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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현산성 가는 길.
 계현산성 가는 길.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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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풍경과 세월의 무상함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산성의 아름다움

딱히 갈 곳이 떠오르지 않는 날엔 산성에 간다. 산성은 언제고 나의 방문을 거절하는 법이 없다. 대전은 산성의 도시다. 줄잡아 40개가 넘는다. 그러나 정작 산성을 찾아가는 길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성이라곤 계족산성 등 네댓 군데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2년 동안 난 그 산성들을 답사했다. 어떤 성은 찾지 못하고 2~3차례씩이나 헤맨 끝에 겨우 찾은 성도 있었다.

대전의 산성에 관한 자료는 향토 사료관에 실린 자료 외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자료라고 해야 산성 하나에 60, 70년대에 찍은 낡은 사진 한 장이 전부다. 그리고 한 번 작성한 후 단 한 차례도 수정을 거쳤을 것 같지 않은, 케케묵은 설명과 수십 번을 거듭 읽어도 알 수 없는 두루뭉술한 길 안내. 여기에 설명을 쓴 사람은 과연 '그곳에 다녀오기나 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그렇게 막막했던 길이지만 이젠 산성으로 가는 길은 편안하다. 익숙함이 안겨준 선물이다. 등산의 즐거움, 돌 속에 담긴 역사를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즐거움 등 산성은 내게 많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게다가 산성은 철 따라 자신의 모습을 다양하게 변주함으로써 고정된 풍경과 무상함이 가진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난 그저 귀를 쫑긋 세우고 두 눈만 크게 뜨고 있으면 된다.

오늘(11월 4일)은 계현산성을 찾아갈 생각이다. 산성을 돌아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길게 산을 타고 싶을 때 찾아가는 산성이다. 계현산성은 대전과 충남 금산군 추부의 경계에 있는 만인산에서 대전 식장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자리잡고 있다.

닭재를 지키는 돌탑. 예전 성황당이 있던 자리다,
 닭재를 지키는 돌탑. 예전 성황당이 있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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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닭재.
 겨울 닭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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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현산성에 들르고 나서 그 길로 곧장 집 뒷산까지 갈 것이다. 식장산을 지나 계족산 줄기를 타야 하는 만만찮은 길이다. 덕산 마을에서 버스를 내린다. 마을 뒤에 덕산이라는 산이 있어 덕산이라 부르는 마을이다.

커다란 당산나무가 마을을 품어주고 있다. 느티나무라고 매양 촌스러운 건 아니다. 노랗게 단풍든 느티나무는 때 빼고 광내고 나서 어디론가 외출하는 노인 양반을 닮았다. 마을 안길을 지나 뒷산 올라가는 길로 접어든다. 언제 걸어도 호젓한 길이다. 걷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길이다.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고대광실 집을 짓고…. 그 옛날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하러 가던 지게꾼들이 길의 호젓함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어사용을 불렀을 것 같은 그런 길이다. 어사용이란 나무꾼들이 불렀던 신세타령 노래이다. 산 골짜기엔 여기저기 내력을 알 수 없는 석축들이 허물어져 있다. 닭재골이라 부르는 골짜기다. 닭재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마을로부터 닭재까지는 1km 정도 되는 거리. 담배 한 대 필 시간이면 닭재에 도착한다. 덕산 마을 뒤쪽에 있는 닭산에 있는 고개다. 산세가 닭의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부터 마을에 경사가 있으면 닭재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흉사가 있으면 소나무가 울었다고 한다. 이곳 어딘가에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명당이 있다 한다. 우리나라 산야 곳곳에 명당 아닌 곳이 어디 있으랴마는 옛사람들은 왜 그렇게 명당에 집착했을까. 살아 발복하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발복하겠다는 생각이 징글징글하다.

고개 위에는 돌탑이 서 있다. 예전에 서낭당이 있었던 곳이다. 서낭당 하면 지나가던 사람이 툭 던져놓아 아무렇게나 쌓인 돌무더기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인위적으로 쌓아올린 돌탑들이 대신 들어서고 있다. 이 땅 무지렁이들의 마음이 담긴 자연스러움이 성황당이 가진 성스러움이 아닐까.

닭재에서 조금 더 올라가자, 길이 심심했던지 오른쪽으로 새끼를 친다. 길처럼 번식의 욕망이 센 유기체가 또 있을까. 자꾸만 샛길을 만들고 자꾸만 몸집을 키운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모든 길은 금계포란형이다. 언제 껍질을 뚫고 병아리가 나올는지 모르는. 오른쪽으로 난 길은 충북 옥천군 군서면 논골로 넘어가는 곳이다. 작은 삼거리일망정 옛날 대전 장날에 왔다 가던 나그네들이 쉬어서 갔음 직한 자리다.

단풍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포용의 아름다움이다

단풍이 곱게 물든 산자락. 멀리 보이는 산이 충남에서 가장 높은 산인 금산 서대산(904m)이다.
 단풍이 곱게 물든 산자락. 멀리 보이는 산이 충남에서 가장 높은 산인 금산 서대산(904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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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바라본 산줄기들.
 겨울에 바라본 산줄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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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들어 앞에 늘어선 산자락을 바라보니, 붉게 물든 비단 같다. 아름다워라, 이 나라 이 산야. 설악산을 가고, 지리산을 가야만 단풍 구경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국사봉 자라도 붉게 물들었고, 저 멀리 서대산도 붉게 물들었다. 산이 보여주는 붉은색이 내 심장의 박동을 쿵쿵쿵 뛰게 한다. 송기원의 시 '단풍에 대하여"가 떠오르는 풍경이다.

