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헌책방 살리는 길


헌책방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때 제가 하는 대답은 오로지 한 가지. “손수 헌책방 나들이를 가신 다음,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이라도 사셔요. 그리고 헌책방 나들이를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쯤은 해 주셔요.”

 

우리가 우리 눈으로 보았을 때 반갑고 좋다고 느낄 만한 책을 꾸준하게 찾고 사고 읽으면, 헌책방 임자들은 우리가 다음에 찾아왔을 때에도 볼 만한 책이 있을 수 있도록 애쓰면서 갖춰 놓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지 않는다면, 한두 번 찾아간 뒤 더 안 찾아간다면, 헌책방 임자로서는 우리한테 반가울 책을 갖춰 놓을 까닭이 없겠지요. 찾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요즘 헌책방에 가득가득 쌓여 있는 책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가 찾고 바라는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내는 책도 그래요. 출판사에서 돈 되는 책을 낸다고 하지요? 왜 그럴까요? 또 돈 되는 책이란 무얼까요? 바로 다름아닌 우리가 바라는 책이에요. 우리가 많이 찾고 사고 보니까 많이 팔리고, 이렇게 많이 팔리니까 돈이 됩니다.

 

우리가 처세나 자기 한 몸만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니까, 출판사도 이런 책을 내고, 또 이런 책이 나오면 곧잘 사니까 출판사도 이런 책을 냅니다. 이런 흐름을 우리 스스로 끊지 않으니까, 오히려 즐기니까 자꾸자꾸 책 흐름이 이렇게 가고 맙니다.

 

헌책방 사라지는 일이 안타깝고, 헌책방에서 반가운 책을 만나기 힘들다면, 더더욱 헌책방에 즐겨 찾아갈 일입니다. 살 책이 없어도 즐겨 찾아가서 둘러볼 일입니다. 꾸준히 찾아가는 우리가 살 만한 책이 없다고 느껴서 빈손으로 나온다면, 우리보다 책방 임자가 더 미안하고 부끄럽고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이런 흐름이 하루하루 쌓이고 이어지는 동안, 자연스럽게 헌책방 문화는 밑바탕이 튼튼해지고 조금씩 나아지면서 자리 잡을 수 있어요. 헌책방 문화가 걱정스럽다면, 헌책방에 가고 볼 일이며, 애써 찾아간 헌책방에서 책 한두 권이라도 반드시 사서 들고 나오도록 책꽂이를 구석구석 살피고 뒤질 일입니다. 이 일만 하면 넉넉합니다.

 

ㄴ. 내가 읽는 책


제가 읽는 책은 외로움ㆍ고달픔ㆍ아픔ㆍ슬픔 들을 잊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 힘을 얻으려고 새로운 책을 찾아나서고 가슴에 담습니다. 그러나 책만으로는 제 가슴을 채울 수 없으니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셔요.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또 술을 마신다고 해서, 외로움ㆍ힘겨움ㆍ괴로움들을 가실 수 있지는 않아요. 조금씩 벗겨낼 뿐이에요. 그러니, 책을 늘 가까이하면서도 사람과 술도 가까이하고, 가만히 하늘도 보고, 땀 빼며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자전거 타기도, 사진 찍기도,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기도, 모두 모두 저를 차분히 되새기며 가꾸는 일이 됩니다. 어느 하나 빠뜨릴 수 없습니다.

ㄷ. 새책과 헌책


헌책방에서 김수영 산문 모음 하나 삽니다. 5000원. 1976년에 나온 이 책, 만나기 참 힘들데요. 뜻밖에 운 좋게 만납니다.

 

새책방에 찾아가 막 나온 책 하나 고릅니다. 8000원. 가만가만 읽으니 참 좋은데 언론매체에 거의 소개가 안 된 책, 소개되었어도 한 줄짜리, 아마 새책방 책꽂이에서 찾기도 어렵고 잘 안 팔리겠지요.

 

언제라도 찾아가면 살 수 있는 새책방 새책보다는, 그날그날 운에 따라 만나거나 못 만나는 헌책방 헌책이 훨씬 반갑고 놀랍고 기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살 수 있어 보이는 새책방 새책도, 얼마나 사람들이 찾느냐에 따라서 반품이 되느냐 꾸준하게 제자리를 지키느냐가 갈리는 오늘날이라, 새책방에서 안 팔린 책은 헌책방에도 안 들어오기 일쑤예요.

 

그래, 요새는 새책방에서 만나는 훌륭하고 알뜰한 새책 하나를 따끈따끈할 때 곧바로 만나서 살 때 아주 뿌듯하고 보람찹니다. 새책방 새책 한 권 값은 헌책방에서 제법 묵은 옛책 하나 사는 값하고도 거의 같은 셈이거나 외려 더 비싸지만 말이에요.

 

ㄹ. 책 읽는이를 바보로 만드는 말


… 책꽂이에는 헌책방을 무수히 쏘다닌 자의 흔적이 없다. “새 책을 제값 주고 사서 읽는 사람처럼 바보는 없습니다. 두세 달만 기다리면 반드시 헌책방에서 만날 수 있거든요.” 그는 출판의 흐름에 맞춰 신간들을 꾸준히 섭렵한다. 단 두세 달이 늦을 뿐이다 …〈한겨레〉 2006.11.3.


“새책을 제값 주고 사서 읽는 바보”를 말하는 사람이나, 이런 말을 받아적으며 기사로 쓰는 사람이나, 책 읽는 우리를 바보로 만듭니다. 이 말은 새책방을 꾸리는 사람도, 헌책방을 꾸리는 사람도 바보로 만듭니다. 새책방이 하는 몫이 무엇인지, 헌책방이 하는 몫이 무엇인지를 잊고 있습니다.

 

헌책방에 들어오는 책이 어떻게 하여 들어오는지, 갓 나온 책을 그때그때 곧바로 사서 읽는 사람 마음이 어떠한지 짓밟아 버립니다. 못 볼 것을 보고 말았군요. 눈을 씻어야겠습니다.


태그:#책읽기, #책생각, #헌책, #새책, #읽는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