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2~3주에 불과한 교통사고였지만 운전자가 바뀌었다며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도주) 혐의로 구속된 사람이 있다. 그는 구속 후 50여 일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지난 6년 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난 14일 또 한 번 무고죄로 구속되었다. 충남 예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한평수(54세)씨.
사고는 2001년 5월 18일 18시 20분경 일어났다. 이날 한씨와 처 김옥자씨 부부는 사흘 전 구입한 0.5톤 타우너 화물차를 끌고 나왔다 사고를 당했다. 김옥자씨는 사고 나기 5일 전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농산물을 내다 팔기 위해서였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후 처음이었던 이날 운행은 이들 부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들 부부는 신호등 없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려는 순간, 직진하던 승합차와 부딪혔다.
이 사고로 인해 승합차에 타고 있던 6명은 각각 전치 2~3주, 화물차에 타고 있던 한씨 부부는 부인 김옥자씨가 발등에 시큰한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물적 피해는 두 차량 합해 600여만 원.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40여일 간의 조사를 한 끝에 한평수씨를 구속했다. 당시 한평수씨가 운전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씨는 운전면허를 딸 생각조차 한 바 없고, 운전대를 평생 동안 잡아본 적도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과연 어찌 된 일일까? 기자가 사건 진술서를 며칠 동안 파헤쳐본 결과 경찰 조사에 의문이 생겼다. 그 의문점은 다음과 같다.
'수사상황종합결과 보고서'의 문제점 - 하나, "화물차의 손괴 부분과 상처의 연관성"
검찰과 재판부쪽에서 한씨가 운전했다고 판단한 가장 유력한 정황증거는 김옥자씨의 발목 부상이었다. 당시 차량 조수석이 일부 손상돼 있었고, 김옥자씨가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운전석엔 당연히 한평수씨가 앉아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상을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다. 발목 부상은 급페달을 밟을 때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과학연구소 변동섭 소장은 16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차대차 사고로 사람이 부상을 입는 형태는 두 가지다. 직접충격과 구조물에 걸려 부상을 입는다"면서, "타우너의 차량손괴 상태로는 조수석까지 사고 당시의 1차 충격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사고차량과 같은 타우너를 가지고 직접 실험을 해본 바도 있다면서 "여성운전자의 경우 사고 발생 시 페달을 본능적으로 강하게 밟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밟고 있던 페달이 틀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변 소장은 마지막으로 "법원이 조수석 쪽의 차량 손괴를 이유를 들어 조수석에 탄 사람이 부상을 입었다고 추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논리일 뿐이고,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했을 때 김옥자씨의 발목 부상은 오히려 사고 당시 운전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입은 부상이다"며 확신했다.
당시 재판기록에는 교통사고 조사전문가의 의견은 첨부돼 있지 않았다. 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했다는 기록도 없다. 재판부와 검찰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교통사고 상식에 근거에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변 소장은 차후 재판에서 자신이 직접 출석해 증언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수사상황종합결과 보고서'의 문제점 - 둘, "권 아무개 형제 증언의 문제점"수사기록을 보면서 든 또 다른 의문은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두 증인이었다. 검찰이 한씨가 운전자라고 확신하게 만든 증인은 형 권아무개(26세)와 동생 권아무개(24세) 형제였다. 형제는 당시 사고현장인 삼거리 옆에서 카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동생 권아무개는 사고 당시 자신의 카센터에서 차를 수리하다가, '꽝'소리가 난 후 사고 과정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진술 자료에 따르면 그는 70여 미터 가량 떨어진 사고 현장에 다가가 구조하는 과정에서 "화물차에서 한씨는 내려 서 있고, 조수석 쪽에 김옥자씨가 앉아 있는 것을 봤다"는 증언을 했다.
