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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부터 18일까지 바스크자치주 기프스코아 혼드리바에서 개최된 GAIA(세계소각반대/대안연맹) 2007년 세계대회와 몬드라곤협동조합 복합체(MCC) 방문을 마친 후 4박 5일 일정으로 산세바스티안 마드리드 톨레도 바로셀로나 빌바오를 돌아보았다. 

 

주로 영어권에 머물다가 스페인어권의 본산인 스페인에 가보니 세계유산(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이 38개소나 된다.  한국처럼 3면이 바다이면서도 산이 많고 기원전 1만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알타미라 동굴이 있는 나라이다.  명장 한니발이 카르타고에서 로마를 침략하기도 했지만 다시 로마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의 침략으로 이슬람의 지배를 받기도 한 나라이다. 

 

그리고 15세기 이후 다시 이사벨 여왕을 통해 가톨릭국가를 재건하고 무적함대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식민지를 건설해 세계를 호령하기도 했던 나라였다.  20세기에는 스페인내전과 프랑코 군사독재라는 터널을 지나 이제는 민주화와 더불어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열고 있는 나라이다.  최근 대한항공이 수도 마드리드 직항노선을 개설했다.  주마간산이지만 쉽지 않은 여행이라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방문기를 썼다. 

 

19일(수) 해질녘에 산세바스티안(바스크어로는 도노스티)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강을 따라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산세바스티안 역에서 야간 기차 예약을 하고서 다시 콘차 해변을 찾았다.  이름 그대로 조개껍질 모양인데 너무도 환상적이라 해변가 모래사장에 내려가 손을 담가 본다.  바다를 만나면 늘 하는 행동이지만 이 대서양을 통해 온 세계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지인들을 연상해 본다.

해변가에는 악사가 기타연주를 하는데 한참을 기대서서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지나가는 중년부부 중 아내가 가수의 노래에 매력을 느껴 한참을 서서 듣자 어쩔 수 없이 어정쩡하게 서있는 남편의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웠다.  아내를 위해 해변의 파도소리와 가수의 노래를 녹음까지 했다.   예약된 기차를 타고 보니 침대칸이 생각보다 불편했다.   뮌헨에서 프라하로 가는 야간열차를 탔던 생각이 나는데 10년만의 유럽 야간열차였다. 

아침 7시 반에 마드리드 참마르틴역에 도착했는데 지하 4층이라 방향감각이 없다.  티켓자판기 앞에서 스페인 여성을 만나 물으니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데 마침 같은 방향이라 함께 이동하면서 안내를 받아 수월했다.   친절에 감사하다.
 
약속된 장소에서 자전거나라 가이드 이재현씨를 만나 아토차 역으로 가서 배낭을 맡기고 또 다른 예약자 두 분을 만나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아토차 역은 몇 년 전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폭탄테러로 수백 명이 사망한 후 짐 보관검색이 강화 되었고 역 자체를 온실 식물원으로 조성해 두었다. 

 

오전 10시 남부터미널에서 톨레도행 버스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려 도착하니 고성 그 자체인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5세기 이후 서고트 왕국 등 여러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곳이다.  711년부터 4백년간 이슬람교도가 지배했던 도시인데 그 후에도 도시의 경제권을 쥔 유대교인들과도 4백년을 공존했으니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공존했던 도시였고 건축물도 그대로 남아 있다. 

 

중세의 분위기를 풍기는 건물들 가운데 제일 먼저 찾은 곳이 톨레도 대성당이다.  다시 주변을 함께 돌아보는데 이슬람식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거리에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흘러나온다.  8각형의 이슬람식 지붕은 가톨릭의 고딕양식과는 달리 단순하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오후에 스페인이 세계 3대 미술관이라고 자랑하는 프라도 미술관에 도착하니 대 문호 세르반테스의 동상이 서 있는데 스페인 동전에 그 얼굴이 새겨질 정도이다.  아내는 나에게 ‘당신의 선배인 돈키호테를 꼭 만나보라’고 했는데....  미술관 주변은 사람들이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널찍하고 좋은 거리였다.  미술관에서는 대표적인 작가 보쉬의 낙원의 정원이라는 작품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궁중화가였던 보티첼리의 작품도 가장 중요하게 전시되고 있었다.
 
다시 마요르 광장에 도착하니 파리 루브르 박물관 주변 풍경과 흡사하다.  광장에서 가이드와 함께 저녁 겸 맥주 한잔을 하며 유럽 여러 지역을 비롯해 스페인까지 한국 가이드가 진출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는 격려도 한마디 했다. 여행을 마친 후 알게 된 것은 조금만 더 돌아보면 돈키호테를 비롯해 볼거리들이 있었는데.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밖에... 

