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부암동에서 바라본 자하문길. 멀리 보이는 산이 북한산이다.
 부암동에서 바라본 자하문길. 멀리 보이는 산이 북한산이다.
ⓒ 조정래

관련사진보기


"종로 큰길은 너비가 지금의 반이었다. 이 길을 전차, 쇠수레, 말수레, 손수레, 자전거, 자동차, 인력거 따위가 다녔다. 시내 버스는 없었다. 종로에서 동대문까지는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인도나 차도가 붐비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모두가 슬슬 다녔으니까.…전차는 앞에 거치는 것이 없어도 땡땡땡 종을 치며 슬슬 굴러가고, 자동차는 이따금 빵빵 경적을 울리고 스르르르 달려갔다. 속력을 내지 않았다. 속력을 낼 수 있는 것은 자전거였다."

<내가 자란 서울>(글 어효선)에 실린 글의 일부다. 시대는 1950년대다. 자동차가 적었던 시절의 넉넉함이 글 속에 담겨 있다. 전차와 자동차가 속력을 내지 않고 스르르 달려갔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엔 속도를 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길이 좁았고, 지금처럼 반듯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로보다는 골목이 많았던 시절이기도 하다.

부암동 무계정사1길. 골목길을 구경하면서 무계정사까지 갈 수 있다.
 부암동 무계정사1길. 골목길을 구경하면서 무계정사까지 갈 수 있다.
ⓒ 김대홍

관련사진보기


어느 샌가 길은 아주 넓어졌고 반듯해졌다. 그 대신 풍경은 50여 년 전과 정반대가 됐다. 사람과 자전거가 눈치를 살피며 스르르 달려가고, 자동차는 속도를 낸다.

'넓고 곧은 길이 좋다'는 고정관념이 언제부턴가 대세가 됐는데, 유명한 건축가 故 김수근은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라고 한 바 있다. 여기서 중심은 '사람'이다. 사람에게 좋고 자동차에게 나쁜 길이 좋다는 뜻이다.

조현세 건아컨설턴트 대표는 '사람의 길'이란 글에서 "'뉴타운사업'이 계속 확대되는 한 대한민국의 모든 골목길은 자취를 감출 것"이라며 세계석학들이 방문하는 동경외곽 유명한 주택가 '골목길투어'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네팔 카트만두 근교 골목길 박타푸르(Bhaktapur)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람을 위한 도시를 위해서 골목길을 지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람을 위한 길… 어쩌면 '자전거'와 '골목'이 그런 점에서 궁합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평대군, 흥선대원군이 꿈을 키우던 마을

무계정사. 세종의 세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을 찾아서 별장을 지은 곳이다.
 무계정사. 세종의 세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을 찾아서 별장을 지은 곳이다.
ⓒ 김대홍

관련사진보기


하루가 다르게 집을 허물고 다시 올리는 서울에서 종로구 부암동은 색다른 곳이다. 몇 십 년 전 지은 집들과 조선시대 고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왕산과 북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오를 땐 힘들지만, 오른 뒤엔 눈이 시원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11월 4일 세 명이 미니벨로(바퀴 지름 20인치 이하인 작은 자전거)를 타고 상명대 쪽에서 청와대쪽을 보고 자하문 고개를 올랐다. 흥선대원군 별장 사랑채와 손재형 저택이 있는 궁중요리집 '석파랑', 흥선대원군 별장인 '석파정'을 지났다. 지금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인 석파정은 개인 소유인 탓에 일반인이 드나들 수는 없다.

석파정 길에서 곧장 가면 자하문터널이고, 오른쪽으로 비키면 자하문고개길이다. 꽤 경사진 곳이라 자전거를 타면 겨울에도 땀이 난다. 몇 분 페달을 저으면 부암동사무소가 나타나는데, 여기서 오른쪽 '무계정사길'로 가면 안평대군 별장터를 만날 수 있다.

길은 무계정사1길과 2길로 나눠진다. 1길로 가면 골목길로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한다. 2길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도로다. 단 경사가 가팔라 오르막길을 싫어하는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가능하면 부암동사무소 앞쪽에 자전거를 묶고 걸어서 올라가면 편하게 동네 구경을 할 수 있다.

부암동엔 개가 많다. 한 때 골목엔 어디서나 개가 많았다.
 부암동엔 개가 많다. 한 때 골목엔 어디서나 개가 많았다.
ⓒ 김대홍

관련사진보기



몇 발자국만 오르면 이렇게 큰 나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큰 은행나무가 나타난다. 주위는 모두 공터이고, 공터 끝에 있는 기와집이 무계정사(武溪精舍, 서울시 유형문화재 22호)다.

