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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17일) 점심으로 시켜 먹은 미니 족발입니다. 배달은 남편이 맡았습니다. 마침 집 앞에 4분 거리로 재래시장에 있고, 그 안에 미니 족발이며 전거리를 파는 선술집이 있어서 가끔 애용하지요.

 

미니 족발 3천원이면 넉넉합니다. 거기에 보태서 서울 막걸리 한 병을 사다 달라고 해서 기분 좋게 마시던 중이었죠. 멤버는 딸아이와 저 둘이었습니다.

 

'배달의 과업'을 완수한 남편은 어제 새벽 4시까지 회식이 이어진 터라 임무 완성 후 점심은 거르고 그냥 뻗어 기절한 마당이었고, 족발로 딸아이와 저(저는 막걸리 한 잔도 곁들여)만 재방송 <왕과 나>를 보면서 오붓한 시간을 갖던 차였는데….


<왕과 나>에서 그 끈끈한 부자의 정을 이어 나가는 판내시부사와 처선의 연기 장면을 보노라니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들지 뭡니까? 해서 비록 '내시 부자'는 아니지만 '모녀의 정'을 확인하고자 한 쪽에서 족발 뜯느라 여념이 없는 딸아이를 불러봤습니다.

 

"안나야-아, 이리 와 봐! 엄마, 사랑하지? 우우우우웅(쪽!) 엄마도 너 사랑해. 우리 많이 많이 사랑하자!"

 

이렇게 거침없이 애정표현을 하려는 찰나, 갑자기 "아이, 싫어" 하면서 저를 싹 피하는 딸아이를 보자니 설 마신 막걸리 한 잔 술이 퍼뜩 깨더라구요.

 

"왜 그래? 와서 엄마 좀 꼭 안아주지 않을래? 우리도 저 사람들처럼 많이 사랑하고 약속도 지키고 그러자아" 하면서 쪼옥 뽀뽀를 하려던 차였거든요?


그때 날아오는 딸아이의 말.

 

"엄마, 입술이 족발 때문에 반짝거려서 드(더)럽단 말야!"

"드, 드(더)럽다구우우우?? 뭐가 드(더)러워? 엄만 안나 엉덩이도 닦아주고 안나 코도 풀어주고 그런 것 다 하는데 안난 엄마가 더러워?"

"…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럼 엄마는 안나가 먹던 것 먹으라면 안 드(더)러워?"
"그래, 엄만 하나도 안 그래. 안나 먹던 것 먹어도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도 이제는 눈치코치 볼 줄 아는 나이인지라 이렇게 들이대면서 "왜 엄마가 드(더)럽냐?"면서 따지는 제 안색을 살피더니 한 발 물러섭니다.

 

한참을 도로록 도로록 머리를 굴리더니 "엄마가 지난번에 입술 대고 뽀뽀하는 것은 안 좋은 것이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느냐?"는 얘기에서부터 뭐라고 뭐라고 이유를 대며 나름대로 논리(?)를 세우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 하고 한편 가슴이 싸아해지면서 '나는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랬거든요?

어느 때인가부터, 글쎄요, 아마 안나 나이 즈음 예닐곱 정도 쯤이었겠죠. 엄마가 비벼주신 밥숟가락은 어쩐지 내키지 않아서 따로 두고 새것을 가져다 먹었던 기억입니다. 또 물도 누가 마셨던 기미기 보이면 제가 마실 것은 새로 떠다가 먹을 정도로 그렇게 어설픈 깔끔을 떨었지요. 그렇게 주욱 자라다가 싹 변한 것이 연애란 것을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어느샌가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남자 친구랑(물론 남편도 포함입니다)은 같이 비빔냉면을 섞어 먹거나 국물 요리를 시켜 같이 떠먹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했다는 거죠. 이 사실을 울 엄니가 아신다면 얼마나 섭섭해 하실까 생각하니 공연히 죄송해집니다.


또 한편 내 자식이 이다음에 저 좋은 사람을 만나 국수를 나눠 먹거나 숟가락 나눠 쓰는 일을 '드(더)럽다'는 말 없이 아무렇지 않게 한다면 제 기분은 어떨지도 궁금해집니다. 지금은 엄마 먹던 것이 드(더)럽다는 표현을 거침없이 하며 거부하던 제 딸아이도 커서 엄마가 되면 제 자식이 먹던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게 되겠지요? 그 모습에 저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요? 아마도 조금은 섭섭하다가 지금 오늘의 일과 비교하면서 '나도 그랬었지' 하며 슬쩍 웃음을 짓게 될까요? 아니면 못내 서운할까요?


문득 알쏭달쏭해집니다. 도대체 '드(더)럽고 안 드(더)럽고'의 기준은 대체 뭔가요? 사랑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요? 그래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하는 것일까요?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blog.empas.com/happym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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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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