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1월의 나무는 자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빈 가지에서 충만함의 기운을 본다.
▲ 나목 11월의 나무는 자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빈 가지에서 충만함의 기운을 본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인디언의 달력에 의하면 11월은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크리크족), 강물이 어는 달(히다차족), 만물을 거둬들이는 달(테와푸에블로족), 작은 곰의 달(위네바고족), 기러기 날아가는 달(키오와족),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체로키족)이라고 합니다. ‘눈마중달’이라는 살가운 우리말도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체로키족의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 마음에 가장 많이 와 닿습니다. 텅 비어 버린 숲 같지만 나목의 나무들이 남아있고, 텅 빈 들판 같지만 나락을 떠나보낸 벼의 그루터기와 농작물로 인해 제 땅을 잃었던 풀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몸을 바짝 붙이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조차도 사라지는 날이 있다면,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날이 있다면 그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돌아보게 됩니다.

공룡이 멸종된 이유에 대해서 피드백이 너무 느렸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몸집이 너무 거대해서 들쥐 같은 작은 동물들이 자기 몸의 일부를 갉아먹어도 얼른 알아차리지 못한 까닭에 멸종했다는 것이지요. 가설일지언정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삶 속으로 어떤 신호가 올 때 그것을 신속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무뎌지면 그 사람은 이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의 대열에서 숨 가쁘게 뛰어가다 보면 그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설령 자각을 한다고 해도 ‘너무 늦었어’ 혹은 ‘저기까지만 가서 생각해 보겠어’ 뒤로 미루게 되지요. 그러다가 자각에 대해 반응해야 할 시간을 놓쳐버리고 후회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돌아보면 아쉽지 않은 시간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쉬운 시간을 교훈 삼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에 발목을 잡혀 후회의 시간 언저리를 맴돌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자기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니 사람입니다.

사람의 눈은 참 신비스럽습니다. 그냥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 보입니다. 때론 눈에 보인다고 다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속에 들꽃이 가득 차 있을 때에는 깊은 산 중에 홀로 피어있는 꽃들도 잘 보이더니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나니 깊은 산 중은 고사하고 걸어가는 길가에 피어있는 꽃도 보이질 않습니다.

마음이 어두워지면 눈도 어두워진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보고 싶은 것이 보이고,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지는 것, 그것이 삶의 비밀입니다.

11월의 숲에 서니 옷을 벗어버린 앙상한 나무들이 숲을 지키고 있습니다. 낙엽은 쓸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무가 한 번쯤은 자기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흔적이요, 다시 그들을 속내로 모심으로 온전하게 하나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낙엽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을 위한 따스한 배려가 낙엽이었습니다. 나뭇가지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 같지 않은데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답게 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눈마중달, 첫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가서 맞이하는 것, 그것은 참으로 정겨운 일입니다. 마중물이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맑은 물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무언가를 ‘마중’한다는 일은 참 행복한 말입니다. 첫눈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가을을 배웅해야겠지요. 떠남, 보냄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마중할 수 있다는 것은 ‘텅 빈 충만’과도 통합니다.

11월 초입, 입동을 앞두고 모든 것들조차도 사라지는 날이 있다면,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날이 있다면 그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돌아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개인홈페이지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눈마중달, #11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