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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하동으로 들어서기 전, 체부동에 있는 골목이다.
▲ 붉은벽돌길 누하동으로 들어서기 전, 체부동에 있는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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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한옥마을 하면 단연 북촌을 꼽는다. 청계천과 종로 윗동네라고 해서 북촌이라 불리는 이 곳은 가회동·원서동·재동·계동·삼청동 일대로, 한옥 900여 채가 남아 있다. 서울에선 단연 최고다. 2001~2006년 5년 동안 북촌 가꾸기 사업이 벌어지면서 일대가 새 단장을 했다. 그래서 집과 골목이 상당히 깨끗한 편이다.

그런데 북촌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소개할 곳이 있다. 바로 인왕산 자락에 있는 누상동 누하동을 중심으로 한 효자동이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지체 높은 양반들이 산 곳이 북촌이었다면 누상동 누하동은 중인들이 모여 살았다. 중인들이 주로 위항(委巷, 좁고 꼬불꼬불한 작은 길과 작은 집이 모여 있는 동네)에 살았는데, 위항의 대표 지역이 바로 누상동 누하동이다.

꼬불꼬불 날 것 그대로의 그 골목길

누하동 골목길
 누하동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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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까지도 초가집들이 듬성듬성 섞여 있었다고 알려진 누상동 누하동엔 지금도 기와집과 꼬불꼬불한 작은 길이 많다. 북촌이 꾸민 느낌이 강하다면 누상동 누하동은 날 것 그대로인 느낌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더 따뜻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흔히 '가난한 예술가'라고 하는데, 이 곳엔 이름난 예술인들이 살았던 집이 적지 않다. '소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1915~1956)이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집이 누상동에 있고, 동양화가 청전 이상범(1897~1972)이 작고하기 전까지 34년간 작품활동을 하던 청전화숙(靑田畵塾)이 누하동에 있다.

천재 시인으로 유명했던 이상이 스물세살 때까지 21년간 살았던 본가는 누상동 누하동과 붙어 있는 통인동에 있다. 조선 후기 문신 윤덕영(1873~1940)이 그의 딸을 위해 세운 집인 '박노수 가옥'(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은 옥인동에 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집은 1937년(추정)에 지은 2층 벽돌집이다.

이들 누상동 누하동 통인동은 옥인동 창성동과 함께 효자동 관할 아래 있으며, 넓게 이 일대를 효자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난한 서민들과 예술가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이 곳을 9월부터 11월까지 다섯 차례 자전거와 도보로 누볐다.

누하동 기와집들. 누하동이란 동명은 광해군 때 인경궁을 증축하면서 연회장으로 쓴 누각이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누하동 기와집들. 누하동이란 동명은 광해군 때 인경궁을 증축하면서 연회장으로 쓴 누각이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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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들어올 수 없는 곳, 그래서 안전한 길

누상동 누하동을 구경하기 위한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사직공원 옆에 있는 사직아파트 옆 골목에서 시작하는 방법, 누하동에 있는 서울환경연합 옆 골목에서 시작하는 방법, 통인 시장에서 인왕산을 보고 들어가서 구경하는 방법. 그 외에 인왕산길에서 옥인아파트를 보고 내려가는 방법도 있는데, 아무래도 좋다. 골목이란 보는 방향에 따라 보는 맛이 다 다르니 방향을 달리해서 다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효자동 집과 골목엔 꽃과 풀이 많다.
 효자동 집과 골목엔 꽃과 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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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길은 사직아파트 옆 골목으로 들어가서 시작하는 방법이다.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대로를 가능한 한 적게 걷고 바로 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건물이 별로 없는 이 일대에서 사직아파트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동짜리 이 아파트 옆 길로 들어서면 곧바로 골목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골목길에선 골목의 전형을 잘 볼 수 있다. 좁고, 땅 모양을 따라 절묘하게 휘어진 길이 잘 드러난다.

미로와 같은 이 길엔 자동차가 들어올 엄두를 낼 수 없다.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길. 골목길이 안전한 이유다. 도시건축가 김진애씨는 "한옥 마을의 의미와 가치'라는 글에서 '북촌에서 길은 좁을수록 좋다. 북촌은 동네로 보존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길이 좁아서 좋은 곳이 꼭 북촌만은 아닐 것이다.

대오서점
 대오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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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동네선 재미있는 게 가게 간판이다. '좀 더 크고 화려하게'를 내세우는 도심지 간판과 달리 골목에서 보는 간판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크기도 자그마하고, 글씨도 손으로 직접 휘갈겨쓴 게 많아 글쓴이의 마음씨를 엿볼 수 있다. 모든 게 다 비슷비슷한 요즘, 골목동네 간판도 나중엔 문화재로 지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누상동 누하동 길에선 풀과 꽃을 많이 볼 수 있다. 대문 위와 마당은 물론이고, 집 앞에도 화분에서 꽃과 풀이 자란다.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씀씀이를 골목에선 느낄 수 있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시골을 떠나 도시 한 귀퉁이에 정착한 사람들이 도시에 뿌리내리고픈 마음을 한 뼘 땅에 뿌리내린 풀을 통해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하는.(영화 <레옹>을 많이 본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 동네 대문 위와 담엔 쇠침이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곳도 풀이 감고 있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여하튼 땅이 한 폄이라도 있는 곳엔 반드시 꽃과 풀을 심었고, 한 뼘도 없는 곳엔 화분이라도 갖다놓아서 심었다.

