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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눈사람을 만들면서 유년의 시절, 눈이 오면 눈을 치우다말고 눈사람을 만들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눈사람을 만들다 보면 온 몸에 땀이 흐르고, 시리던 손에서도 열이 확확 올라왔습니다. 내 몸보다도 큰 눈사람을 만들어놓고 대견하게 바라보던 유년의 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들을 위해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눈사람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길 바라면서 말이죠.
 
아이들에게 눈사람을 만들던 기억, 겨울에 눈이 내리면 눈썰매를 만들어 타던 기억들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저는 잘 모릅니다. 어쩌면 나는 잊어버린 기억들을 아이들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방패연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대나무살을 깎아 신문지로 만드는 꼬리연 정도는 쉽게 만들었지만 한지로 태극무늬까지 넣어서 만드는 방패연은 만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꼬리를 길게 달지 않아도 방패처럼 하늘에 두둥실 바람을 타고 떠 있는 방패연을 날리는 아이들은 어께가 으쓱하기 마련이지요.
 
아버지에게 방패연을 만들어달라고 떼를 썻습니다. 그냥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님은 대나무살을 낫으로 정성껏 다듬고 계셨고, 어머니는 방패연에 쓸 한지를 재단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미 만들어 놓은 외발썰매를 내어주시며 "옛다, 논에 가서 친구들 하고 놀다오거라. 연 다 만들어 놓을 테니"하셨습니다.
 
집 근처 논에 달려가 아이들과 썰매를 신나게 타고 있는데 맑은 하늘에 방패연이 둥실 떠오른가 싶더니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와, 방패연이다! 누구건데 저렇게 기똥차게 나냐?"
 
 
아이들과 방패연을 쳐다보기도 하며 썰매를 타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 방패연 다 만들었어요?"
"뒷동산에 가봐라. 아버지가 날리고 있을 거다."
 
나는 썰매를 마당에 던져버리고는 숨을 헐떡거리며 뒷동산에 올라갔습니다. 그 곳에는 아버지가 방패연을 날리고 계셨습니다.
 
"와, 아빠, 제가 날려볼게요."
 
바람을 탄 방패연은 유유자적 하늘을 날았습니다. 아마도 저 건너마을에서도 이 연을 볼 것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겨울과 관련된 추억 하나입니다. 연을 날리고, 구슬치기를 하고, 썰매를 타느라 터진 손은 여물 틈이 없었고 용의검사를 할 때면 까마귀손이라 놀림을 받을까 늘 긴장을 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언제부턴가 눈이 와도 눈이 오나보다 했고, 겨울이 되어도 눈구경을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겨울이면 늘 쌓여 있던 눈이 도시에서는 못 살겠다고 이사를 한 까닭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제법 눈처럼 온 이번 첫눈도, 첫눈에 이어 내린 함박눈도 반갑기만 합니다. 따스한 햇살에 눈이 녹아가는 것을 보니 눈이 제법 잘 뭉쳐질 것 같습니다.
 
점심을 먹고 직장동료와 의기투합하여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아마 그도 유년시절, 눈사람을 만들던 추억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눈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 있었습니다. 앙상한 국수나무가지에 남아 있던 열매에도 남아 있었고, 하얀 눈위에 정체불명(고양이로 추정됨)의 동물 발자욱도 남아 있었습니다. 늘푸른 나무 향나무도 하얀 눈으로 장식을 했고, 붉은 산수유도 하얀 눈으로 단장을 했습니다. 떨어진 단풍은 겨울 속에 남아 있는 가을처럼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있습니다.
 
하얀 눈과 함께 어우러진 풍광들 하나하나가 신비롭기만 합니다. 하늘이 준 선물, 잠시나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세상사에 찌들었던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작은 선물인 것 같습니다.
 
올해는 11월에 눈다운 눈을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힘들어하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내려주어 "와! 눈이다!" 늘 반길 수 있을 만큼만 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흔하지도 않게 섭섭하지도 않게 말입니다.
 

태그:#첫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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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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