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감동이 오는 책 한 권을 읽었다. 책 제목은 <이현상 평전>(안재성, 실천문학사, 2007), 실천문학사에서 발간하고 있는 '역사인물 찾기' 스물두 번째 권이다. 전기하면 보통 한 인간의 일생을 기록한 책이지만, 평전(評傳)은 평론(評論)을 겸한 전기(傳記)를 말한다.
전기는 한 인간의 진실한 사실의 기록이지만, 평전에는 주인공의 삶과 생각 그리고 걸어온 발자취에 얽힌 다양한 각설이 풀어헤쳐져 있다. 그래서 책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한 인간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싶으면 평전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현상 평전에는 혁명가 이현상 그리고 인간 이현상에 대한 진실하고도 드라마틱한 삶이 녹아있다. 남쪽 작가들의 상상력에 의해 이현상은 소설 속에 종종 등장했다. 작가 이병주 선생의 '지리산'에도 이현상은 중앙당의 간부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도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조정래의 '태백산맥'에는 신비롭고 영웅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류의 소설 속 이현상보다 평전 속 이현상은 더 감동적이다.
그리고 그는 올곧은 한길만을 갔다. 조선의 독립과 모든 인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산 속에서 투쟁하며, 실천하면서 살았다.
총으로 칼로 인간을 정복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총칼은 민중의 힘에 의해 무뎌지고 민중에 의해 마침내 전복되고 만다. 이것은 역사의 보편적 진리다. 진정한 권력은 민중의 폭넓은 동의와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 자발적인 민중의 지지와 동의가 없이는 권력의 정당성, 도덕성을 확보할 수가 없다. 지리산 유격대원들에게 이현상은 강제가 없는 스스로 만든 ‘신성한 권력’ 그 자체였던 것이다.
1945년 해방공간. 친일친미 지주 세력에 의해서 건국된 남한과 항일 반지주 세력에 의해서 건국된 북한. 해방된 한반도, 남과 북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던 주도 세력들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반공이 국시가 되고, 군사쿠데타가 혁명으로 둔갑하고, 반란 수괴가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되기도 했던 남한사회.
남한의 반공 이데올로기의 역사는 이현상을 저 깊은 지리산 골짜기보다 더 깊은 심연 속에 가두어 버렸던 것이다. 그 깊고 깊은 골짜기 속에는 아직도 우리가 못 다한 이야기의 사슬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이제야 우리는 이 얽키고설킨 실타래의 한 올을 들추어내고 있는 것이다. 전쟁 후 50년,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얼굴이다.
이현상이 활동했던 당대 현실을 정확히 인식한다면 무슨 주의(主義)니, 그리고 이념(理念)이니 하는 개념은 민족의 이익 앞에 낡은 관념적 유희에 불과한, 누더기 휴지조각 같은 것이었다. 이현상의 사회주의 사상은 지극히 단순하고 순수한 ‘정의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고창의 부유한 면장의 막내아들이었던 이현상은 당시 현실에서 의식주에 구애받지 않고 살았다. 그의 사상은 부자에 대한 증오나,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사회구조적 모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모든 인간은 평등해야 하고, 정의가 살아 움직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사회주의 입문의 시작이었다.
학생 이현상에게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순종의 장례행렬이 종로3가 단성사 앞을 지날 즈음에 맨 먼저 뛰쳐나가 '대한독립 만세! 이천만 동포여 원쑤를 몰아내자!'고 외쳤다.
이현상은 이 일로 해서 생애 처음으로 일제 경찰로부터 모진 고문과 동시에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감옥 속에서 그는 이미 수감되어 있던 사회주의자들을 만나 기초이론을 배웠다. 일본제국자본주의 타도야 말로 이 지긋지긋한 식민의 사슬을 끊는 길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민족의 이익을 위해 그는 항일을 했고, 공산당을 했던 것이다. 해방공간에서는 통일정부의 수립을 위해 헌신했다. 해방공간에서 우리 민족의 시대적 상황은 흑과 백을 쉽게 규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정의를 판정하는 오직 한 가지 기준은 바로 민족의 이익 그 자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민족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온몸을 던져 투쟁했던 사람이다.
