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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음성의 남문이다.
▲ 진남문. 해미음성의 남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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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탈출! 가끔은 찌든 세상일을 훌훌 털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파란 바다가 있는 곳이면 어떻고, 또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고즈넉한 산사면 어떠랴.

철 지난 바닷가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가슴으로 안으며 백사장을 밟는 재미는 어떨까? 아니면 호젓한 산사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가을 풍광에 이끌려 산행을 즐기는 것도 좋으리라. 그리고 입맛 돋우는 음식점을 찾아 제철음식을 맛보는 것, 또 왁자지껄한 시골장날 사람 사는 냄새라도 맡고 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지난 금요일(9일) 늦은 오후. 죽이 척척 맞는 세 부부끼리 서해안고속도로로 방향을 잡았다. 맛난 도시락을 싸가지고 소풍을 떠나는 초등학생들처럼 일행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첫 도착지는 태안반도 꽃지해수욕장. 해수욕장에 이르자 벌써 해가 넘어갔다. 유명한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어깨 너머로 펼쳐지는 낙조를 보지 못한 게 아쉽다. 아무리 좋은 곳도 날이 어두우니 도리가 없다. 얼큰한 꽃게탕에 소주 한 잔으로 첫날 여행을 마쳤다.

서산시 해미면에 평지성인 해미읍성이 있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곧장 서산시에 있는 해미읍성으로 향했다. 여기는 아내의 추천이 있었다.

"작년 가을에도 왔었는데 좋은 인상을 받았어요. 성곽을 따라 걷는 재미도 쏠쏠하고!"
"천주교 순교지였다는 곳?"


기대를 갖고 해미읍성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주차장부터가 특이하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바닥이 아니라 인조석으로 모자이크를 한 듯 고풍스런 멋을 부려놓았다. 성곽과 조화를 이뤄 보기가 좋다.

성곽 밑에 큰 돌로 쌓고, 위로 오를수록 작은 돌로 쌓아 안정감이 있었다.
▲ 해미읍성 성곽. 성곽 밑에 큰 돌로 쌓고, 위로 오를수록 작은 돌로 쌓아 안정감이 있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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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하게 쌓은 성곽이 거대하다. 낮은 구릉에 넓은 평지를 포용하여 축조된 성이 많이 보아온 산성(山城)과는 크게 다르다.

성곽 밑은 큰 돌로 쌓고, 위로 오를수록 작은 돌로 쌓았다. 안정감이 있다. 안쪽은 흙으로 언덕을 만들어 외부에서 충격을 가하여도 쉽게 무너지지 않게 한 지혜가 돋보인다.

보통의 성곽은 안팎을 수직으로 쌓는다. 그런데 해미읍성은 적에게 공격을 받는 밖은 수직으로 쌓아 쉽게 오르지 못하도록 하고, 안은 흙으로 언덕처럼 쌓아올려 쉽게 병력이 올라가서 적을 막을 수 있도록 하였다.

성곽 둘레는 1800m이고, 높이는 5m이다. 국내에서 가장 완벽하게 원형이 보존된 조선초기의 석성의 위용을 갖췄다.

옛성을 보면 민초들의 진한 아픔이 느껴지는 것을 왜일까? 이들이 흘린 땀방울의 무게가 느껴지고도 남는다.

해미읍성은 태종17년(1417)부터 세종3년(1421) 사이에 덕산에 있는 병마절도사영을 이곳으로 옮기고자 축성했다. 영장(營將)을 두고 잦은 왜구의 출몰에 대한 방어의 임무를 수행하던 곳이었다. 그 뒤 폐성된 뒤 성곽의 일부가 허물어지고 성안에는 초등학교, 우체국, 민가가 들어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1973년부터 복원이 이루어져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해미읍성을 안내하는 푯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행들을 아내가 빨리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고 팔을 잡아끈다.

"성 안에는 볼만한 게 많이 있어요! 어서 들어가자구!"

이곳에서 천주교 순교가 있었다니!

성의 남문인 진남루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성 안이 역사를 담은 뜰처럼 포근하다. 얼마 안 걸어 천주교 순교비가 눈에 띈다.

