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결국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통령 선거를 한달 여 앞둔 11월 7일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정한 조건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과거 '차떼기'의 원죄가 있다고 해도 출마하지 못하란 법은 없다.

 

하지만 그의 대통령 선거 출마는 여러 모로 잘못된 것이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든 실패하든, 중도에 포기하든 간에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비판받아야 한다. 그가 며칠을 밤새워가며 작성했다는 출마선언문을 보더라도 그 점은 명백하다. 그의 출마선언문은 국민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사죄와 용서를 비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사죄와 용서를 빌면서 대통령으로 뽑아달라?

 

사죄와 용서를 비는 이상한 대통령 출마 선언

 

정계 은퇴선언은 '정계 휴식선언'이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은퇴 선언을 할 이유가 없다. 눈물을 보이며 국민에게 정계에서 떠나겠다는 약속을 한 사람이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달 여 앞두고 다시 출마하겠다고 하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을 우습게 아는 행태라 할 수 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을 여덟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보다, 국민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할 일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국민을 사랑하는 길이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정계 은퇴 약속을 번복하고 4수 끝에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20세기 보스정치의 시대가 아니라, 21세기 정당정치의 시대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의 정계 은퇴 약속 번복도 비판받아 마땅했지만, 이회창씨같이 대선을 불과 한달 여 앞두고 자신이 만든 정당에서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가 엄연히 있는데 탈당해서 출마하는 식은 아니었다.

 

이는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 일종의 경선 불복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경선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해서 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은, 선거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 뿐이지 소속 당의 후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경선 불복과 다르지 않다. 그의 말대로 10년 동안 분신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당을 단지 대선 출마를 위해 떠난다는 점을 보더라도 그렇다.

 

그의 대선 출마 선언문을 보더라도 그가 대선 출마를 하겠다는 이유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첫째로 그는 좌파정권을 종식시켜 정권교체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철지난 구호에 얼마나 국민들이 동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지속적으로 50%를 넘는 지지율을 기록해 오면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는 점에서 정권교체라는 그의 출마 이유는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그가 출마함으로써 대선 판도의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았는가?

 

또한 이회창씨는 현재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불안한 후보이고, 국가정체성에 대한 뚜렷한 신념과 철학이 불분명한 후보라서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정당이나 국민들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다. 불안하든, 불분명하든 한 정당이 선택한 후보이고, 나중에 국민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이다.

 

 

이회창씨도 마찬가지로 불안한 후보다

 

이것은 남이 못되길 바라는 정치와 다를 바 없다. 불안하기로 따지면 그도 마찬가지다. 2002년 대선 불법자금, 이른바 '차떼기'의 그늘이 아직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다.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삼성의 불법대선자금이 다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아들 병역비리 의혹도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도 과거 잘못된 정치행태와 무관할 수 없는 구시대 정치인이다.

 

이회창씨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며 출마 선언문에서 밝힌 그의 공약들은 기존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공약과 크게 보자면 비슷하긴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오히려 더욱 우려스러운 면이 보인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6자 회담의 합의로 북핵불능화 조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다가오는 북핵 재앙' 운운하는 이회창씨야말로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불안한 후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가 '법치 혁명'의 예로 '시도 때도 없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도심의 도로를 점령하여 교통마비를 가져오는 일'이나 '대한민국 군인들을 공격하거나, 젊은 전경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자들'에 대해 '공공의 적'으로 엄단하겠다는 말도 흡사 20년도 더 지난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것인지 무척 걱정스럽고 불안한 것이다.

 

이회창씨는 우리나라의 정당들이 정상적인 정치적 절차를 거쳐 쌓고자 노력해온 대통령 선거 과정을 일시에 혼란에 빠뜨려 버렸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회창씨가 이 시점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리라고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정치인의 약속에 대한 불신을 증가시켰고, 예측 가능한 정치를 만드는 데 큰 훼방을 놓은 셈이 되었다.

 

이회창씨야말로 정당정치를 혼란에 빠뜨린 '공당의 적'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살리기에 앞서 대한민국의 정치를 망치고 있는 '정치 불신의 도우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이 시점에서 대통령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단지 어지럽지만 풍성한 뉴스거리와 '술자리의 안주거리' 정도일 것이다.


#이회창#2007대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