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 내장산 단풍길 여행에 올랐다. 교회에서 홀로 살아가는 분들에게 '사랑의 밥'을 지어주는 몇몇 사람들이 참가한 여행길이었다. 그 일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분들 역시 가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던 터다. 가을 단풍을 통해 나름대로 아름다움과 깊이를 얻고자 함이었다.
내장산 아래는 아직 초가을인 듯 단풍이 물들지 않았다. 오히려 산 중턱에 다다라서야 단풍잎들이 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것은 흡사 신방 안에서 신혼 첫날밤을 기다리는 새색시의 옷고름 같았고, 나라 안팎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인 영화 <황후화>를 보는 듯했다.
그만큼 오색찬란한 단풍잎들은 우리 일행들의 발걸음을 가볍고 밝게 했다. 일상에 지치기 쉬운 사람들 마음을 알차고 부드럽게 해 주었다. 사람들과 부대기며 받는 스트레스를 맑고 청순하게 치유해 주었다. 그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밟힘을 통해 그것을 만끽하도록 해 준 것이다.
물론 땅 아래의 단풍 낙엽들과는 달리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단풍잎들도 많았다. 아직은 그것들이 제 기운을 붙들고 있어서 그랬을까? 아름드리나무들이 그 이파리들을 자유롭게 놔 주지 않는 까닭에서 그랬을까? 그래도 때가 되면 다들 땅 아래를 향해 떨어질 것이다. 제 사명의 끝이 그곳이기 때문이리라.
드디어 우리 일행들은 호수 위에 떠 있는 팔각정 앞에 다다랐다. 그야말로 가을 호수 분위기를 그보다 더 운치 있게 자아내는 곳도 없었다. 그곳 위에 있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곧장 내장산 정상이다. 그곳 최정상에서 고함을 지른다면 뭔가 남다른 뿌듯함이 밀려오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들은 정상을 향하는 길목은 접고 벽련암으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려면 북적대는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는데 그게 싫었고,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더욱이 산 정상에서 소리치는 고함보다는 암자의 그윽한 소리가 우리 일행들을 더욱 끌어당겼다. 그만큼 깊이 있는 감동은 사람들의 고함에 있기보다 침묵 가운데 들려오는 암자의 울림에 있었던 까닭이리라.
해가 어둑해질 무렵 우리 일행들은 산 아래 버스를 향해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목도 오르막길처럼 무척 흥겨웠고 뿌듯했다. 산을 오를 때는 오르면서 보는 아름다움과 깊이가 있었고 내려올 때는 또 내려오면서 보는 멋과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단풍길 여행을 통해 얻고자 했던 깊이와 아름다움을 나름대로 만끽했던 까닭이리라.
그처럼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뭇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때가 되면 땅 사람들에게 밟히는 멋을 자아내고 또 나무들에게 거름이 되듯, 우리 일행들도 지금 나누고 있는 '사랑의 도시락'을 앞으로도 정성스럽고 알차게 꾸려나가길 모두 바랐을 것이다. 그보다 더 아름답고 깊이 있는 울림도 없을 것이요, 단풍이 주는 사명도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내장산 여행길은 단풍이 주는 참된 사명을 찾아 떠난 여행길이지 않나 싶었다. 정말로 고맙고 뜻깊은 여행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