해미읍성에는 천주교 순교지로 유명하다.
▲ 옥사. 해미읍성에는 천주교 순교지로 유명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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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가슴 아린 순교의 역사가 숨어 있다. 이곳은 천주교 순교 성지이다. 해미읍성을 찾는 관광객의 상당수가 천주교 신자들이라고 한다.

새로 복원한 옥사 앞에 키가 엄청 큰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이곳에 팻말이 있다. 회화나무가 많은 천주교도들의 목숨 줄을 끊는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오랜 세월을 버티면서 온갖 풍상을 지켜보고 있다는 게 경이롭다.

바다를 통해 중국과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내포지방이라 그랬을까?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김대건, 최양업 등 초대신부들은 내포에 닻을 내렸다. 그래서 내포는 천주교 전파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해미읍성에서 피비린내 나는 처형이 뒤따를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1866년 병인박해 때 무려 1000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하였다. 회화나무를 바라보고 있자니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의 처절한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예전 고향집과 같은 정겨움이 묻어있다.
▲ 해미읍성 안에 있는 초가. 예전 고향집과 같은 정겨움이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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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 옆으로 내포지역의 특성을 살린 초가가 눈길을 끈다.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뜰 안 텃밭에는 푸성귀를 심어놓았다. 닭장에는 닭을, 토끼장엔 토끼를 기르고 있다. 처마 밑에는 마늘이며 메주 등이 걸려 있고, 헛간에는 눈에 익은 농기구들이 보인다. 예전 어렸을 때 시골집이 떠오른다. 특히 변소에서 용변을 보는 어린아이의 익살스런 인형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소나무 숲과 성곽을 걸으니 몸도 마음도 거뜬!

한참 머물고 있는데 일행이 발길을 재촉한다.

"해미읍성에도 가을이 깊숙이 왔네요. 소나무 숲길을 따라 산림욕도 하고, 성을 따라 걸어보자구."

호서좌영 건물을 중심으로 복원된 가옥에 낙엽이 바람에 휘날린다. 가을의 끝자락임에 틀림없다.

건물 옆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정자가 나타났다. 정자 위에서 발 아래로 펼쳐진 가을 풍광이 그림 같다.

해미읍성은 소나무 숲길이 있어 산림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 소나무 숲길. 해미읍성은 소나무 숲길이 있어 산림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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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길이 우리를 기다린다.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저마다 모양을 달리하여 키 재기라도 하는 듯 하늘 높이 솟아오른 모습이 시원하다. 살림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일행 중 한 분이 발걸음을 빨리한다.

"소나무 숲길에서는 숨이 가쁠 정도로 걸어야 기를 받는 거라구! 나를 따라 해 봐!"

호젓한 성곽을 따라 걷는 기분이 사뿐하다.
▲ 해미읍성 성곽길. 호젓한 성곽을 따라 걷는 기분이 사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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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가뿐하다. 이제 성곽 위를 걷는다. 좁다란 길이 너무도 호젓하다. 성 안과 밖이 딴 세상 같다. 성을 사이에 두고 적대감을 가졌던 사람들의 벽은 무엇이었을까? 마음의 벽을 허물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성곽 안쪽 언덕에는 푸른 풀이 자라고 있다. 풀 자라는 것을 보아서는 겨울은 아직 먼 것 같다.

일행이 뭔가를 발견한 듯 호들갑이다.

"아니, 지금이 봄인가? 봄꽃이 많아. 이건 제비꽃이고, 이건 뱀딸기꽃 아니에요?"

늦가을에 만난 들꽃이 무척 반가웠다.
▲ 해미읍성에 만난 들꽃. 늦가을에 만난 들꽃이 무척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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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제비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 봄에 볼 수 있는 민들레포자도 볼 수 있다. 이름모를 작은 보라색은 지금 피는 꽃일까? 계절이 뒤죽박죽인 것 같지만 작은 꽃을 보고 좋아라하는 일행이 소녀 같다. 정말 복잡한 세상 모든 일을 잊는 듯 얼굴에 즐거움이 묻어있다.

역사의 현장도 보고, 가을을 함께 한 여행이 즐겁다. 정말 일상 탈출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함께 한 일행 모두 입을 모은다.

"해미읍성, 가을 여행으로 참 좋았어!"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입니다.



태그:#해미읍성, #가을 여행, #천주교 순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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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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