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어느 해보다 자주 비가 내렸다. 햇볕을 받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비를 맞는 논밭의 작물들을 바라보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저렇게 뻔한 날이라곤 없이 비가 내리니 곡식이 익기나 할까 하고. 그러나 "석 달 장마에도 푸나무 말릴 볕은 난다"라는 옛말 그대로였다. 가을이 와 새삼스럽게 바라보니, 언제까지나 익지 않을 것 같던 곡식들이 익긴 익었다.
지난 일요일(11월 4일), 대전 근교의 산을 오르면서 보니 가을 나무들의 빨간 열매가 몹시 아름다웠다.
지난 여름내
땡볕 불볕 놀아 밤에는 어둠 놀아
여기 새빨간 찔레 열매 몇 개 이룩함이여
옳거니! 새벽까지 시린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으며 여물었나니- 고은 시 '열매 몇 개' 전문, 실천문학사 <올해의 시>,1991어쩌면 저 붉은 열매를 전자 현미경으로 잘 들여다 보면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던 열매들의 귀를 발견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어렸을 적엔 열매가 얼마나 고귀한지 몰랐다. 가을에 나무하러 지게 짊어지고 산에 올라가면 저런 나무 열매로 배를 채우곤 했으니까.
정금나무의 까만 열매와 '보리똥'이라 부르던 보리수나무의 바알간 열매는 새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따먹다 시간이 없으면 나뭇동에다 꽂고 내려와 집에 돌아와 일삼아 따먹기도 했다. 명감나무 열매는 빨갛고 먹음직스럽게 생겼지만 맛이 심심한 게 흠이었다. 그래도 정금나무나 보리수나무가 없을 때는 "꿩 대신 닭"이 되어준 고마운 열매였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수렵채취시대'였다. 가을걷이가 끝난 한겨울엔 토끼몰이도 했으니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이제 '수렵채취의 시대'는 사라졌다. 도라지나 더덕같이 산에나 가야 만날 수 있었던 식물들도 이젠 재배를 한다. 조선시대엔 사과의 전 단계 과일인 능금도 거의 야생의 나무에 가까웠을 것이다. 큰 능금은 '내(奈)', 작은 것은 '임금'이라고 했다는데 사진으로 보는 능금은 크기가 꽃사과만 하다.
능금은 진짜 임금처럼 상서로이 여겼으며 종묘 제사용 과실로도 쓰였다고 하니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 알만 하지 않는가. 능금이란 말 대신 사과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16C에 이르러서였다. 이름이 달라졌다는 건 야생에서 재배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뜻이 아닐는지.
만약에 인동덩굴의 열매만큼 작은 과실인 정금나무 열매를 조금만 더 크게 재배할 수만 있다면 아주 독특한 맛을 지닌 매력적인 과일이 될는지도 모른다. 개량하기 전의 사과인 능금도 그렇게 작은 과일이었다지 않는가.
멀리서 보면 시멘트 바닥에 엎질러진 김치 국물 같다 가까이 와보렴, 하고 바람이 손 흔들기 전엔 (바람은 아파트 단지 보일러 굴뚝에서 연기를 만졌나보다, 검다) 빨간 열매들, 요즘 아홉시 뉴스 앵커들 옷깃에 달린 브로치를 닮았지 추워 떨고 있는 열매들, 자세히 보면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맨발에 얼어붙은 발가락, 시든 잎새라도 있었으면 그리 춥지 않을 것을- 이성복 시 '빨간 열매들' 전문, <문학동네> 1998 겨울호'수렵채취의 시대'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맛을 보면서 오관을 만족시킨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TV나 사진을 통해 '눈팅'으로나 만족해야 하는 시대이다. 사람은 오관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불만족스러워 하는 존재들이다. 이런 불만족이 쌓여 우린 서서히 모질고 모난 사람들이 돼 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