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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물에 통찬 배추 절이기


그제(16일) 자정께 집에 돌아와 늦었지만 라면을 하나 삶아 먹으면서, 엄마와 비과세 정기예금에 대해 이야기를 잠시 나눴습니다. 이야기가 끝난 뒤, 엄마는 "내일 오전에 어디 나가요?"라고 물으시더군요.

내일(17일)은 집에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밭에서 뽑아 1층 현관 앞에 놓아둔 배추를 가지고 김장을 한다고 오전에 시간이 되면 도와달라고 하시더군요. 아버지께서 토요일 오전에 잔칫집에 가고, 내일 날도 추워지고 비가 올 것 같아 아침 일찍 밭에 가서 남은 배추를 비닐로 덮고 온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에 돌아와 새벽까지 밀린 숙제 블로깅을 미친 듯이 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새벽 3시가 넘어 잠이 들어 깨어보니, 10시30분 정도 되었더군요. 전날 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도 있고 해서 벌떡 일어나 세안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밭에 갔다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잔칫집에 가셨고요. 씻고 나오니 어머니께서 "밥 먹고 천천히 나와요"라고 하시더군요. 밥 생각은 없어 우선 밀린 숙제 하나를 해결하려고 컴퓨터를 켰습니다. 월간 <사람>에 보낼 원고도 써야 했습니다.

아무튼 금세 끝날 것으로 생각했던, 차별금지법에 대한 포스팅이 꽤 길어져 12시를 넘기고 1시를 넘기고 말았습니다. 마음은 아래층 현관에 내려가 있는데, 몸은 방안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붙잡고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이모가 와서 김장을 도와준다고 했는데, 일이 있어 내일 온다는 연락도 받은지라 어머니 혼자서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고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 했던가요. 역시 조급해 하니 이것저것 더 꼬이더군요.

* 관련 글 : 차별저지긴급행동 배너달기에 동참합시다!

다행히 2시 전에 현관으로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엄마와 김장하기'에 결합했습니다.

우리집 김장하기의 시작
 우리집 김장하기의 시작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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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꽉 찬 배추
 속이 꽉 찬 배추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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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절이기~ 한판!

두꺼운 양말과 윗옷을 입는 등 김장할 채비를 하고 아래층에 내려가 보니, 어머니와 천막집 아주머니 둘이서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고 계셨습니다. 밭에서 다듬어온 속이 꽉 찬 배추를 부엌칼로 반토막 내어 소금물에 담가 씻어내 고무대야에 건져내면 이것을 아주머니께서 건져 소금을 쳐 다른 대야에 넣는 순이었습니다. 오전에 김장하기에 결합치 못한 죄송함 때문에, 바로 고무장갑을 끼고 배추 절이기에 합류했습니다.

 엄마와 김장하기-배추 절이기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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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절이기, 물에 소금을 풀어 간물을 맞춰 배추를 씻고 소금을 뿌리면 된다.
 배추 절이기, 물에 소금을 풀어 간물을 맞춰 배추를 씻고 소금을 뿌리면 된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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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엄마와 아주머니가 절인 배추
 그새 엄마와 아주머니가 절인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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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에 소금이 뿌려지면 그 살이 연해진다.
 배추에 소금이 뿌려지면 그 살이 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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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인 배추는 고무대야에 차곡차곡 쌓는다.
 절인 배추는 고무대야에 차곡차곡 쌓는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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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를 절이기 위해 필요한 소금을 3층에서 가지고 내려오고, 포대에 담긴 배추를 꺼내고, 배추를 간물에 씻어 건져내고, 골고루 간이 되게 하기 위해 대야 아래쪽 배추를 건져 위쪽으로 옮기기를 반복했습니다.

절인 배추를 둥근 고무 대야에 옮겨 담을 때, 어머니께서 "배추도 둥그렇게 예쁘게 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절인 배추를 옮겨 닮을 때도 나름 노하우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대야 아래쪽 배추들은 위쪽 것들보다 오랫동안 간물에 노출되어 있어 이것을 바꿔줘야 하는데, 그때 위쪽 배추를 이젠 아래쪽에 놓고 아래쪽에서 한참 절여진 배추는 위쪽에 놓아야 제대로 절여진다는 말입니다. 하하!

하여간 비가 온다 했는데, 다행히 빗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배추 절이기를 모두 끝낼 수 있었습니다. 아주머니와 어머니께서는 다 큰(결혼 생각이 없는) 아들이 일손을 거들어 수월했다고 별로 할 일도 없는 저를 추켜세워주셨습니다. 사실 배추 절이기는 어머니와 아주머니가 다 하신 겁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그 칭찬에 힘이 솟아 배추 절이기가 끝나고, 뒷정리 겸 계단 청소까지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아버지께서 돌아오셔서, 내일(18일) 김장의 하이라이트인 속 버무리기를 위해 무채를 써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녁을 드시고 속을 만들 양념을 준비하셨고요. 그렇게 우리 집 김장하기의 첫날이 지나갔습니다.

배추도 예쁘게 놓아야...
 배추도 예쁘게 놓아야...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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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기 전에 배추를 다 절였다.
 비가 오기 전에 배추를 다 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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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절이듯, 세상을 팍팍 절여보자!

배추를 절이다, 문뜩 요즘 배추가 금보다 비싸다고 김장대란이 온다고들 난리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식을 들으면 솔직히 한심하기만 합니다. 농군들이 지금껏 피땀 흘려 키운 배추를 팔아 부자 된 사람이 없는데, 배추 값이 비싸다고들 야단입니다. 배추가 비싼 것은 농군들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농업말살정책과 농산물 유통과정에서 폭리를 챙기는 장사치들 때문인데 말입니다.

여하튼 땅과 흙을 버리고 삭막한 도시에서 살면서 먹거리, 김치 하나조차 마련하지 못해 사먹어야 하는, 그나마 돈도 없으면 김치조차 사먹을 수 없는 세상이 참 안타깝기만 합니다. 가족과 이웃과 어울려 김장 하나 담가 먹을 수 없는 세상 참 맛이 안 납니다.

이런 세상에 소금을 팍팍 뿌려 절여, 제 맛이 나게 한 번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p.s. 요즘 세상에 저희 집처럼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없습니다. 다들 아파트 같은데 살다보니, 김장 자체를 할 수 없는 거죠. 김치를 담글 줄 모르는 젊은 처자들도 많다고 하네요. 그래서 김장을 하기보다, 가공된 김치를 사먹는 거고요. 저희 집은 직접 키운 배추와 무, 파 등등으로 김장을 해서 먹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김장대란 그런 것 걱정 안 해도 되고, 중국산 김치를 먹을 일도 없고요.



태그:#김장, #배추절이기, #배추,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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