형 권아무개는 사고현장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가 동생의 전화를 받은 후 렉카차를 끌고 현장에 왔다. 형 권아무개는 이후 진술 과정에서 "도착해서 보니 승합차에서는 사람들이 빠져 나와 있었고, 타우너 화물차에는 부인 김씨가 다리를 다쳤는지 허리를 구부리고 다리를 만지는 것처럼 보였고, 한평수씨는 화물차 운전석 앞 가드레일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조수석 쪽에 있던 베개(김옥자씨는 키가 148cm 작아 정상적으로 운전하기 위해서는 베개를 등 뒤에 받쳐야만 했다)가 견인하려고 보니 운전석 쪽으로 옮겨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진술자료에 의하면 형 권아무개는 증인으로서 자격이 없다. 형 권씨는 사고 후 첫 조사인 2001년 5월 24일 경찰 1회 참고인 조사에서 자신이 사고현장에 도착한 것은 약 15분 정도 지난 뒤라고 진술했다. 사고가 18시 20분 경에 일어났으니 18시 35분 경에 도착한 셈이다.
승합차에 타고 있던 정아무개씨는 2001년 6월 13일 2차 조서에서, 자신들이 소지품을 모두 꺼내고 한평수씨와 그의 처가 차량 밖에 서 있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그 시간은 18시 25분경이었다. 즉 형 권씨가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이 모두 차 밖으로 나온 뒤 이미 10분이나 지난 때였다.
하지만 검찰과 재판부는 "김옥자씨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는 형 권아무개씨의 증언을 받아들였다.
동생 권씨의 증언에서도 의문점은 발견된다. 동생 권씨는 사고 후 약 2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사고차량인 프레지오 승합차에 도착해, 탑승객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도왔다. 사고 직후니까 상황은 급박했다. 그런 그가 잠깐 바라본 화물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유의해서 봤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의문은 2006년 새롭게 확인된 목격자 박아무개씨가 나타나면서 커진다. 당시 사고현장에서 약 5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 현장을 본 박씨는 자신이 도착했을 때 한씨 부부가 이미 차에서 내려 서 있었다고 증언했다.
박씨가 천천히 걸어서 사고 현장에 도착한 시간인 18시 22분경과 동생 권씨가 프레지오승합차에서 화물차를 바라본 시간인 18시 23분경은 거의 같은 시간대다. 혹시 동생 권씨는 조수석쪽이 사고로 문이 열리지 않자 운전석쪽을 통해 내리던 이들 부부를 바꿔서 생각하진 않았을까?
동생 권씨의 증언이 신빙성이 약하다고 판단되면 나머지 진술 또한 그 효력이 사라진다. 왜냐 하면 승합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동생 권씨의 목격을 근거로 한씨가 운전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진술서에서 승합차 운전자들은 "누군가 현장에서 운전자가 바뀌었다고 말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누군가'는 동생 권씨인 것으로 경찰쪽 역추적 결과 드러났다.
'수사상황종합결과 보고서'의 문제점 - 셋, "한씨 부부의 진술상 모순점은 없어"
"평생 한 번도 운전대를 잡은 일이 없다" |
지난 9일 있었던 한평수씨와 나눈 대화입니다.
-사고 당시 한평수씨는 어디에 앉아 있었나. "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나는 겁이 많아 운전은 물론이고 심지어 경운기도 몰지 모른다. 농사철에 바쁘면 옆집 사람들에게 부탁해 경운기를 움직였을 정도다. 내가 운전을 못한다는 것은 땅이 알고 하늘이 안다. 나는 결코 운전을 하지 않았다. 평생동안 한번도 운전대조차 잡아본 일이 없는 내가 그날만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는 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사고 당시 운전석에 앉아 있었던 걸로 오인한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조수석 문이 사고로 인해 열리지 않았다. 이로 인해 운전석을 통해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가 한다. 조수석 문이 열리지 않아 운전석으로 내린 것은 조사과정에 상세히 나와 있다."