 

저녁에 다시 참마르틴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지하 4층의 원형 벽면에서 음악과 물이 흐르는 모습이 압권이다.  멈춰서 음악을 들으면서 근무자들에게 훌륭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하철 역이 음악과 예술이 있는 공간으로 인식될 수준이었다. 

서울 지하철역에서도 공연이 있기는 하지만 애초 건축 자체가 예술적이라 비교가 되어 보였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에 예술이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침대칸 대신 일반 좌석을 선택했는데 노년 부부와 동석하며 좌석을 뻗어 침대를 만들어서 훨씬 편히 잘 수 있었다.   

 

아침 7시 반 바로셀로나역에 도착해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까달루냐 광장역에 도착했다.  일행은 초로의 사업가 부부를 포함해 모두 7명인데 가이드 한윤정씨는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지식이 풍부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유료입장 대신 대성당 미사 시간에 맞춰 무료입장을 해서 둘러보는데 대동소이하다. 

 

까딸루냐 광장과 연결된 람부라스(아랍어로 물이 흐른다는 뜻) 거리에는 많은 행위 예술가들이 연기를 보여주며 관심을 끌었고 관람객들은 약간의 관람료를 낸다.  요셉기념 시장에는 풍성한 과일과 생선 정육점이 즐비했고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오랜만에 1.5유로의 과일팩을 사서 잘 먹었다.  다시 가우디가 설치한 까사비야로 이동을 했다.  당대 최고 부자의 요청을 받아 외관을 디자인한 것인데 특이했다.  선을 없애고 동식물의 특성에서 힌트를 얻고 가톨릭 신자라는 배경으로 이해해야 할 건축물이었다. 

 

가이드 소개로 까딸루냐 식당 라리따로 가서 8유로 점심 특선을 함께 먹었는데 와인을 곁들인 그 맛이 아주 좋았다.  다시 까사밀라 가우디 기념관을 겸하고 있는 건축물 옥상에서부터 내부를 살펴보았다.  박물관처럼 꽤 많은 작품과 설명들이 되어있다.  디자인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이런 저런 책자를 구입했다. 

 

이어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걸어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구엘 공원에 도착하니 입구에 사람이 북적거리는데 무료입장이고 동화속의 나라에 온 기분이 들었다.  걸으며 살펴보니 작품들이 전부 자연 상태를 그대로 이용한 탓에 작품마다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그 유명한 파밀리아 성당으로 향했다.  2백년에 걸쳐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가우디는 예수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조각했으며 교통사고로 마감한 죽음 과정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그의 사후에도 최고의 건축가들이 계속 건축작업을 하고 있는데 기부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니... 

 

너무도 많은 가톨릭교회 건축물에 조금은 식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대단한 건축물이라는 점에서는 볼만했다.  일행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서 하루 더 머물기로 하고서 몬주익 언덕 공원으로 향했다.  마라톤 영웅 황영주에게 금메달을 안겨준 곳이다. 

 

 

밤에 도착하니 분수대에서 환상적인 음악쇼가 진행된다.   9시를 넘기고서 바로셀로나 역에서 가방을 찾아 소개받은 이모네 민박집으로 향했다.   민박집을 소개해준 분들과 길이 엇갈리는 통에 조금 혼선이 있기는 했지만 역 주변에 있는 민박집에 도착하니 태권도를 보급했던 집주인의 자랑스러운 사진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테넷을 연결해서 소식을 전하고 나서 편한 잠에 몸을 맡겼다.
 
푸짐하게 차려준 아침식사를 하고서 다시 짐을 챙겨 피카소 미술관을 방문했다.  스페인 남부 말라기에서 태어난 피카소의 청년시절 기록과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한참을 돌아보고 기념품점에서 아내가 부탁했던 ‘게르니카’ 그림프린트도 구입했고 주위 분들에게 나눠줄 엽서도 여러 장 구입했다. 

 

박물관을 나와 길을 걷다보니 초승달처럼 기울어져 있는 철제 상을 보았는데 바로셀로나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순교자와 역사를 기록해 두고 있었다.  1975년 독재자 프랑코 사후 최초로 자치권을 획득한 지방인 바로셀로나가 있는 카딸루냐와 몬드라곤이 있는 바스크 지방은 항구와 철광산을 바탕으로 조선업과 철강산업이 발달했고 경제력도 있으면서 독립성이 강한 지역이라 모두 자치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이동해 까딸루냐 공원에 도착했다가 람브라스 거리를 거쳐 해안을 따라 걷는데 요트가 즐비하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길을 걷다보니 와인축제를 한다.  6유로를 내면 와인 잔과 와인 다섯 잔을 마실 수 있는 쿠폰을 주고 또 5유로를 내면 안주접시와 간단한 안주를 세 접시 먹을 수 있다.  피부색이 다른 남녀 청년들과 중년 남녀들이 앉아서 한잔씩 마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마침 가까이 자리잡고 있는 젊은 그룹과 인사를 나누다가 유럽 여기저기서 합류한 사실을 알고 함께 사진도 찍고 인사를 나눴다.  스페인 친구가 써준 e-mail로 사진도 보내주었다.

