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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의 명물이 된 납작만두, 만두소는 당면과 파가 형식적으로 들어갔을뿐이다
대구의 명물이 된 납작만두, 만두소는 당면과 파가 형식적으로 들어갔을뿐이다 ⓒ 맛객

11월 초 대구, 어둠이 내린 수창초등학교 정문.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찾을 수 없다. 정문 안에 서 있는 한 아이에게 물었으나 모른다고 대답한다. 어쩌면 인적 드문 이곳에서 저녁에도 문을 열고 있을 거라는 건 나만의 기대일지도 모른다. 정문을 바라보고 오른쪽 편으로 걸음을 옮긴다. 조그만 골목 4거리가 나오고 모퉁이에 목조건물이 서 있다. 아! 이곳이구나…. 직감으로 알았다. 하지만 굳게 닫혀져 있다.

“저기가 납작만두 파는 데예요?”

바로 앞 건물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네 맞아요. 근데 지금은 안해요.”
“언제부터 문 닫았어요?”
“오래 됐어요. 문 닫은 지….”


오기 전, 울산에서 인터넷으로 납작만두를 검색했다. 남산동에 자리 잡은 미OO 납작만두가 제법 눈에 띈다. 대구에서 납작만두 하면 이 집을 알아주나 보다. 점찍었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오면서 다시 납작만두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수창초등학교 담벼락의 납작만두 포장마차’ 라는 제목, 끌린다. 딱 1년 전 오늘(2006.11.6) 수창초등 57회 동기모임 카페에 실린 글이다. 내용을 살펴본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담벼락에서 납작 만두를 팔던 그 포장마차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 번 찾아가보려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몇 년을 별러온 끝에 며칠 전 드디어 그곳을 찾아가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정문 앞 모퉁이에 낡은 포장마차 하나가 근 삼십오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채 거짓말처럼 서 있었다. 죽마고우를 만나는 설렘과 반가움을 안고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장도 예상대로 그대로였다. 모두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포장마차는 삼십오년의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느낌이었다.

납작만두와 더 없이 잘 어우리는 정취가 느껴진다.

주인장은 삼십오년을 포장마차에서 납작 만두 하나만 팔아 왔다고 했다. 납작 만두를 팔아서 세 아들을 모두 공부시켜 장가보내고, 집도 두 채나 장만했다며 뿌듯해했다. 넉넉한 얼굴과 여유있는 미소가 보기 좋았다. 아직도 자신의 납작 만두 맛을 못 잊어 타 도시에서도 찾아온다고 흐뭇해했다.(생략)

이 글을 읽고 나니 미OO 납작만두에서 수창초등 할아버지 납작만두로 급 변경된다. 그렇게 해서 찾아왔는데 할아버지도… 정취도 온데간데없고 쓸쓸함만 감돈다.

나무로 짜여진 가건물, 한눈에 봐도 튼튼해 보인다. 포장마차도, 그렇다고 건물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곳에서 근 35년 동안이나 납잡만두를 팔아왔다니. 이곳을 지켜온 할아버지는 작년에 고희를 맞았다고 한다. 올해 우리나이로 71세. 할아버지 컨디션에 따라 문 닫은 날이 점차 많아졌다고 하는데 이제 영영 장사를 접은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안겨준 음식고향 하나가 이렇게 사라져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안겨준 음식고향 하나가 이렇게 사라져가고 있다 ⓒ 맛객

맛을 찾는 나그네는 수창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처럼 이곳에 대한 추억도 그리움도 없다. 오늘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고 찾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아주 오랜 세월을 보낸 후 폐가가 된 고향집을 찾은 기분처럼 아련함이 밀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동안 가라앉은 마음으로 그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그곳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좀 더 일찍 찾아올 걸….”


#납작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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