무계정사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1418-1453)이 살던 별장으로,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을 찾아서 지은 곳이다. 1452년 단종 즉위 후 무계정사에서 군사훈련을 하기도 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흥룡지지(興龍之地)라 말하면서 역모의 땅으로 간주했다.

안평대군은 자신의 친형인 수양대군(세조, 1417-1468)에 맞서다 패한 뒤,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패한 자의 집터라서 그런가, 무계정사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대문은 허술한 철문이고, 마당은 무릎까지 자란 풀이 덮고 있다. 안평대군은 무릉도원이 이곳이라면서 터를 잡았다지만, 지금 이곳에서 낙원의 흔적을 찾기란 힘들다.

무계정사 입구쪽엔 <B사감과 러브레터> <운수 좋은 날>과 같은 작품을 남긴 현진건의 집터 표지석이 있다. 집은 온데간데없이 표지석만 남아 있어 쓸쓸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무계정사를 나와 다시 오르막을 타면 오래지 않아 반계 윤웅렬 별서(서울시 유형문화재 12호)가 나온다. 어느 곳엔 1800년대 말에 지어졌다고 나오지만, 이 곳 안내판엔 1930년대 지어졌다고 돼 있다. 아무튼 조선 후기 한옥 형태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영화 <동감>을 촬영한 집 앞에서. 가장 가까이 보이는 이가 주인 어르신이다.
 영화 <동감>을 촬영한 집 앞에서. 가장 가까이 보이는 이가 주인 어르신이다.
ⓒ 조정래

관련사진보기


여기서 다시 부암동사무소쪽으로 빠져나온 뒤, 왼쪽 길을 타고 올라가면 영화와 드라마에 나온 예쁜 집들을 볼 수 있다.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을 오르니, 일행의 입에서 "죽겠다"는 소리가 간간히 나왔다. 그만큼 이 곳 오르막이 가파르다.(나는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면 내려올 때 편하다고 말했지만, 일행 중 한 명은 '위험하다'면서 반대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 김삼순(김선아)이 살던 집.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 김삼순(김선아)이 살던 집.
ⓒ 조정래

관련사진보기

마당이 시원한 집 앞에서 잠시 땀을 식히며 집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한 어르신이 나와 말을 붙인다.

"어디서 오셨소?"
"홍제동서 왔습니다. 집이 예쁘네요."
"우리집이 영화 <동감> 촬영지였답니다. 이 집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옛날 집 모양을 그대로 갖고 있어서 빌려달라고 자주 찾아옵니다. 윗 집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을 촬영하고 난 뒤엔 한동안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더군요."

오르막 끝까지 올라가면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김삼순(김선아 역)이 살던 집을 볼 수 있다. 동네 주민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곳 주택의 평당 가격은 700만원선. 가격을 귀띔해 준 주민은 "조용하고 경치가 좋아, 이 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곳 100평 주택 팔아봐야 강남 주택 40평도 못 산다고 한다지만, 달리 생각하면 강남 40평으로 100평 역할을 하니 오히려 삶의 질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내 생각이다.

백사실 계곡 입구. 어머니 품 안에 들어온 듯 아늑하다.
 백사실 계곡 입구. 어머니 품 안에 들어온 듯 아늑하다.
ⓒ 조정래

관련사진보기


배추농사 무 농사 짓는 마을, 백사실 계곡 사람들

부암동엔 하림각이라고 하는 아주 유명한 중화요리집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중국집'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한데, 지난 7월 3천여명이 모인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 캠프 해단식이 열린 곳이 바로 하림각이다.

하림각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 빌라촌 사이에 있는 조석고개길로 쭉 걸어가면 신영동(법정동은 부암동)이라는 아주 조용한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조석고개라는 이름은 창덕궁 궁녀들이 아침저녁(조석)으로 이 곳 홍제천에 와서 빨래를 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고개는 짧지만 가파른 편이라 자전거를 타고 오르면 자연스레 숨소리가 거칠어지게 된다.

백석동천 유적지.
 백석동천 유적지.
ⓒ 조정래

관련사진보기


조석고개를 넘으면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엔 자하슈퍼가 있다. 가게 모양이나 주변 분위기가 꼭 영화 <라디오스타>에 나오면 어울릴 만한 곳이다.

