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태왕사신기>와 <로비스트> 같은 대작 사이에서 사람 냄새나는 담담한 드라마가 시작했다. 바로 KBS2TV의 수목미니시리즈 <인순이는 예쁘다>이다. 이 드라마는 고등학교 시절, 실수로 사람을 죽여 살인 전과자가 된 인순이가 세상의 편견에 맞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김현주가 2년만에 안방으로 컴백해 인순이의 역할을 맡아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곳곳에 나오는 인순이의 내레이션은 그 대사 자체만으로도 가슴을 짠하게 만들곤 한다. 이것은 인순이의 일기이며 인순이의 성장드라마이다. 첫 회에 살인전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니던 제과점에서 잘린 후, 인순이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인순아. 난 착해. 난 예뻐. 난 사랑스러워. 난 훌륭해. 난 누구보다 특별해. 특별한 존재는 원래 시련이 많은 거야.' 바로 선생님과 하루에 열 번씩 외우기로 한 주문이다. 하지만 인순이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주문을 외워도 이 빌어먹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인순은 이 세상에서 꺼져주겠다고 지하철 선로 앞에 서지만, 때마침 중학교 동창인 상우(김민준 분)를 만난다. 상우는 외모, 학벌, 집안, 직업, 성격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남이다. 분명히 그는 멋진 남자로 겸손하고 유머러스하며 착하기까지 하지만, 그의 그러한 성격은 때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인순이의 고등학교 담임인 서경준(엄효섭 분) 선생님이 지적한 것처럼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때로는 자기위안일 때가 많은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상우는 조금 비겁하다. 인순이에게 미안함이 들면 인순이에게 직접 얘기를 해야 한다. 인순이가 과거에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면 인순이에게 직접 물어 봐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상우는 세상 이목이 무엇보다 중요한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인순이의 엄마인 선영(나영희 분)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아기인 인순을 버렸던 그녀는 어른이 되어 만난 인순을 집에서 함께 살자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인순이가 살인전과자라는 것을 알고도 인순이에게 도대체 왜 그랬느냐고 묻지 않는다. 엄마면 지금 궁금해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절규하는 인순 앞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얼른 차에 타라고 말할 뿐이다. 결국 그녀는 인순의 고모인 옥선(박순천 분)을 찾아가 누굴 어떻게, 왜 죽였는지 물어본다. 연극배우인 선영의 공연을 보고 난 상우의 입사동기인 아나운서 재인(이인혜 분)은 또 어떤가. 별로였다고 말하던 그녀는 정작 선영의 앞에선 환하게 웃으며 너무 감동이었다고 울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 드라마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인순이에게 미안해 하면서도 미안한 건 잠깐이고 미워 죽겠다고 동료에게 한탄하는 선영도, 우정이라는 이름을 빙자해 본의 아니게 우월감을 보여주는 상우도, 자신의 집에 얹혀서 며칠 있게 된 인순이에게 눈치를 주며 심심하면 반찬이나 좀 만들어 놓으라고 말하는 친구 미화도, 모두 나쁜 사람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조금씩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사람으로 매도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도 현실에서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상처를 주고, 또한 받으며 살아가니까 말이다. 아마도 정말 나쁜 사람은 인순이 한 명뿐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실수이든 아니든 사람을 죽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인순이가 모두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걸까? 물론 아닐 것이다. 4회 마지막 부분에서 누구도 찾지 않고 누구도 사랑해주지 않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고,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려던 그녀는 자신보다 먼저 뛰어든 취객을 보고는 용기를 얻어 취객을 구한다. 그리고 가슴을 울리는 그녀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용기가 내 맘 속에 솟구쳤다. 살고 싶다. 살고 싶어졌다. 간절히…. 그리고 멋있게! 죽도록 사랑 받는 그 날까지!' 인순이는 누군가의 사랑을 그리워한다. 사람은 분해서 자살하는 게 아니라 관심 받고 싶어서 자살하는 거라고 읊조렸던 그녀는, 이제 죽도록 사랑받는 그 날까지 멋있게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느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휴대전화와 인터넷 등 통신이 발달했지만 그만큼 소통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요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더 힘들어진 현실 속에서, 모두가 외로운 섬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먼저 나를 사랑하려면, 오늘부터 자신에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 괜찮아. 난 착해. 난 예뻐. 난 사랑스러워. 난 훌륭해. 난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야. 특별한 존재는 원래 시련이 많은 거야. 이처럼 장점이 많은 드라마임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담담한 수채화 같은 드라마의 특성 탓인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등장인물 역시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고는 하지만 강렬한 무언가가 부족한 것 같다. 전개 역시 템포가 조금 느린 듯 하고, 일어나는 사건이나 갈등 역시 소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제 인순이와 어린 시절 함께 살았다는 동생 근수(이완 분)도 새롭게 등장하고 인순이 역시 여린 모습보다 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 되기에 앞으로는 더 큰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힘든 세상, 당당하게 헤쳐 나갈 인순이가 앞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 또한 인순이는 정말로 예쁘다는 걸 스스로 뿐만이 아니라, 상우와 선영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 시청자들도 곧 깨닫게 되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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