21세기 오늘. 이 땅의 현실에서 혁명이란 무엇일까? 또한 혁명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늘 사용하던 책상 하나, 늘 옆에 있던 책장 하나를 옮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익숙해져 있는 환경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사회의 대변혁을 꿈꾸며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펼쳐나간다는 것은 꿈의 실현을 떠나 그 삶 자체만으로도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자기 변화에 소홀했던 생명체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은 도태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지구생태학의 역사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때로는 개선하면서 때로는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오늘은 또 내일이며, 내일은 또 오늘인 것처럼.
혁명가의 삶역사의 한 획을 그은 지도자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언제나 시대의 흐름 보다 한 발 앞서 나갔던 사람이다.
우리는 혁명가 하면 남아메리카의 전설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와 그의 동지 피텔 카스트로를 떠올린다. 사실 인류사를 따져 봐도 혁명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근현대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의 모택동, 러시아의 레닌, 이 정도다. 혁명가의 삶의 공통점은 사람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시대를 가로막고 있는 절벽과도 같은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끝없는 열정의 소유자였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다. 우리에게 체 게바라는 널리 알려져 있다. 티셔츠나 손수건, 대학노트 표지에도 체 게바라는 있다. 별이 박힌 베레모를 쓰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하늘을 응시하는 듯 강렬한 눈동자. 우리 눈에 익숙한 체의 모습이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동지였던 피텔 카스토로와 쿠바에서 혁명을 완수한 후 쿠바 국립은행장까지 지냈고 이곳에서 안락한 삶이 보장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볼리비아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라틴아메리카 산악지역에서 게릴라전을 수행하다가 정부군에 의해 사살 당하기까지, 그가 걸어왔던 혁명가적 삶을 체 게바라 평전을 읽은 독자라면 경외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체 게바라는 알아도 조선이 낳은 위대한 혁명가 이현상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빨치산의 전설로 나의 머릿속을 맴돌던 이현상이라는 인물이 나의 의식 속에 최초로 들어온 건 아마도 소설 '태백산맥'을 통해서인 것 같다.
이현상과 필자의 고향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근·현대사에 대하여 무지했다. 한마디로 역사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체계적인 지식이 없었다는 것뿐이지, 어렸을 때부터 나는 산사람(내가 어렸을 때 동네사람들은 빨치산을 산사람이라고 불렀다)에 대하여 숱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내가 태어난 곳은 지리산의 막내쯤 되는 황매산 바로 아랫마을이다. <이현상 평전>에도 이현상이 직접 유격대를 이끌고 합천군 삼가면을 습격하여 경찰서를 파괴하고 보급투쟁을 벌였다고 나온다. 지금도 산간지역에 해당 되지만 당시에는 유격대가 출몰할 만큼 첩첩산중이었던 것이다.
삼가면, 가회면, 대병면은 모두가 황매산이 품고 있는 산촌 면(面) 단위 마을들이며, 내가 태어난 마을은 황매산의 북쪽에 있다. 황매산이 품고 있는 마을들의 지형이 마치 도자기의 병목 안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이 일대 마을 들을 합쳐서 병목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황매산은 산청군과 경계이며, 동쪽으로는 덕유산 자락과 맞닿아 있다. 날씨가 맑은 날 산정상인 상봉에 오르면 진주 남강이 보이고, 지리산의 웅장하고 장엄한 산맥들이 아스라이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전쟁 때 11사단 9연대에 의하여 720여명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된 신원면과 20km 정도 떨어져 있다. 나의 큰 어머니는 바로 이곳 신원면에서 시집오신 분이셨다. 큰 어머니로부터 신원면 사건에 대하여 어렸을 때부터 들으면서 자랐다.
이러한 주변 환경 때문에 자연스럽게 산사람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어린 내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산 사람과 고향 동네 사람들 그리고 나의 백부낮에는 경찰, 밤에는 산 사람, 밥을 해서 지게로 짊어지고 산으로 갔다 온 이야기 등등. 그런데 우리 마을 주민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산사람들은 매우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인민군들도 매우 신사적이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 나는 이 산사람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사람이다. 바로 나의 아버지의 형님 되시는 그러니까 백부께서 산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경찰서에서 찾아오곤 했다.
소위 말해서 호적에 빨간 줄이 올라갔던 것이다. 70년대 산사람의 친척이면 인간에 우선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이런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지만, 내 어린 시절에는 소위 말해 연좌제라는 게 있던 시절이었다. 내가 최초로 의식과 존재에 대한 고민을 했던 때이기도 했다. 나보다 10년 연배가 높은 사촌 형님은 더 큰 고민을 했을 것이다.
