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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부시 미 대통령
조지 부시 미 대통령 ⓒ 미 백악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미국 정부가 이란의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해 제재에 착수하면서 미국-이란 전쟁설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일각에서 이란의 핵시설을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은 예전부터 제기되어왔다. 그러나 이란 공격이 부시도 경고한 것처럼 세계 3차 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유가를 급등시켜 세계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라크 신드롬'의 여파로 전쟁에 신물이 난 미국 국민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그러나 전쟁의 먹구름은 걷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전쟁 발발이 '여부'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도, 이란도 전쟁을 예방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은 채, 치킨게임식의 정면 충돌을 향해 돌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를 의식한 듯, 부시 행정부는 미국이 이란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을 일축하고 나섰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11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도 전쟁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윌리엄 팰런 미 중부사령관 역시 12일자 <파이낸셜타임즈>와의 회견에서 "미군은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문제는 미국의 대이란 강경책이 이란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키면서 원하든, 그렇지 않든 무력 충돌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 있다. 부시 행정부는 안팎에서 비등해지고 있는 이란과의 대화 요구에 대해 "이란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하면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두고 이란은 미국이 대화할 의지가 없다며, 우라늄 농축 활동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리라고 맞서고 있다.(참고로 핵확산금지조약 회원국인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전제로 우라늄 농축이나 재처리 프로그램을 보유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부시 행정부의 숨은 의도는 핵문제를 빌미로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시도하는 데 있다는 것이 이란 강경파의 시각인 것이다.

"부시가 이란의 네오콘을 구했다"

기실 부시 행정부가 이란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이란 고위 관료들과의 광범위한 인터뷰를 통해 이 문제를 추적해온 미국 평화연구소(USIP)의 바바라 슬래빈의 지적은 오늘날 미국-이란 관계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녀는 미국의 외교전문잡지인 <Foreign Policy> 11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란의 네오콘, 즉 강경파를 구한 당사자는 바로 부시 행정부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2001년 9·11 테러 직후 이란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적극 모색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협력했을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정부 구성도 적극 도왔다. 그러나 이란에게 돌아온 것은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이었다. 알-카에다 일부 요원이 이란을 거쳐 아프가니스탄에 잠입하고 이란 무기가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과의 적대 관계 청산에 나섰던 이란으로서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2003년 3월까지 미국과의 비밀 접촉을 계속 유지했다. 그러나 비밀 접촉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악의 축"과 대화하고 있다는 비난을 의식한 부시 행정부는 대화 채널을 닫고 말았다. 그러자 이란의 개혁파인 하타미 정권은 미국과의 포괄적인 협상을 제안했다. 핵문제뿐만 아니라 관계정상화 문제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전 3주만에 바그다드를 점령하는 등 기세등등했던 부시 행정부는 이란의 대화 요구를 일축해버렸다. 이란 온건파의 입지는 줄어들었고, 그 결과 2005년 대선에서 아흐마디네자드가 승리했다. 갈등과 협력이 분수령에 서 있던 미국-이란 관계가 전면적인 대결 상태로 귀결되고 만 것이다.

이란, 강경파의 득세

부시 행정부는 최근 이란의 정규군인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조치가 이란 내 온건파의 입지를 강화시켜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강경책이야말로 미국이 이란과 화해하고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이에 따라 이란은 하루속히 핵무기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강경파의 입지만 강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0월에 사임한 알리 라리자니의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란 핵협상 대표를 맡았던 라리자니는 미국과 이란 강경파로부터 협공을 받다가 끝내 사임하고 만 것이다. 그의 자리는 이란 강경파의 상징인 마흐모드 아흐마니네자드 대통령의 측근인 사이드 잘리리가 차지했다.

라리자니는 2005~2006년 겨울에 미국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그는 스테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논리적인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면서 해들리와 막후 접촉을 제안했지만, 백악관은 응답하지 않았다. 2006년 3월에 라리자니는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설득해 이라크 문제에 대한 미국과의 직접 대화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이 마저도 미국은 "이란의 대화 제의 목적은 자신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딴 데로 돌리는 데 있다"며 거부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라리자니는 위축되고 하메네이는 아흐마니네자드 대통령 등 강경파에게 경도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라리자니에 이어 비교적 온건파로 알려진 마누체르 모타키 외교장관의 사임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처럼 강경파들이 대외정책 분야에서 득세하고 있지만, 이란 내에서 온건파가 재기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아흐마니네자드 대통령의 경제 실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작년 12월 지방자치 선거에서 실용주의적 보수파와 개혁파 연합이 승리했다. 또한 알리 아크바르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최근 최고지도자 선출 권한을 갖고 있는 국가지도자운영회(Assembly of Experts) 의장으로 선출됐다. 내년 3월로 예정된 의회 선거에서도 온건파의 선전이 점쳐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란 내의 이러한 정치적 변화에 주목해, 대화 노선을 통해 이란 온건파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아직까지 요지부동이다.
앞서 소개한 바바라 슬라빈은 한탄한다. "'이란을 폭격할 것인가, 이란의 핵무장을 용인할 것인가'라는 딜레마는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보잘 것도 없고 너무 느려터진 미국의 대이란 외교는 계속되고 있다."

부시여, 이란도 북한처럼

최근 들어 북핵 협상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자 부시 대통령은 이란도 북한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니 미국이 대화에 나서고 반대급부도 제공하고 있는데, 이란은 고집스럽게 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핵 협상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당사자는 부시 행정부 자신이다. 딕 체니 부통령 등 미국 내 강경파들은 직접 대화의 조건으로 북한의 핵시설 폐쇄를 요구했었다. 이란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요구는 결국 북한의 핵실험까지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런데 올해 들면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나섰다. 북한의 핵시설 폐쇄 이전이다. 사실상 무조건적인 직접대화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북한의 핵시설 폐쇄와 봉인에 이어 불능화 단계에 들어갔다.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목표가 대화를 해보니 그 '성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란 폭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고 있다. 그 재앙의 중심에는 이란을 비롯한 중동이 있겠지만, 미국 역시 그 여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전쟁을 막고 이란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어떠한 진지한 노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저 "이란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하면 대화하겠다"는 하나마나 한 말만 되풀이하면서 압력과 제재에만 매달리는 형국이다. 이에 맞서 이란 정부는 "우라늄 농축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리"라며, 미국 주도의 제재와 압력에 강경한 맞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미국과 이란이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 나서는 것뿐이다. 이 방법만이 부시도 경고한 "세계 3차 대전"도, 이란의 핵무장과 이로 인한 '중동의 핵도미노'도 막을 수 있다. 북핵 협상에 고무된 부시가 이란에게도 대화의 눈을 돌려야 할 까닭이기도 하다.


#이란#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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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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