 

잠시 후 선착장에서 유람선위에서 해안을 돌아보는데 대형 크루즈선 두 척이 정박해 있는 부두와 육상을 잇는 고가도로가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바다를 보는 시각 도시를 구상하는 것 역시도 큰 차이가 느껴졌다. 

 

바로셀로나는 항구도시로도 아주 유명한데 눈에 들어오는 것이 높이 60m 콜럼부스 동상이다.  1888년 바로셀로나 만국박람회 때 미국과의 교역을 기념해 세운 것인데 왼손에 미국산 파이프를 든 채 오른팔로 바다로 뻗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기념탑 아래에는 신대륙 발견 항해 과정을 화강석 부조로 해 두었다.  

 

충무공 동상의 이순신장군은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바다를 지키고 콜럼부스는 바다로 뻗어나가려는 차이가 느껴졌다.  해질 무렵부터 공연이 시작되었고 벼룩시장에서 별자리 관측기 모형을 구입했다.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산토스 역으로 돌아가 빌바오행 야간열차를 예약하려니 토요일에는 운행하지 않는다니!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나.   열차시각표에 있는 n자를 읽지 못한 것이었다.  산토스 역에서 고민하며 있다가 등에 케첩이 뿌려지는 소매치기 접근 사건(?)도 경험했다. 

 

야간열차를 포기하고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을 떠올리며 다시 까딸루냐 공원으로 향했다.  주말 야외 공연을 보면서 함께 몸도 흔들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데 축제에 참여해보니 시설 중심의 투어보다 생동감이 넘쳐 좋았다.  다시 해변을 찾으니 젊은이들이 해변 잔디밭에서 캠핑 온 분위기로 버너를 켜서 뭔가를 해 먹는 모습도 보였다.  새벽 3시경인데 지하철을 운영하고 있어 귀가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기차가 운행되지 않는 시간에는 역 출입 자체를 차단했다.  폭탄 테러의 후유증으로 여겨진다. 

 

역 주변을 둘러보니 유레일 패스로 탈 수 있는 장거리 심야버스도 있다.  새벽시간 지하철 역 계단에서 잠시 누워 노숙을 하다 역사내로 들어가 안내원에게 물어 전철을 타고 15분 만에 바로셀로나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표를 끊으려니 스페인 이베리아항공이 296유로(40만원!)란다.  인터넷예약을 하지 못한 가난한 여행객은 비싼 수업료를 내게 된 것이다. 

 

2시간을 날아 빌바오 공항에 도착했다.  빌바오는 15세기부터 해안 입지와 철광석을 바탕으로 제철 조선업등 중공업이 발전했지만 1980년대 이후 경쟁력을 잃고 쇠퇴의 길을 가다가 1990년대에는 문화 산업으로 도시재생에 성공한 사례로 유명하다.  그래서 1997년에 탄생하게 된 것이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바스크 자치정부와 빌바오 시에서 1억 5천만불을 투자하여 만든 세계적인 미술관인데 빌바오강을 끼고 자리 잡고 있다.  개관 1년 만에 136만 명이 방문했고 1억 6천만 불의 관광수입을 올렸다니 놀라운 일이다.  미술관 방문객을 위한 호텔이 들어서고 이웃지역으로 관광코스가 확대되었다.  문화혁신도시라는 것이 바로 이런 곳이다. 

 

2006년 미국의 혁신도시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배운 바를 재확인하게 된다.  구겐하임 미술관 입구에서 GAIA 세계대회에 참석했던 실무자인 필리핀의 지지 일행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했다.  미술관내 3개 층에 전시된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는데 1층 대형 철제 벽들은 고성 내 좁은 길로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념품점에서 엽서와 그림  타일 공예품을 구입하고서 3시간만에 허겁지겁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덧붙이는 글 | 이대수 기자는 자원순환거버넌스포럼 상임위원입니다.


태그:#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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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군포에 거주하면서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군포시민신문, 동아시아평화를 위한 역사NGO포럼,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 시민아카데미 등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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