나는 이현상 평전을 읽어 내려가면서 혹시 백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했지만 허사였다. 지리산 어느 골짜기에서 이름도 남기지 않고 죽어간 수많은 전사들. 이루지 못한 그들의 이상은 그리고 꿈은 부토 속에 함께 있을 것이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흙으로 돌아간 육신은 저 지리산의 풀과 나무에게는 영양분이 되어 여름이면 저렇게 푸르고, 가을이면 또 저렇게 붉은 단풍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나의 백부의 영혼도 바로 그들 속에 있을 것이다.
이현상과 체 게바라의 공통점이현상과 체 게바라 모두 산악지역의 전투지휘와 전술에 능한 유격대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의 삶에 진정한 공통점은 삶에 대한 철저함, 동료 대원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존경, 혁명은 자기로부터 그리고 자신이 속한 조직 속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보편적 사실을 실천하며 투쟁했다는 점이다.
체 게바라 평전에서도 보듯이 그는 완벽에 가까울 만큼 철저한 삶을 살았다. 그 자신이 의사였고 또한 자신도 천식을 앓고 있는 환자이면서도 동료 게릴라의 상처와 아픔을 먼저 생각하며 동료들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이현상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빨치산 동지들 어느 누구에게도 반말을 사용하지 않고 존대어를 썼다고 한다. 인간 평등을 몸소 실천함으로서 모범을 보였다.
남과 북의 이념적 허구성 깨어져야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의해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은 자신에게 관대하고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객관적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관적인 사실만이 있을 뿐이다. 흔히 우리는 주관을 객관화하는 우를 종종 범하곤 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이념은 목숨보다 더 상위의 가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념이란 것 자체를 절대화하고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전락할 때 이것은 저 시궁창의 구린내보다도 더 지저분하고 추악해지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자존심이란 목숨과도 같은 등가의 가치로 통용될 수가 있다. 사람 사는 세상만의 특성이다.
생각의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생각하지 않고 상상하지 않는 인간의 두뇌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인간에게 무한한 상상력의 자유가 제한 없이 인정될 때 이것이 바로 사람사는 평범한 세상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남의 생각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했다.
필자와 동시대에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면 세상에서 가장 철천지 원수로 규정한 것은 바로 내 아버지의 형제들, 그리고 그 아들들이 살고 있는 북이었다. 남과 북이 마찬가지였겠지만 오로지 정권에게 충복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국민교육”을 받았던 셈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이 인간을 규율하게 되고 또 목적이 될 때의 위험성이란 우리는 역사를 통해 실증적으로 겪어 보았다. 나찌즘이나, 파시즘이나, 맑시즘이나 모든 주의는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하며, 사람의 행복을 침해하는 그 어떤 수단이나 방법으로 용인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남과 북의 생각의 차이 즉, 제도와 사회구조 그리고 생활방식 그 모든 차이를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차이를 인정하지 못해서 우리는 60년 이상 한 핏줄끼리 서로가 총부리를 겨누고, 철천지 원수로 지내왔던 것이다.
필자는 이현상 평전을 읽으면서 우리 민족이 처했던 독특한 시대적 상황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해방공간,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3년 동안 혼란의 시기는 분단 이후 60년 간 남과 북의 총체적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의 시기에 이현상은 지리산 골짜기 빗점골에서 사살되기 전까지 민족의 이익을 위해 투쟁했던 것이다. 이현상은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또한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이현상 부대는 전투중에 생포한 경찰이나 국군의 포로에 대하여 절대로 즉석해서 처형하는 일이 없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혁명의 대열에 따를 것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일장 훈시후에 돌려보내줘서 경찰들로부터도 상당한 호감을 샀다. 그는 그만큼 자신과 다른 생각(思想)에 대하여 관대했던 것이다. 차이를 인정한 것이다.
필자는 지리산 천왕봉을 학생 때 올랐다. 남원에서 출발하여 천왕봉까지 2박3일간의 종주였다. 그때는 막연하게 지리산 골짜기를 바라다봤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나무, 그 고사목 지대를 지나면서도 나는 산사람들의 역사에 대하여 깊이 있는 성찰을 하지 못했다.
이현상 평전을 읽고 나서 필자는 다시 한번 지리산에 오르고 싶다는 욕망이 간절해진다. 지리산의 흙 한 줌, 풀 한포기, 무수한 잡목들과 교감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