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17일, 23일까지 3일간에 걸쳐 서울 상암동 문화콘텐츠센터에서 열린 문화콘텐츠 창작 사례 워크숍 현장.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문화콘텐츠 기획·창작 아카데미 주최로 열린 이번 워크숍에서는 만화와 영화, 게임 등 각각 장르별로 눈에 띄는 창작 사례가 발표됐다. 만화가 이현세, 영화감독 최동훈, 이인화 교수가 차례로 이야기한다.
“미하일 바흐친이 말한 민중의 문화, 비공식의 문화는 바로 게임이 아닐까. ‘개콘’이나 ‘웃찾사’와 같은 아주 민중적이면서도 말초적인 웃음을 주는 문화로서 게임에 주목해야 할 때다.” 대중적인 콘텐츠로서, 동시 접속자수 수십만 명을 넘는 위력적인 매체로서,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독립된 시장으로서의 충분한 가치를 자랑하는 온라인 게임. 이러한 온라인 게임의 성공을 결정짓는 요인은 무얼까. 게임시나리오 작가인 이인화 교수(본명 류철균·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는 그 성공요인을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 말하고 있다. 게임은 사라지지 않을 것 게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뉴미디어가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소설이 사라질 거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사라지는 것은 영화 같은 것이 될 것”이라고. “훗날 영화는 20세기에 소설이 게임으로 옮겨가면서 그 중간에 나타났던 과도기적 장르”로 기억될 거라고도 했다. 문화콘텐츠 창작은 앞으로 점점 더 온라인 접속이 아니면 작업하기 힘들어질 것이고, 이에 ‘불법다운로드 할 수 없는 책’과 ‘온라인 접속이 요구되는 문화콘텐츠 장르’만이 살아남게 될 거라는 것. 실제로 그렇다. 한 영화에 5억 명의 관객이 들거나 하나의 소설을 5억 명이 봤다고 하면 엄청난 이슈가 될 테지만 한 편의 게임을 5억 명이 한 것은 아무도 이슈로 인식하지 않는다. 게임은 소리 없이 수많은 유저, 즉 소비자를 생산해내고 있다.
스스로 게임광이기도 한 그는 10월 초 ‘헤일로3’를 하다 동시접속자수 80만 명에 크게 놀랐었다. 다른 어떤 매체도 대신해낼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낸 아이디어를 수십만 명이 같이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식의 집단지능의 공간은 온라인의 가상공간”이 온라인게임에서는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게임강국으로서의 우리나라의 위치는 어떨까. 1995년 12월 이래 우리나라도 2004년 현재 세계 게임시장의 31.3%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중국 쌍방향의 추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시장이 줄긴 했지만 좋은 게임이 계속 개발되고 있는 나라”라며 그가 가능성을 점쳤다. 더욱이 “남이 안하는 황당한 장르에 들어가 집단 지성력의 소비력으로,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온라인 게임을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어내지 않았나.” 그는 한편으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시장을 개척해 없던 것을 만들고, 각국의 불법서버를 단속하며 밤을 새는 노력으로 10년간 온라인게임 시장을 만들었지만 결국 미국의 물량 공세로 ‘헤일로3’ 같은 게임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더욱 철저한 접근과 기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개발자들이 자기들끼리 아는 정보만으로 진행해도 될 정도로 예산이 적었다. 고작해야 18억에서 20억 정도. 그러나 지금은 게임개발비만 100억 원이 넘을 정도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영화와 같이 판이 커졌으니 보다 철저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회사 형태를 갖춘 지 이제 10년인 한국의 게임기업들은 체계화와 함께 더욱 완벽한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낼 때다.” 성공하기 위해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올인하라 그렇다면 모범적인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무엇일까. 이 교수는 먼저 디지털 스토리텔링과 전통적 스토리텔링를 구분짓는 모티프 간 차이에 대해 들려줬다. 영화 <너는 내 운명>으로 본 전통적 스토리텔링 모티프는 ‘석중이 은하를 끝까지 사랑한다’다. 그 모티프가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인 것. 게임은 조금 다른데 즉, ‘요부의 서방이 사랑을 증명한다’는 모티프가 유저의 행동에 따라 시련이면 시련, 여행이면 여행 등으로 소재를 바꿔 계속 반복, 나열해가는 것. 이런 게임 속 디지털 스토리텔링 궁극의 목적은 ‘독창적인 세계관의 제시’에 있다. 즉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를 유저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도 ‘개발자의 시각’이 아니라 ‘사용자들의 시각’에서 본 새로움이다. 이러한 새로움들은 단순히 이야기만이 아니라 사물의 이름과 지명, 해당 세계의 문화 등 총체적인 모든 것들을 포함해야 한다.
“스토리 자체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경계 시스템, 어떤 세계, 어떤 배경과 아이템을 설정할 것인가다. 실제로 가상세계 속 지명, 사물의 이름, 사람들의 문화의 모습들이 부분적으로 설정한 스토리가 주는 새로움들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결합돼 게임이 독창적으로 보이게 한다.”
세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쉬운 이야기’와 ‘스펙터클’ 역시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동양과 서양에서 성공한 유일한 게임이자 한국에서도 1조 원의 수익을 거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사례로 들었는데, “특별히 독창적이어서가 아니라 기존 게임들이 가진 재미있는 점들을 모두 집어넣어 제일 커다란 맵에서 보여준 점”을 성공 이유로 분석했다. 게다가 이 게임은 “콘텐츠가 아닌 하나의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까지 보여준다”면서 “사용자들이 들어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구성한 점은 이 게임이 가상세계의 핵심을 적절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라 덧붙였다. 이러한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한 모범적인 전법 사례로 그는 ‘헤일로3’를 들었다. “스토리를 먼저 만들어놓고 그 스토리를 디자인팀, 프로그램팀, 기획팀, 마케팅팀이 계속 포착하면서 진행, 파워풀한 마케팅을 벌인 것”을 성공의 이유로 꼽았다. 이를 통해 이 게임은 발매 1주일만에 3천 억 원을 벌어들인 것이다. 집단창작물로서의 충분한 가치를 가진 게임 시나리오는 그러나, 아직까지 문화 장르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이 교수는 “게임시나리오가 최고의 영화, 연극, 소설이 주는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깨달음, 섬세한 감정표현 등을 주고 있지는 못하다”면서 아쉬움을 드러내는 한편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곧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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