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 권중희 선생 빈소.
고 권중희 선생 빈소. ⓒ 이창기

민족통일애국지사 고 권중희 선생의 장례가 20일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민족통일애국지사 고 한길 권중희 선생 장례위원회’(장례위원회)는 17일 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회의를 열어 장례일정과 장례위원회 구성을 결정했다.


추도식은 19일 저녁 7시 빈소에서 진행되며, 20일 오전 7시 30분에 발인을 거쳐 9시 서울 원효로 효창원 백범 선생 묘역에서 노제를 지낸 뒤,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한다고 장례위원회는 밝혔다.


호상은 고인이 고문으로 활동했던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의 리인수 상임공동대표와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응징한 박기서씨가, 장례위원회 고문은 강민조 유가협 회장, 강희남 목사, 박중기 민족민주열사 희생자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 의장, 양은식 6·15미국위 상임위원장, 이규재 범민련 의장, 이기형 시인, 임기란 민가협 고문, 장두석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이사장,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이 맡는다.


공동장례위원장은 강정구 교수,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장, 노길남 민족통신 발행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조영건 6·15남측위 학술분과위원장, 진관스님 등.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박해전 <참말로> 회장은 “권중희 선생께서 민족정기 구현을 위해 한생을 바쳤는데, 최근년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롭고도 고독한 투쟁을 해왔다”며 “여러 사회 인사들이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덜 외롭게 하자고 위원회를 구성하고 사회장으로 모시게 됐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고인은 민족자주, 조국통일에 대해서 국가보안법에 구애받지 않는 실천을 해오셨는데 그 정렬이 너무 뜨거워 대중이 온당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며 “원칙적인 투쟁을 했기에 고독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족통일애국지사 고 한길 권중희 선생 사회장 공고>


민족정기구현을 위해 헌신해 오신 민족통일애국지사 권중희 선생이 2007년 11월 16일 오후 5시경에 별세했습니다.


■빈 소 : 강남성모병원 영안실(11호,☏02-590-2576)
■추도식 : 11월 19일 오후 7시 강남성모병원 예식실
■발 인 : 11월 20일 오전 7시 30분
■노 제 : 11월 20일 오전 9시 원효로 효창원(백범 김구 선생 묘역)
■장 지 : 마석 모란 민족민주열사 묘원


유족 : 김영자, 권태정, 태연, 혜선
호상 : 박기서, 리인수
고문 : 강민조, 강희남, 김영옥, 나경운, 림원섭, 박정기, 박중기, 박창균, 배은심, 서상호, 양은식, 유태영, 윤한탁, 이규재, 이기형, 이낙호, 이세춘, 이소선, 이천재, 임기란, 임동규, 장두석, 정해숙, 조문기, 한준수, 현준기(이상 가나다순)
공동장례위원장 : 강정구, 권오창, 권오헌, 김강길, 김수남, 노길남, 박기호, 박석률, 박해전, 백기완, 송영도, 신맹순, 윤기진, 이문옥, 이수호, 이창기, 인병문, 조영건, 진관스님(이상 가나다순)
공동집행위원장 : 강진구, 김종대, 송진복, 임찬경
장례위원 : 김귀옥, 김난수, 김선환, 김승교, 김영의, 김인규, 김정숙, 김지영, 김창근, 김태갑, 김현철, 김호현, 김휘대, 류선민, 모성룡, 박재민, 방성일, 방학진, 배강옥, 서경순, 성우근, 송경용, 안병길, 안은찬, 이동균, 이병희, 이지문, 이현근, 이혜자, 인송자, 임재복, 장경욱, 조명희, 조순덕, 최유화, 최재복, 하성원, 한찬욱, 홍석영(이상 가나다순)


조문 참여 : 국민은행 292501-01-067721( 예금주 김영자)

 

-민족통일애국지사 고 한길 권중희 선생 장례위원회-


<고 한길 권중희 선생 약력>


- 경북 안동에서 1936년 2월 10일생
- 15세 때 ‘백범일지’를 읽고 민족의 혼을 가슴에 새김
- 1981년 안두희가 백범 살해를 부인하는 잡지 인뷰터와 미국도피 위한 여권발급 논란을 보며, 이후 직장을 사직하고 안두희 응징 계획
- 87년 3월 끈질긴 추적 끝에 서울 신촌에서 몽둥이로 안두희 응징
- 87년 10월 집행유예 6개월 선고 받고 석방
- 1991년과 1992년 네 차례에 걸쳐 안두희로부터 암살 배후 자백 받아냄
- 1993년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돌베개) 저서 출판
- 민족정기구현회 회장
- 2004년 2월 '백범선생 암살 진상규명 방미 조사단'을 꾸려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등을 방문해 진상조사
- 2004년 10월 민족정기구현회 홈페이지( http://www.koreakjh.com/ ) 개설 운영
-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 고문으로 주한미군철수운동
-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고문으로 통일운동의 일선에서 활동
- 2005년 5월 미제 침략자 맥아더 동상분쇄 투쟁 농성
- 2004년 10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2,000여편 이상의 반미 반한나라당 논평 집필 게시
- 2007년 11월 16일 논평 <최소한의 염치도 양심도 없는 한나라도당은 각오하라!> 발표
- 2007년 11월 16일 오후 4시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시다 심장마비로 운명

 

(자료제공 - 장례위원회)

 

덧붙이는 글 | <참말로>에도 실립니다.


#권중희#인병문#사회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