이 곳 삼거리에서 오르막을 보고 산을 타기 시작해서, 10분쯤 올라가면 백석동천(白石洞天, 사적 제462호)을 만날 수 있다. 백사 이항복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라고 해서 백사실 계곡, 또는 백사동천이라고도 불린다.

흔히 북악산 하면 자동차 데이트길로 유명한 '북악스카이웨이'만 생각하기 쉽다. 그래선지 백석동천은 주말에도 아주 한적하다. 도심인데도 불구하고 도롱뇽, 버들치, 가재 등 1급수 어종이 산다. 사람 때를 적게 탔으니 아마 이렇게 맑은 기운을 갖고 있을 것이다.

자하슈퍼 입구쪽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한 할머니가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백석동천 간다고 하니, 이 곳에 묶어놓고 가란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이명박 찍어달라"고 말을 보태신다. '왜 이명박'이냐고 물었다. 어르신은 "경륜이 있지 않냐"고 조용히 답하셨다.

산을 타기 시작했다. 골목이 정겹다. 시멘트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난 벽이나 쇠창살로 모양을 낸 창문은 한때 골목에서 흔히 보았던 것들이다. 기와를 얹은 집들도 드문드문 보인다. 이런 골목은 왠지 사람들을 푸근하게 만든다.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을 보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생각마저 든다.

절을 지나서 조금 더 산길을 타자 백석동천이 나타난다. 계곡 옆에 동그랗게 비어 있는 공터가 있는데, 여기가 백석동천유적지다. 바닥에 잔뜩 깔린 낙엽들이 발길을 뗄 떼마다 바스락거린다. 유적지 주변은 공터인데다, 주위로 나무들이 호위하듯 서 있어 북악산 품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백사실 마을. 모두 16개 집이 있다.
 백사실 마을. 모두 16개 집이 있다.
ⓒ 김대홍

관련사진보기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백사실 지역 내 있는 16개 민가촌을 만날 수 있다. 민가에선 대부분 배추와 무 농사를 짓고 있다.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인사를 드렸는데, 한 어르신이 갑자기 불러 세운다.

"여기, 함부로 다니면 안돼. 여기는 등산로가 아니야. 민가란 말이야. 그리고 어른을 보면 인사를 꼬박꼬박 해야지."
"그래야죠. 그래서 인사를 드렸잖아요."
"어디서 왔나?"
"홍제동에서 왔습니다."
"아 홍지동?(잘못 들으신듯) 내가 홍지초등학교 3기야. 동기생이 세 명 남았는데, 내가 그 중 한 명이야. 이 곳에선 3대째 살고 있어.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나."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동아전쟁 참가했던 일까지 듣게 됐다. 그때 일로 TV에도 여러 차례 나왔다며 참전증을 보여주신다. 어르신께선 82세라고 하셨는데, 참전증을 보니 79세(29년생)다. 출생신고를 늦게 했거나, 참전증이 잘못 나온 모양이다. 3대째 살고 있다니 백사실 계곡 마을의 역사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부암동은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마을이다. <커피프린스1호점>의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부촌이라는 점만 부각된 감이 있는데, 그것은 일부분이다. 아파트와 거대한 빌라로 상징되는 서울에서 부암동은 개인주택이 대세다.

그리고 그 개인주택은 고급주택과 서민주택이 섞여 있다. 더불어 자연도 품고 있다. 서울에서 어르신이 갑자기 불러 세운 뒤 동네 자랑을 하고, "인사 안 하냐"고 훈계할 수 있는 곳이 과연 몇 곳이나 있을까. 부암동은, 그런 곳이다.

골목 여행을 할 때는 자전거를 타고 하는 게 어떨까. 골목 입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 뒤, 입구에선 천천히 걷는 것이다.
 골목 여행을 할 때는 자전거를 타고 하는 게 어떨까. 골목 입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 뒤, 입구에선 천천히 걷는 것이다.
ⓒ 조정래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환경운동연합 교육전문기관인 (사)환경교육센터가 '도시인의 문화환경기행'을 11월 10일부터 매주 토, 일요일 5회에 걸쳐 실시한다. 10일 첫번째 순서가 부암동이다. 이날 행사에 참가하면 백사실 생태 탐방과 환기미술관을 볼 수 있다. 1강당 회원 5천원(비회원 7천원). 02-735-8677, 7000



태그:#부암동, #골목, #자전거, #무계정사, #백석동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