골목에선 지붕과 담은 아주 훌륭한 건조대다. 이불과 옷, 신발 등 다양한 것들을 넌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일까?
 골목에선 지붕과 담은 아주 훌륭한 건조대다. 이불과 옷, 신발 등 다양한 것들을 넌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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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 그 속에 사람의 정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이 다닥다닥 붙어사는 곳이니 골목은 사람끼리 부딪힐 일이 많다. 골목의 특징은 한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좁은 길에 열 집이고 스무 집이고 들어서 있다는 점이다. 한 평 정도 되는 땅에 대문 세네 개가 모여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안쪽에 사는 사람이 밖에 나가려면 다른 집 대문을 몇 번이나 지나게 된다. 잘못을 쉽게 저지르기 힘든 구조가 골목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이 20년 넘게 살았던 집. 지금은 지붕만 남아있는 상태다.
 이상이 20년 넘게 살았던 집. 지금은 지붕만 남아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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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요즘 같이 남 일에 신경 쓰지 않는 세상에서 골목에선 이웃을 생각하는 정을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누상동 이중섭 집을 찾아갔을 때다. 골목이 워낙 좁아서 사진 찍을 각도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한참 방향을 찾다가 앞집 담벼락을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우산을 쓰고 가던 아주머니가 뒤돌아서더니 "누구세요? 어디 분이세요?"라고 묻는 것이다. "이중섭 가옥 찍으러 왔다"고 하니까, 그때서야 의심하는 표정을 풀면서 "이 동네 사람들 다 아는데,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요"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분은 집으로 가는 내내 나를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을에서 빠져나올 땐 고마운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일행 세 명이 잔비를 맞으며 걷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아이구, 비를 맞네"라며 놀라워하셨다. 그리곤 "세 사람이 이 우산 쓰고 가요"라고 하면서 불러 세웠다. 마음만으로도 고마웠다. 아마 우산을 받고서 다음에 찾아뵈었다면 또 다른 인연이 됐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용기를 내진 못했다.

골목 동네라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니 골목에도 소란이 없을 수 없다. 골목 사람들은 벽보를 붙여서 뜻을 종종 나타낸다. '대문을 닫고 다니자'(대문을 열어 놓으면 지나다니는 데 방해가 되니까),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 '꽃을 꺾지 말자'와 같은 벽보들이 붙어 있는데, 90% 이상은 쓰레기 문제였다. 도시 공동체 사회에서 쓰레기 문제가 가장 큰 문제임을 느낄 수 있다.

골목에 살다 보면 부딪힐 일도 많다. 특히 쓰레기 문제가 가장 크다.
 골목에 살다 보면 부딪힐 일도 많다. 특히 쓰레기 문제가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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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방법은 없을까

효자동 구역 내에 이상과 이중섭이 살던 집을 찾기란 숨은 보물찾기와 마찬가지다. 아무런 방향표시가 돼 있지 않을뿐더러, 집 앞에 도착해도 맞는지 틀린 지 가늠할 수 있는 표식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상 집 같은 경우는 지붕만 기와 형태가 남아 있고, 건물은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어, 알고 찾아가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 없다.

우리가 보존에 인색하고 개발에 얼마나 열을 내는지 이들 유적지들을 찾아다니면 제대로 알 수 있다.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박노수 가옥인데, 그 집은 효자동 구역 내에서 북쪽에 있는 옥인동에 있다. 박노수 가옥은 일본 강점기에 지어진 집으로 한옥 양식이 중심이면서도 일부 서구식이 더해진 독특한 2층 집이다. 1층은 온돌과 마루, 2층은 마루방 구조로 되어 있으며 집 안에 벽난로 3개가 있다.

멀리서 봐도 꽤 예쁜 집이라 쉽게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나무와 잎이 많아서 2003년 사진을 여기에 올린다.
▲ 박노수 가옥 멀리서 봐도 꽤 예쁜 집이라 쉽게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나무와 잎이 많아서 2003년 사진을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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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수 가옥에서 조금 더 언덕 쪽으로 올라가면 옥인동 시범아파트가 나온다. 옥인동 시범아파트는 60년대말 70년대초 서울시가 지은 시범아파트 8곳 중 한 곳으로 인왕산 오르막에 지어진 모양새가 무척 독특하다.

미술가 정재호씨가 2005년 금호미술관에서 '오래된 아파트'라는 주제로 회화전을 연 적이 있는데, 그때 찾은 곳이기도 하다. 정재호씨는 30~40년 된 아파트들을 찾아다니면서 "오래된 아파트는 도시빈민들의 주거이며, 노후하여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시급히 철거되거나 재건축되어야 하는 도시의 흉물이라는 일반의 인식에서 벗어나서 오래된 아파트가 가진 풍부한 의미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생각은 내가 골목에 대해 가진 생각이기도 하다. 길 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우산을 선뜻 내줄 동네가 내가 알기엔 서울에서 그다지 많지 않다. 누상 누하동에선 그게 가능하다. 무조건 동네를 밀고 빌라나 아파트를 세우는 대신 골목이 가진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 이상범 집 - 누하동 182, 이중섭 집 - 누상동 166-10, 이상 집 - 통인동 154-10

■ 제1회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한옥전이 11월 14일부터 12월 14일까지 서울 곳곳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우리집은 한옥이다'라는 주제를 내걸고 윤보선가, 하비브 하우스(주한미국대사관저), 심심헌 등 서울 시내 14곳의 대표 한옥을 소개한다. ▲11.14-19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학고재 ▲11-21-12.2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39동 ▲12.4-12.14 고려대 이공대 캠퍼스 하나스퀘어 전시홀. 담당 : 김미현 간사(02-3675-3402)



태그:#골목, #효자동, #누하동, #누상동,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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