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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어릴 때는 참 많이도 놀러다녔던 기억이다. 자가용 차도 없던 때였는데, 어린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 그렇게 놀러다녔는지 돌아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승용차를 사게 되자 물 만난 고기처럼 나들이하러 다녔다. 이른 봄이면 냉이를 캐러 밭둑을 헤맸고, 여름이면 물을 찾아 계곡으로 바다로 돌아다녔다. 가을이면 산을 찾았고 겨울에도 춥다고 집에만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애들 공부가 우선이지, 여행은 그다음

앞산과 뒷산 사이의 좁다란 골짜기에 탑이 있습니다.
 앞산과 뒷산 사이의 좁다란 골짜기에 탑이 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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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성장을 해서 머리가 굵어지자 차츰차츰 밖으로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애들은 중학생만 되자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했다. 같이 어디 가자고 하면 "아버지·어머니만 다녀오세요, 우린 집에 있을게요"라는 소리가 입에 달려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괜찮았다. 중학생짜리가 뭐라 그래 봤자 말발이 있나.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어머니·아버지의 강권에 등 떠밀려 친척집에도 다녔고, 가족 행사에도 참석했다. 하지만 큰 애가 고등학생이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모든 걸 학교 위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가 우선이었고 가족 여행은 그다음이었다. 그렇게 애들 공부 때문에 변변한 여행 한 번 못하고 몇 년을 흘려보냈다.

이제는 아이들이 다 자라서 직장과 대학에 다니니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청년들에게는 또 다른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지 여전히 우리는 같이 할 시간이 많지가 않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우리만의 여행을 간간이 떠나곤 한다. 고향에 내려갈 일이 있으면 시간을 잠깐 내서라도 근처에 있는 볼거리들을 둘러본다.

몇 년 전 가을에도 우리 가족은 가을 여행을 다녀왔다. 고향 나들이를 하는 김에 근처에 있는 유적지에도 들렀다. 1시간 정도 시간을 내 둘러봤지만, 1박 2일 여행과 견줘봐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알차고, 유용했다.

고향 오가는 길에 근처나 둘러볼까

도시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이 부모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왔나 봅니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이 부모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왔나 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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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상주 나들목으로 빠져나오면 벌써 고향집에 다 온 것만 같은 마음이 든다. 상주에서도 1시간을 더 달려야 고향집에 닿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마치 고향집에 온 듯한 마음은 푸근해진다. 창 밖에는 완연한 가을 색을 입은 들과 산이 계속 지나쳐간다. 이번에는 또 어디를 구경할까 궁리를 하는데 남편이 말한다.

"석탑리에 탑이 있는데 보러 갈까? 그 석탑은 전에 봤던 경남 산청의 구형왕릉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 돌무더기처럼 보이지만 우리나라에 그런 탑은 아마 또 없을걸?"

몇 년 전 봄에 경남 산청에 있는 구형왕릉을 보고 왔는데, 석탑리에 있는 탑이 그 구형왕릉을 닮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석탑리라면 시댁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동네인데다가 가락국의 마지막 왕을 모신 구형왕릉과 닮은 탑이라니 구미가 동했다. 

석탑이 있는 경북 의성군 안평면의 주산물은 마늘과 고추. 우리가 내려갔었던 11월 초순 무렵은 마늘을 심느라 한창 바쁜 때였다. 그래서 논과 밭에는 마늘을 심는지 사람들이 더러 보였고 동네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돌을 매끈하게 깍아 세운 탑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돌을 가져다가 쌓아올린 탑입니다.
 돌을 매끈하게 깍아 세운 탑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돌을 가져다가 쌓아올린 탑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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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도 탑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길에서 마주친 어르신께 여쭤봤다.

"저 어르신, 탑을 보러 왔는데 어디로 가면 되니껴?"
"아, 탑 말이니껴? 요 우로 쭉 올라가마 있니더."
"차 돌릴 데도 있니껴?"
"그게 가마 차 돌릴 데 있니더. 전봇대 옆에 널찍하게 있니더."

