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조상 묘를 '길지'로 이장했다고 해서 다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묘소를 옮겨간 곳은 충남 예산군 신양면 녹문리 산 13-1번지 일대. 이 곳은 '선인독서' 형국(선비가 책을 읽는 지형)의 길지로 발복이 빠른 게 특징이라는 게 자리를 잡아 준 풍수연구가 박만찬씨의 주장이다.
우리 역사 중 대권을 거머쥐기 위해 조상의 묘소를 이장한 것은 흥선 대원군이 원조격이다.
당시 흥선군 이하응은 정만인(鄭萬仁)이라는 지관이 "충남 덕산 가야산 동쪽에 2대에 걸쳐 천자(天子)가 나오는 자리가 있고 이곳에 묘를 쓰면 10년안에 발복할 것이다"라고 한 말을 듣고 당시 터에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을 불태우고 경기도 연천에 있던 선친인 남연군 이구(李球)의 묘소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로 이장을 한다.
그리고 이장한지 6년만에 지관의 예언대로 흥선군의 둘째 아들인 '명복'이 왕위에 올라 고종이 되고 결국 지관이 예언한 대로 2대에 걸쳐 왕이 나오게 된 것이다.
남연군의 묘소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지 최근 관리를 하는 예산군에서 봉분을 높이고 잔디를 입힌 다음 흘러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그물망을 뒤집어 씌워 놓은 우스운 모양을 하고 있지만 터는 풍수의 문외한이 보아도 기가 막힌 자리로 보인다.
양쪽으로 둘러쳐진 산의 봉우리가 마치 그 터를 향해 절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풍수가들은 이 모습을 보고 만조백관(萬朝百官)이 임금을 향해 조아리는 형상이라고 한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면 청룡,백호 여러 줄기가 혈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듯 맞대고 있어 어전회의(御前會議)를 하는 형상으로 가히 천자지지라 할만하다는 게다.
파락호로 불리던 이하응은 이처럼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조상의 묘소를 '천자가 나올 터'에 주저없이 옮긴 것이다.
1995년 당시 국민회의 총재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될 자리인 경기도 용인으로 가족묘를 이장해 199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말은 풍수가들 사이에 떠도는 신화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모묘소도 풍수가들이 즐겨 올리는 명당 중의 하나다. 멀리서 보면 평범하게 보이나 가까이 가서 살피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기막힌 제왕의 터라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도 전주 모악산에 묘가 있는 32대조인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의 기가 감응되어 49년 동안 북한을 다스렸다는 풍수가들의 말도 있다.
21세기 첨단 콤퓨터 시대에 종이조차 없던 죽간시대(竹簡時代)에 만들어진 '풍수지리설을 얼마만큼 믿어야 하나. 정말 죽어 땅에 묻혀 백골이 기를 통해 후손을 감응시킬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겉으로는 "무슨 백골에서 기가 나와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느냐"고 부정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믿기도 하고 기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 의식과 실 생활속에 풍수가 깊숙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 게다. 한서대에서 풍수지리학을 강의하기도 했던 충남 내포지역의 향토사학자인 이영하씨는 "터와 사람이 어울려야 기가 감응되고 발복이 되는 것이지 무조건 조상 묘를 잘 쓴다고 음덕을 입는 것은 아니다"며 "발복과 음덕을 바라기 전에 먼저 그만한 덕을 쌓아야 터와 사람이 어울 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