-가장 억울한 것은 무엇인가. "운전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나를 잡아 넣었다. 그들을 용서 할 수 없다. 언제가 내 진실을 밝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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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한씨가 운전했다는 또 다른 정황증거로 한씨 부부의 진술상 모순점을 들었다. "위 차량을 처음 운전하였다는 김옥자가 3시간 40분이 넘는 시간을 운전했다", "경운기도 제대로 운전할 줄 모른다는 피의자(한창수)가 오토바이 운전면허를 취득하여 소지하고 있고, 직업이 농업인 자가 경운기도 제대로 운전할 줄 모른다는 점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첫 운전한 김옥자씨가 3시간 40분이나 운전할 수 있었나?"라고 의심한 대목은 허술했다. 왜냐하면 이날 운전한 총거리는 50킬로미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행시간도 1시간 남짓이었음이 나중 민사재판 과정에서 확인됐다.
오토바이 면허와 관련해서도 한씨는 "접수만 하면 누구든지 면허증을 내줬다" "49cc 스쿠터를 몰고 다녔다"고 밝혔다.
한씨와 지난 몇 십년간을 함께 살았던 마을 주민들 또한 한씨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씨와 한 마을에 살면서 수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한씨가 운전대를 잡는 것을 본 바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주민대책위를 꾸리고 2001년 10월 자선행사 등을 여는 등 한씨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주민 110명이 탄원서를 써 법원에 제출한 적도 있다.
한씨의 막무가내식 주장과 행동이 사건의 실체 규명을 어렵게 해이처럼 조사는 미흡했지만 판결은 단호했다. 그 점이 궁금했다. 그 점에 중점을 두고 한씨 측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씨의 성격이 그렇게 판결을 극단으로 몰고 간 원인인 듯했다.
그는 사건 당일 밤 11시경 증인인 권아무개 형제를 찾아가 사실대로 밝혀줄 것을 요구하기보다 "처가 운전한 것을 봤다고 말하라"고 윽박질렀다. "경찰이 10만원을 받고 사건을 조작하려 한다"며 경찰측에 대해 강한 피해의식을 보이기도 했다. 나아가 "운전자가 바뀐 것은 우리 쪽이 아닌 상대방"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경찰이 한씨의 무죄를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한씨는 경찰의 교통사고 조사를 거부하는 등 수사에도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다. 경찰관이 돈을 받고 편파적으로 수사한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심지어 한씨는 권아무개 형제가 운영하던 카센터를 후배 정아무개씨와 함께 수시로 방문해, 목격자 진술의 잘못을 들어 위증죄로 구속될 수도 있다는 협박을 했다. 승합차 운전자와 남편에게도 "운전수가 바뀐 너희들이 구속되어야 한다"며 협박성 발언과 행동을 했다.
권아무개 형제 등을 무고했다는 형사사건선고,14일 열려한씨는 지난해 6월 권아무개 형제와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들을 무고한다는 이유로 구속된 후, 사개월여 만인 작년 10월 보석금 300만원을 납부하고 불구속 재판을 받아왔다.
무고죄와 관련한 형사사건은 지난 14일 선고가 있었다. 이날 오전 9시 30분 충남 홍성지원에서 있었던 법정진술에서, 한씨는 "중요한 증인이 채택되지 않았다. 피고인의 방어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등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은 고소한 사람들에 대해 위증과, 위증교사를 일삼고 있고 뉘우치기보다는 증인들에 대한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이 재판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피고인의 방어권은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말한 후 "징역 1년에 처한다. 보석은 취소한다"고 판시했다.
3분여에 걸친 선고재판이 끝난 후 한씨는 곧바로 교도관들에 의해 구속이 집행되었다.
한편, 한평수씨 재판을 지켜본, '사법정의국민연대' 조관순 공동대표는 "한평수씨의 무죄를 확신한다. 무고죄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다 나온 결과일 뿐인데, 재판부가 너무 가혹한 처벌 결과를 내놨다"며 불만을 표했다.
그간 '사법정의국민연대'는 지난 3년간 한평수씨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보며 한씨의 결백을 주장해 왔다. 조 공동대표는 한평수씨 구속이 이뤄후 기자에게 "작년에 새롭게 확인된 박모 증인과 당시 현장에 있었던 화물차 보험 담당자의 증언 등을 새롭게 확보해 2심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