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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이다. 입동(立冬)이 지나기가 무섭게 부쩍 쌀쌀해진 날씨가 올겨울의 을씨년스런 풍경을 벌써부터 예고해 준다. 우리 어릴 적 겨울나기는 김장과 연탄 들이기로 시작되곤 했다. 동네 사람들과 일가친척들까지 모여 치르던 김장 담그기 행사는 마당 가득히 쌓아올린 배추 더미와 함지박 가득 굵은 무를 끝도 없이 채 썰던 기억, 그리고 잘 절여진 배추에 시뻘건 양념 속을 둘둘 말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밤새 속을 끓이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매서운 추위가 엄습하기 전 아버지는 언제나 지난 겨울, 때고 남은 묵은 연탄을 연탄 광 벽면에 가지런히 정리하시고는 몇 백 장씩 연탄을 새로 들이셨다. 텅 빈 연탄 광이 가득 차게 되면 함지박에 손이 쩍쩍 달라붙는 추위쯤은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연탄 들이고 난 후 탄가루 묻은 신발 자국으로 어지럽혀진 마당을 도맡아 청소해야 하는 것이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마당에 묻은 김장독과 연탄 광을 바라볼 때면 마음이 한없이 평화로워지곤 했다.

 

목회 22년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어느 때였는가 돌아볼 때가 있다.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할 때다. 교인이라야 어른 7∼8명, 어린이 20명이 모이는 가난하고 작은 교회였다. 여름은 그런 대로 괜찮은데 겨울이 닥치면 걱정이다. 제일 큰 걱정이 연탄을 들여놓는 일이다. 

 

 

연탄을 들여놓는 날에는 온 교우들이 총동원되었다. 경운기를 빌려 정선 읍내에 가서 연탄을 사서 싣고 오면, 그다음 교회 입구까지 300여 미터를 손으로 날라야만 했다. 마을 입구에서 교회까지는 차나 경운기가 들어갈 수 없는 논두렁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자 교우들(아내를 제외하곤 모든 할머니들이었다)은 고무 대야에 연탄을 몇 장씩 담아 머리에 이고 날랐고 나는 외발 수레를 이용해 날랐다.

 

연탄을 다 나르고 나면 온몸에 검정 칠이었다. 그러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로 깔깔거리며 웃었다. 연탄을 나르다 보면 몇 장을 깨트리게 된다.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깨진 연탄도 버리지 않고 다 썼다. 연탄을 들여놓은 날은 잔칫날이었다. 아내는 남산만 한 배로 시래기 국을 끓이고 밥을 지었다. 연탄 광에 가득 찬 연탄을 보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그렇게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며칠 전 교우 집을 다녀오다 창 밖으로 빠끔히 연통이 삐져나온 한 아파트를 지나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큰 도시인 부산에서 구시대의 유물인 연탄을 때는 아파트가 지금도 건재하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신통할 수가 없었다.

 

번개탄 한 장과 연탄 두 장이 들어가는 자그마한 아궁이가 연상되면서 이곳은 아직 연탄 서너 장쯤이야 마음 편하게 빌려주는 풋풋한 인심이 남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땜질 흔적이 확연한 아파트 외관이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어야 할 때나 IMF로 국가가 부도사태를 만났을 때, 조금 나아졌다고 잠시 허리띠를 풀었다가 구조조정과 함께 다시 몰아닥친 경제 한파에 화들짝 놀라 자라목처럼 움츠러들어야 하는 우리네 기억은 온통 가난했던 시절뿐이다.

 

지금 우리는 연탄을 한꺼번에 들일 일도, 김장을 산더미처럼 담가야 할 걱정도 하지 않지만 본격적으로 가난했던 예전보다 올겨울은 오히려 더 저리고 아프다. 잠시 풍요를 맛보았기에 다시 가난한 생활로 돌아가 내핍을 견디는 일이 마음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집 마련 꿈이 더 멀리 달아나고, 기름보일러를 연탄난로로 바꿔야 하는 구차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우리에게 서로 믿는 따뜻함이 불씨로 남아 있다면 겨울나기가 덜 힘들지 않을까 싶다.

 

실업자 200만 명 시대가 도래한 올겨울, 자리를 털고 떠났던 노숙자들이 다시 역 대합실과 지하철 통로로 모여들고 교회와 기독교단체가 운영하는 '쉼터'와 무료급식소에 예전보다 더 길게 행렬이 늘어설지언정 연탄 불씨를 주고받던 우리네 옛 인심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다시 일어나는 것도 그리 막막하지만은 않으리라.

 

며칠 전 어머니가 담가주신 김치가 벌써 적당하게 익었다. 햅쌀로 밥을 지어 김치와 함께 먹으면서 문득, 지금 내가 너무 호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내는 성가시리만치 보일러 온도 눈금을 낮춘다. 지금 4,50대 이상 세대들에게 겨울은 분명 풍요보다는 가난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태그:#김장, #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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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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