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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며칠 만에 말문을 열었다.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는 정도가 아니다. 한나라당으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처음 생각에 변함이 없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발언'을 노심초사 기다려왔던 이명박 후보 측으로서는 '단비'와도 같은 발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에 대해서는 "한나라당도 그간 여러 가지를 뒤돌아보고 깊이 생각해 잘 대처해야 할 일"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요즘 언론을 통해보면 정치권, 정당의 정치발전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는데 굉장히 실망이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패자가 공천권을 가지면 안된다"는 언론 보도를 인용해 "그야말로 구태정치고 무서운 정치"라고도 했다.

 

한나라당 경선 후보로서, 또 한나라당 의원이자 당원으로서 '기본'은 하겠지만, 억지로 나설 생각까지는 없다고 선을 그은 셈이다. 박근혜답다.

 

언론의 전방위 압박에 시달린 박근혜

 

최근 며칠 동안 박근혜 전 대표만큼 '압력'에 시달린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명박 후보나 한나라당 당원들의 압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극히 일부 신문과 방송을 제외하곤 모든 언론이 전방위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를 압박했다. 이제는 박근혜 전 대표가 나설 때라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비겁한 행위일 뿐 아니라 사실상 '경선 불복'이라고 박근혜 전 대표를 몰아붙였다.

 

<동아일보>를 필두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대표적인 보수신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대다수 신문들도 앞다투어 박근혜 전 대표에게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에 대해 '정치적 입장 표명'을 강요했다.

 

새삼 언론의 자유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언론의 자유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말하는 자유…. 맞다. 하지만 진정한 언론의 자유라면 바로 '말하지 않을 자유'까지 보장돼야 마땅한 게 아닐까. 양심에 반해서, 소신에 반해서 말하지 않을 자유까지 허용될 때 비로소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최근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언론들의 전방위적인 '압박'은 과연 언론의 자유를 그렇게 외쳐온 언론들로서 합당한 '주문'이었던지 의문이다.

 

<조·중·동>을 비롯해 다수의 신문들은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출마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가 입장을 표명할 것을 강요했다. 말이 입장 표명이지, 사실상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해 줄 것을 강권한 것이었다.

 

<조중동>이 한나라당 당원인가

 

그 명분은 대충 이렇다. 정치 도의적으로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했던 박근혜 전 대표는 당연히 한나라당의 대선승리를 위해 복무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다. 경선에 승복하기로 한 이상 이명박 후보를 도와 정권교체를 위해 일로매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명박 후보 측이 오만하고, 경솔했을지언정 이후보가 직접 나서 이를 자성하고, 앞으로 박 전 대표를 '정치적 동반자'로 대우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제는 박 전 대표가 나서 '분명한 입장'을 밝힐 때라고 압박했다. 경선 승복을 다짐하며 '백의종군'하겠다던 그 약속을 지킬 때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나라당 당원들이나 할 수 있는 주장이자 요구다. 한나라당 당원 가운데서도 박근혜 지지자들이나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것이지, 언론이 앞장서 주장할 일은 그러나 결코 아니다. 언론의 문법으로는 맞지 않는 일이다.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해 보수진영의 표가 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는 중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다. 당연히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박근혜 전 대표는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할 정치적 책무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명박 후보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여야 한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자, 무책임한 정치적 요구다.

 

왜냐하면 박근혜 전 대표가 아무리 경선 승복을 다짐했다지만, 이명박 후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의혹이나 이명박 후보 진영의 정치적 행보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일관되게 이명박 후보와 관련된 여러 의혹과 함께 후보 자질의 문제를 제기해왔던 터다. 경선에서 졌다고 해서 박근혜 전 대표가 이런 의혹에 대해서 까지 눈감아 주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그것이야말로 후진적 정치행태이자, 조폭적 논리나 다름없다.

 

BBK 관련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김경준씨의 송환을 앞두고 있고, 이와 관련된 여러 의혹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단지 보수진영의 표가 갈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이명박 지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적어도 언론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었다. 당장 이 후보가 자신의 건물 관리회사에 딸과 아들을 근무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다달이 월급을 지급한 '치졸한 작태'에 대한 한나라당의 '적극적 옹호'가 어떤 결과를 빚었는지만을 보더라도 그렇다.

 

언론, 너나 잘하세요!

 

언론이라면 박근혜 전 대표에게 막무가내로 정치적 입장 표명을 요구하기 전에 BBK 의혹 등에 대해 보다 엄격하고 분명한 잣대를 갖고 그 실체적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다. 만약 언론 스스로 이런 의혹의 진상을 파헤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고 한다면 적어도 BBK 의혹 등에 대해서 박 전 대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묻는 것이 순서다. 앞으로 어떻게 판명날지 모른 여러 의혹들은 묻어둔 채 왜 '침묵'하고 있느냐고 다그쳐서야 박 전 대표인들 어떻게 답변하겠는가.

 

박 전 대표는 오늘 "앞으로 선거운동 어떻게 하겠느냐"는 기자 질문에 "당원이니까 선거가 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경선에서 진 사람으로서 깨끗이 승복하고 조용히 있는 게 엄청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조만간 이 후보와 회동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필요하면 만나는 것"인데 "뭘 그리 새삼스레 자꾸 물으시나"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외면한 채 엉뚱한 질문만 해대는 기자들에게 박근혜 전 대표가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말이 아니었을까. 

 

"여러분 일이나 잘하세요."


태그:#언론자유, #박근혜, #이명박, #이회창, #정치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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