어르신과 남편은 북부 경북의 '니껴형' 말씨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안동·의성·예천·영양·봉화 등지의 북부 경북 말씨는 말이 바쁘지 않고 뾰족하지도 않다. '그러니~이~껴'라고 '~이~'를 길게 빼며 강세를 준다. 리듬감과 넉넉함, 그리고 여운이 북부 경북 지방 말씨에 담겨있다.

어르신, 탑이 어데 있니껴?

누가 쌓은 걸까요? 석탑리 근처의 바위들은 다 이랬습니다.
 누가 쌓은 걸까요? 석탑리 근처의 바위들은 다 이랬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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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어르신의 말대로 좁은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널찍한 빈 터가 나왔고 그리고 탑이 있었다.

석탑리의 탑을 보니 이게 과연 탑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탑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런 탑의 모습이 아니었다. 커다랗고 네모반듯한 돌을 층층이 쌓아올린 게 탑이라면 석탑리의 탑은 생긴 모양새부터가 특이했다. 마치 돌무더기처럼 보였다. 

경북 북부 지방에는 벽돌을 구워서 쌓아올린 전탑이 많은데 석탑리 탑의 모양새는 전탑과 비슷했지만 돌로 만들었다는 게 달랐다. 안내판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탑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근처에 절이 있었던 흔적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이런 큰 탑이 있다니 놀라웠다.

두 손을 살포시 가슴에 모으고 우리를 바라보는 이름모를 부처님.
 두 손을 살포시 가슴에 모으고 우리를 바라보는 이름모를 부처님.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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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사방을 둘러보며 살펴봤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탑이 돌을 네모지게 깎아서 세운 것이라면 이 돌탑은 분명 색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마치 주변에 있는 돌들을 가져와서 쌓은 듯이 돌에는 인공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허물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면 규모가 대단했을 것 같았다.

탑의 네 면마다 한가운데에 감실이 있었다. 원래는 감실마다 한 분씩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두 분의 부처님만 남아 있었다. 그 두 부처님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지를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노출이 되어서인지 마모가 되어서 둥그런 얼굴 형상만 남아 있었다. 

자연이 쌓은 탑을 사람이 베꼈나 봐

돌에도 꽃이 피나 봅니다. 돌이끼가 천 년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돌에도 꽃이 피나 봅니다. 돌이끼가 천 년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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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곱게 앞가슴에 모은 부처님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얼굴이 펀펀해져 버렸다. 눈도 없고 코도 없고 귀도 없다. 부처님은 천 년의 세월 동안 비바람을 맞으면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돌에는 이끼가 꽃처럼 피어 있었고 돌무더기 위로 가을 햇살이 반짝였다. 

가을 해는 뭐가 그리 바쁜지 산그늘이 그새 산 밑으로 한참이나 내려와 있었다. 근처 밭에서는 마늘을 심느라 일손이 바쁘다. 외지에 나가 살고 있는 아들네가 부모님을 도와드리러 온 건지 밭에는 어린아이들과 젊은이의 모습도 보였다. 두 손을 곱게 앞가슴에 모은 채 앞으로의 천 년도 우리 곁에 있을 부처님은 조용히 마늘 심는 가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큰길로 나오면서 석탑리를 돌아보았다. 동네 들머리에는 큰 바위들이 층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바위들을 다시 보니 그게 바로 탑이었다. 일부러 쌓아올린 듯 바위들은 모두 층층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석탑리 탑은 그 바위들을 닮아 있었다. 일부러 쌓아올리지는 않았지만 마치 탑처럼 보이는 바위들 속에 다 탑이 보였다.

사람이 일부러 쌓아올린 것처럼 생긴 근처의 바위들. 그러고 보니 이게 바로 탑이었네요.
 사람이 일부러 쌓아올린 것처럼 생긴 근처의 바위들. 그러고 보니 이게 바로 탑이었네요.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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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여행, #돌탑, #석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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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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