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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시월은 겨울로 접어드는 가을의 뒤안길이기도 하지만 종갓집 며느리라면 허리 뻐근해지도록 고단해지고 바빠지는 시향(時享)의 계절이기도 하다. 제주를 기준으로 5대(고조할아버지)까지는 돌아가신 날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만 그 윗대는 음력 시월 중 각처에 흩어져 있던 후손들이 산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시향이라고 한다. 지방이나 집안에 따라 묘사, 세일사, 시사, 시제, 시향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설과 추석이 5대 할아버지의 자손들이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는 명절이라고 하면 시향은 수십대를 걸치면서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엄청나게 불어난 할아버지의 자손들이 먼 친척을 만날 수 있는 기회로 문중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행사다.

 

필자는 선산임씨 괴마공파다. 여기서 ‘괴마’는 몇 년 전 SBS에서 방영된 ‘여인천하’에 옥매향의 정인으로 등장하였던 임백령의 호니 임백령 할아버지를 정점으로 형성된 문중의 자손으로, 필자는 임백령 할아버지의 13대 손이다.

 

11일,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선산임씨 문중산지에 있는 임백령 할아버지의 묘지에서 시향을 지냈다.

 

작년까지는 경기도 고양시에 있었던 산소에서 시향을 지냈지만 올 봄 산소를 문중산지로 이장해 모셨으니 고향에서 지내는 첫 시향이다.

 

속리산을 태조산으로 하여 맥을 형성하고 있는 국사봉 아래 자리한 문중산지는 아늑하다. 첩첩산골인 고향마을에 어디 이런 양지바른 곳이 있을까가 궁금해질 정도로 양달인 야트막한 야산이다. 배산임수,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에 면하여 있는 지세(地勢)를 명당의 기본조건이라고 했던가?

 

앞에는 괴산댐이 있고 뒤로는 국사봉에서 꼬불랭이까지 이어진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니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남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들어온 물은 볼록하게 산세를 이루고 있는 문중 산을 휘감아 북쪽으로 흘러나가고 있으니 흐르던 기가 응집하는 혈지다.

 

 

수량은 풍부하지만 잔잔하게 흐르니 산지를 휘감아 흐르는 물길의 성격은 어머니의 부드러움이며 선비의 넉넉함이다. 물 건너에 있는 군자산은 앞산이라고 하기엔 높은 해발 1000m에 가깝지만 기개가 있으니 호연지기를 논하기에 충분하다. 높으면서도 조화로운 산형, 그 산형을 담고 있는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임백령 할아버지의 산소가 자리해 있다.

 

시향에 얽힌 추억은 서글픔

 

시향을 지내러 가며 더듬어 보는 기억, 시향에 얽힌 추억은 서글픔이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 시향을 지내는 날이면 임씨 성을 가진 애들은 모두가 뜀박질을 한다. 저학년이라면 공부가 끝난 시간, 고학년이라면 오전공부가 끝난 점심시간이지만 학교에서 오리(2Km)쯤 떨어진 곳에서 시향을 지내고 있는 산소를 향해 뜀박질을 한다.

 

몇 대인지도 정확하게 모르는 할아버지께 자손 된 도리로 절을 올려야겠다는 지극한 효심에서가 아니라 그곳에 가면 평소에 먹기 힘든 과자와 떡, 하얀 쌀밥과 고기냄새가 깃든 국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구멍까지 숨이 차오를 만큼 죽어라 뛰어가면 절을 올리는 순서가 거의 끝나가거나 이미 끝나고 철상이 이루어진 상태다.

 

 

제사가 끝나면 어른들은 돗자리가 깔린 한쪽으로 자리를 잡는다. 어른들은 느긋하게 앉아 제상에 올렸던 음식들로 음복을 한다. 어린 마음으로 볼 때 어른들은 넉넉했고 넘쳐흘렀다. 그러나 아이들은 달랐다. 떡 쪼가리나 밥 한술을 얻어먹고 나면 과자를 나눠주는 순서가 있다. 지금 생각하니 별것 아닌 나이, 20살쯤 먹은 어른(?)들이 과자가 담긴 대나무바구니를 들고 아이들에게 줄을 세웠다.

 

아이들은 산소 제절 아래로 줄을 서고 엄청난 권력(?)과도 같은 과자 바구니를 든 어른은 그 제절 위에 서 있다. 흘끔흘끔 보았던 그때의 광경은 주둥이를 내밀고 모이를 달라고 아우성인 새끼 새들의 모습이다. 일렬로 늘어선 아이들이 과자를 받겠다고 위로 치켜들고 있는 두 손은 손 모양으로 새끼 새 주둥이처럼 짹짹거렸다.

 

차례가 되어 과자를 배급(?)받으면 누가 더 좋은 과자를 받았나를 은근히 재 본다.  잡 과자 몇 개에 알록달록한 눈깔사탕 하나가 들어 있으면 그날은 횡재한 거다. 재수가 좋아 들기름에 구워 고소한 김에 밥 한 숟가락 올려 만두처럼 웅크린 김밥까지 얻어먹으면 그날은 진짜 땡잡은 거다.

 

 
먹고 살기 위해서 달려간 것은 아니겠지만 동심을 배부르게 해줄 과자나 떡을 얻어먹으러 달려갔던 곳이기에 시향과 눈깔사탕을 생각하면 가슴이 싸해지는 서글픔이 인다.

