처음 도착한 곳은 왕들의 계곡이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에만 62개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워드 카터가 발견한 그 유명한 투탕카문의 무덤이 62번, 가장 늦게 발견된 무덤이다. 게다가 주변에는 왕비들의 계곡, 귀족들의 계곡까지 한마디로 고위관직을 위한 죽음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들어갈 수 있는 무덤은 한정되어 있었고 가이드가 추천해주는 몇 무덤을 돌아보았다. 내부에는 아직도 형형색색 벽화들과 부조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업적과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사후 세계로 가는 방법을 안내해주는 '사자의 서'를 적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파라오가 죽으면 그가 다른 세상에 가서 살기 위해서는 몸은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미라를 만들죠. 먼저 코 뼈를 부러트려 긴 철사 막대 같은 것으로 뇌를 제거합니다. 그리고 왼쪽 옆구리를 갈라 내장을 다 꺼냅니다. 하지만 심장은 남겨놓습니다. 그리고 염을 하고 천으로 쌉니다. 그리고 몇 겹의 관들 안에 들어가죠. 죽은 사람은 죽음의 신인 오시리스 앞에서 판결을 받습니다. 판결하는 신의 과반수가 손을 들면 신들의 왕국으로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 판결하는 사람이 정확하게 반반 갈렸을 때는 저울에 죽은 자의 심장과 진실의 깃털을 올려놓고 그의 영혼의 무게를 잽니다.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워야 좋은 세상에 가는 거죠."

가이드가 해주는 이집트 인들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는 참 재미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궁금했고 무덤 속에 있을 때도 계속 머리 속에 맴도는 궁금증은 ‘고대 이집트 인들이 생각하는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것은 무엇이었기에 죽기 전에 자신의 죽음 후의 신전을 짓고 무덤을 팠을까?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해야지 그들처럼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꼭 그들은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이사를 가는 것처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사 가는 험난한 길을 찾아 가는 법을 잊어버릴까 벽에 새기고, 자기가 쓰고 있던 물건들도 모두 챙겨 놓는다. 사용하던 가구부터 책, 음식 그리고 애완 동물까지 미라로 만들어서 넣어 놓는다. 죽는 게 아니라 이사를 가는 과정이다. 이사가 끝나고 나면 새 집에서 지금처럼 그렇게 다시 살면 된다. 그나 저나 심장이 영혼의 깃털보다 무거우면 새로운 세상에서 집을 내주지 않을 텐데….

그런데 매일매일 끓어오르는 욕심으로 가득찬 내 시뻘건 심장은 영혼의 깃털보다 가벼울까?

덧붙이는 글 | 지난 여름에 다녀온 이집트 여행기입니다.



#이집트#룩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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