처음에는 그 말이 두려움이라는 걸 몰랐지요.
그대와 나는 다만 굶주렸을 뿐
눈빛이 눈빛을 더듬고
아득히 서로를 찾아 헤매었을 뿐
저토록 엄청난 사태가 되어 붉게 혹은 노랗게
세상을 향해 알몸을 드러낼 줄 몰랐지요.
저렇듯 자연스럽게 알몸으로 엉켜
세상 사람들의 눈을 부시게 할 줄은 까마득히 몰랐지요.

- 송기원 시 '단풍에 대하여' 전문

이런 멋진 풍경을 선사해준 나무들에 감사한다. 참나무에, 신갈나무에, 굴참나무에, 개옻나무에. 저런 아름다움을 보여주려고 지난 여름 짜증스럽게 내리는 빗줄기들을 자신의 몸 안에 다 받아주었던가. 그러므로 나무가 보여주는 단풍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포용의 아름다움이다.

오늘은 더는 길을 가지 않은 채 여기서 마냥 눌러앉고 싶다. 그러나 길만 새끼를 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새끼를 친다. 끊임없이 생각의 알을 낳고 부화시킨다. 새로 부화한 마음이 나를 재촉한다. 인제 그만 가던 길을 가는 게 어떠냐고.

황국.
 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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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추.
 산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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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가을까지, 이 길엔 쉴 새 없이 들꽃이 피어난다. 인적이 드물어 때를 타지 않아서인지 어느 곳에 피는 꽃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건 노란 황국이다.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가려거든 가거라. 네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승화 시라 옛부터 일러 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삭풍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 단풍이 어떠헌고.

단가 '사철가'의 한 대목에 나오는 녀석이다. 어린잎은 나물 무쳐 먹기도 하고, 꽃은 말려서 술에 담가 마시기도 한다. 조금 더 가자 이번엔 산부추꽃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백합과에 속한다고는 다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건 아니다. 산부추엔 백합이 맨발 벗고 쫓아와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집 텃밭에서 기르는 부추는 꽃이 하얀색이다. 어릴 적엔 부추 꽃대가 올라오면 잘근잘근 씹고 다니기도 했다. 무슨 특별한 맛이 있었겠는가마는 심심풀이 땅콩 삼아 씹고 다닌 것이다.

역사적 상상력에 의지해야 하는 산성 답사

동문(東門)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 등산객들의 통로가 되고 있다.
 동문(東門)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 등산객들의 통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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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벽.
 북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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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계현성에 도착한다. 산성의 가운데로 등산로가 나 있다. 동문지로 추측되는 곳으로 들어가서 북문지로 추측되는 길로 나간다. 계현성은 백제시대 산성이다. 해발 325.8m 되는, 닭재 북쪽 봉우리 꼭대기에 쌓은 성이다.

계현산성의 둘레는 약 220m 정도라고 한다. 그리 크지 않은 성이다. 성벽의 높이도 3.3m가량이라고 하니 성벽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그나마 성벽은 거의 허물어져 옛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으며 성돌도 거의 땅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성벽을 쌓았던 자취만은 뚜렷하다는 점이다.

동문으로 들어가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약간 높은 언덕이 보인다. 아마도 장대가 있었던 자리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장대가 북쪽에 있다면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는 남쪽을 바라봤다는 뜻일 게다. 남쪽에서 침투하는 적을 맞아 싸웠다는 얘기다.

남쪽에서 침투해오는 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옥천에서 대전으로 넘어오는 통로인 닭재와 대전-금산 간의 통로를 넘어오는 신라군을 감시할 목적으로 쌓은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도 산성 아래 동쪽으로는 대전-금산 간 국도가 지나고 있다. 길은 부지런히 새끼를 치지만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곳이 중요한 길목이라는 사실엔 변화가 없는 것이다.

산성은 제 태생과 소멸에 대하여 친절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너무 과묵하다. 그러므로 많은 부분은 역사적 상상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북벽 근처에 놓인 벤치.
 북벽 근처에 놓인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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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 근처엔 벤치가 하나 놓여 있다. 성벽과 어우러진 이 오브제는 설치미술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마도 등산객을 위한 배려일게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벤치에 앉는다면 자신의 정서 속에서 옛 산성의 느낌을 조금이라도 '복원'해낼 수 있을까.

잠시 납작한 성돌에 걸터앉는다. 마치 천 년 전 백제 병사의 숨결이, 그의 실핏줄이 느껴지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앉은 성돌을 맨 처음 이곳에 들어다 쌓은 병사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무사히 역(役)을 마치고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그가 그런 행운을 얻었더라면 좋겠다.

성을 떠날 시간이다. 북문지를 통해 성을 빠져나온다. 저만치 식장산을 향해 가다가 뒤돌아본다. 문득 멀리 바라다보이는 계현산성이 마치 '내 전생의 고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의 전생은 백제의 병사였는지 모른다.


태그:#계현산성 , #덕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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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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