 

시골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은 이래서 힘들다. 궂은일이 아닐지라도 고향이나 선산에서 치러야 하는 일은 고향을 지키고 사는 시골사람들의 몫이 된다. 시골사람들이라고 해도 혈기왕성한 젊은 사람들이라면 젊다는 걸 핑계로 떠넘길 수도 있겠지만 고향을 지키고 있는 시골사람들 대부분은 70을 훌쩍 넘긴 할머니들이다.

 

그런 할머니들이 제사음식과 제사꾼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게 현실이니 남자라고 맨몸뚱이로 덜렁거리며 시향을 지내러 가는 것도 민망할 때가 있다. 이번 시향도 그랬다. 객지에 사는 며느리들은 아이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고, 바쁘다는 핑계니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된 형수님들, 70나이가 제일 젊은이 취급을 받는 할머니들이 준비를 하였다.

 

축문을 읽는 소리는 가을바람에 실린 강물소리

 

전날부터 집에서 마련했을 음식이 차려지고, 묘지 근처에서 덥혀야 할 음식들이 마련되니 제상이 차려진다. 제상이 차려지는 동안 산신제를 먼저 올린다. 할아버지께 제사를 올릴지언정 자연을 어우르고 있다고 믿는 산신께 먼저 예를 올리는 겸손한 마음이다.

 

의복을 입고 제관을 쓰니 분위기가 엄숙해진다. 몇몇 어른은 푸른빛이 도는 두루마기까지 입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검은색 모자만을 쓰는데도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제일 먼저 술잔을 올리는 초헌관이 잔을 올리고 나니 독축을 한다. ‘유세차’로 시작되는 축문을 읽는 소리는 흐르는 가을바람에 실려 강물 속으로 울려 퍼진다. 초헌관에 이어 두 번째로 아헌관이, 세 번째로 종헌관이 잔을 올리는 것으로 절을 올리는 제례가 끝난다.

 

제사가 끝나니 철상이 이뤄지고, 철상이 이뤄지니 제상에 올려졌던 과자들이 바구니에 담기지만 예전처럼 과자를 받겠다고 줄을 서는 아이들도 보이지 않고, 과자를 나눠주겠다며 바구니를 챙겨들고 나서는 사람도 없다. 눈깔사탕 하나를 얻어먹겠다고 헐떡거리며 오리 길을 달렸던 그때의 풍경이 서글픔이라면 눈깔사탕과 과자가 한쪽으로 밀려나는 현실은 슬픔이자 위기다.

 

 
시향을 지내던 날이면 그렇게 버글거리던 아이들이 일요일인데도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이 슬프다. 무엇보다 할아버지들이 들려주는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줄 후세들이 시향에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야말로 문중의 위기며 고향마을의 서글픔이다.

 

잔디가 잘 정리된 제절에 비닐멍석이 펼쳐지고 제사꾼들이 음복을 할 음식들이 마련된다. 모닥불을 피워야 할 만큼 싸늘했던 기온도 드리운 햇살만큼이나 푸근해져 있다.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음식을 나누다보니 소풍이라도 나온 기분으로 모든 게 넉넉해진다. 마음도 넉넉해지고 생각도 넉넉해진다.

 

제사를 지내는 도중 시향을 올리는 할아버지나 그 후대의 할아버지들 이야기가 간간이 나왔지만 그때야 제사를 지내야 하니 토막토막 이야기일 뿐이었다.

 

 

제사를 끝내고 이렇듯 자리까지 펼치고 앉으니 본격적으로 할아버지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대를 이으며 돌아가신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그 아버지나 할아버지들로부터 전해들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지만 가문에 대해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한 이야기들이다.

 

가문의 뿌리, 가문의 내력은 딱딱하게 족보라는 문서로도 전해지지만 이렇게 시향자리를 빌려 옛날이야기처럼 구수하게 이야기 보따리로도 전해지는가 보다. 시시콜콜하지만 고리타분하지 않게 자신의 뿌리를 듣거나 알 수 있는 기회니 좋다. 얼마 정도 보태지거나 과장되었다 할지라도 누군가를 헐뜯거나 해코지 하는 게 아니고 가문에 대한 자화자찬이니 시비할 것 없는 게 시향자리에서 펼치는 문중 자랑이다.

 

 

문중의 제일 어른에 대한 시향을 지냈으니 이제 차례대로 다음 대의 할아버지들 산소를 찾아다니며 예를 올리는 시향이 이어질거니 종갓집며느리가 아닐지라도 고향마을을 지키고 사는 시골할머니들에게는 바쁘고도 힘든 한 달이 될 것이다.

 

꾸부정한 허리로 힘겹게 제사 음식을 마련하던 시골 할머니들의 노고는 시월 내내 반복되며 이어질거니 음력 시월은 겨울로 접어드는 가을의 뒤안길이기도 하지만 고향을 지키고 산다는 이유만으로 뻐근해지도록 고단해지고 바빠지는 시향(時享)의 계절이기도 하다.

 

고향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도 시월 시향을 준비하는 양 황금빛 도포를 입은 모양이다. 황금빛 도포를 입고 있는 잘생긴 느티나무에서 바라본 임씨 집성촌, 사오랑이는 모과 향으로 익어가고 있는 가을날이다.


태그:#시향,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괴마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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