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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마을에 사는 지인이 단감을 보내왔다. 마당 끝 단감나무에서 열린 것이라는 데 어찌나 크고 실한지 당장 오일장에 가지고 나가 좌판을 벌여도 금방 팔릴 것 같은 상품(上品)이었다.

 

그전에 또 다른 지인이 홍시를 보내왔다. 울타리 경계 소임을 맡고 있는 감나무에서 딴 것이라는데 그 또한 보자마자 군침이 돌 것 같은 상품 중에 상품이었다. 같은 홍시 중에도 그 과육이 쫄깃쫄깃하면서 단맛이 어느 과일 못지 않는 파시감.

 

파시감을 보니 홍시를 유난히 좋아하시던 우리 어머니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늦가을이면 잊지 않고 챙겨드려야 되는 게 홍시감일 정도로 우리 어머님은 홍시를 좋아하셨다.

 

시장 좌판에 쪽 고른 크기로 진열되어 있었던 홍시. 보기 좋고 때깔 좋았지만 맛은 별로였다. 아마도 속설대로 딱딱한 감을 카바이트로 익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홍시 좋아하시는 우리 어머님께 이렇게 맛있는 '파시감'을 맛보게 해드리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맛난 홍시도 있어야~~"

 

활짝 웃으시며 행복해 하실 우리 어머니 표정이 눈에 선하다. 도시에 살 때보다 시골로 들어오면서부터 맛있는 과일을 종류별로 맛보게 됐다. 먹을 것이 풍성하니 빈한한 시골살이라는 말은 옛말이 됐는데 '빵만으로 살 수 없는' 현대인의 양극화가 이런 풍요로움을 만끽 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 같다.

 

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그나마 나이가 드니까 한두 개 집어먹는다) 어머님의 식성을 똑닮은 아들, 홍시를 맛있게 먹는 남편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자식 목구멍에 들어가는 맛난 음식을 바라보며 행복해 할 부모 마음이 예나 지금이나 변할 리 있으리.

 

우리 어머님이 살아계셨다 하더라도 당신은 맛만 보고 아들 먹일 계량에 홍시감을 비축해 놓으셨을 것이다. 젊으나 늙으나 자식에 대한 부모 사랑은 어쩌면 하나 같이 짝사랑일까?

 

감, 그중에서도 물렁물렁한 홍시는 입에 대지도 않는 내가 밖에 나가면 어김없이 홍시를 사갖고 들어오는 것을 보며 우리 어머님은 번번이 목메여 하셨다. 홍시라면 곁눈질도 안 하는 며느리의 에두른 시어머니 사랑을 느끼셨던 것 같다.

 

 

하찮은 홍시로 어머님 마음을 사로잡고, 어머님을 일구덩이에 몰아넣는 '살림 맡기기'로 어머님 존재를 확인시켜드렸다. '도랑치고 가재잡고' 내 그릇 남의 그릇도 구별 못 할 정도로 살림에 관심이 없던 나대신 어머님이 살림을 책임져 주셨으니 가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였다.

 

천상 알뜰 살림꾼이셨던 어머님은 당신에게 살림 전권을 이양한 며느리가 정말로 편하고 좋으셨나 보다. 생활비 드리면서 "어머님 마음대로 하세요"하는 며느리 눈빛을 이심전심으로 느끼시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대로 군소리 않고 얻어먹었다. 당신이 해주신 반찬 중 내 젓가락질이 잦은 종류는 잊지않고 기억했다가 다음 상에 다시 내놓으셨던 우리 어머니. 어머님은 어렸을 때 식성대로 살짝 찐 가지를 쭉쭉 찢어 조선장에 무치는 가지나물을 무진장 좋아했던 나를 위해 한겨울에도 가지나물은 빼놓지 않고 상에 올리셨다.

 

가지나물이 얼마나 자주 오르던지. 나중에는 질려버려 "어머니 나 이거 그만 먹을래요." 비명을 지를 때까지 어머니는 줄기차게 가지나물을 해주셨다. 시어머님 보살핌을 받으며 '띵가띵가~' 신나게 사는 나를 가장 못 견뎌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이 아닌 어린 아들놈이었다.

 

초등학교 1~2학년 때였을까? 어느 날 밤늦게 들어온 나를 향해 일갈을 해댔다.

 

"엄마, 일찍일찍 들어와서 밥하고 설거지 좀 하세요. 할머니가 얼마나 힘드신 줄 아세요? 하루 종일 밥하고, 청소하고, 세탁기 돌리고. 쉬지도 못 하신단 말이에요."

 

그 놈은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신기하게 아주 어려서부터 존댓말을 썼던 놈이었다. 할머니, 아빠, 누나… 온 식구가 있는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존댓말로 엄마를 야단치는 아들놈의 모습이라니.

 

어머님은 펄쩍 뛰시면서 "나 암시랑토 않다. 한나도 힘 안 든당께" 강조 강조하시며 진화를 하셨다. 행여 며느리없는 틈을 타 손주녀석 듣는데 당신이 며느리 험담이라도 늘어놨다고 오해할까봐.

 

그러나 어머니 마음을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데 어머니를 오해 할 리가 있나. 그저 얼굴까지 시뻘개져가며 할머니만 일을 시키는 얄미운 엄마를 혼내는 아들놈을 보고 있자니, 우스울 뿐이었다.

 

"야, 이 놈아. 엄마가 밖에 나가서 돈벌어와야 하는데 어떻게 살림까지 하냐? 돈버는 아빠들 봐라. 퇴근해서 일하든? 할머니가 엄마 대신 집안 일 하시니까 우리집에선 할머니가 엄마야. 그러니까 할머니 힘드시지 않게 너희들이 어지르지 말고 가끔 할머니도 도와드리란 말이야."

 

우리 어머니가 힘드시긴 하겠지만 정말로 행복한 할머니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병아리 같은 손주녀석들의 할머니 사랑. 이것보다 더 오진 행복이 어디 있으리. 행복은 넘치는 풍요에서 오는 게 아니라 편안함에서 온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좋은 집, 좋은 옷, 맛난 음식은 잡숫지 못 하셨더라도 어머님이 우리와 사실 땐 편안함을 누리셨던 것 같다. 비록 안살림을 맡아 힘드시긴 하셨겠지만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 품에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자식, 손주들을 바라보며 행복함을 느끼셨을 것이다.

 

그보다 더 큰 편안함을, 그보다 더 큰 기쁨을 아니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을 어디에서 느끼

시겠는가. 간간이 당신 친구들 근황을 전하시며 그 비슷한 심정을 털어놓으시는 것을 보

면 나 편하자고 꿰어맞춘 생각만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얘, 그 치과집 어메 있잖니? 그 할망구가 울먹거리면서 전화를 했더라. 아들, 며느리가 어메하곤 한 밥상에 앉질 않는다더구나. 저희들끼리 밥도 처먹고, 과일도 어메 방에 쏙 들이밀고, 테레비도 각자 본다니 그게 어디 한 식구라도 할 수 있겠니?"

 

치과의사인 아들이 돈을 많이 벌어 아주 호강을 한다는 친구분 말씀이었다. 어머님 가신 지 7년째다. 살아 생전엔 남의 어머니 보듯 무심했던 며느리년이 홍시감만 봐도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메인다.

 

하늘나라에서 나 하는 꼴을 보며 "저것이~~ 쯪쯪" 혀를 차실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렇게 어머니 생각을 하려고 지난 밤 어머니 꿈을 한바탕 꾸었나보다. 부모님 살아실 제 섬기기를 다 못한 불효자식의 회한은 눈감을 때까지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태그:#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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