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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삼성특검법'에 다시 제동이 걸렸다.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는 어제(22일) 삼성비자금 특검법을 처리하여 전체회의로 넘겼다. 물론 대통합민주신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의 합의를 통해서였다.

 

세 당 의원들은 법안 절충 과정에서 신당 등이 강력히 요구한 삼성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한나라당이 주장한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위 권력층에 대한 로비자금을 수사 대상에 모두 포함시키기로 했다. 또 한나라당이 주장한 ‘당선축하금’이란 표현은 법률안 제안 이유에 넣기로 했다.

 

법사위 법안심사소위가 예상을 뒤엎고 특검법에 대해 전격적인 합의를 본 것은, 대선을 앞둔 시기의 민감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특검'을 회피하는 인상을 줄 경우, 여론의 역풍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부담 때문에 각 정당간의 합의가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입장번복, 납득하기 어렵다

 

이제 특검법안이 법사위 전체회의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그동안 제기된 삼성관련 의혹들이 세상에 실체를 드러낼 수 있게 된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도부가 즉각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삼성그룹 불법 증여·상속 부분은 재판 중이고, 사인 간의 문제이므로 공직 비리를 다루는 특검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게 당론”이라고 밝혔다.

 

또 “로비의혹 대상에 언론계·학계 인사를 포함시킨 것은 특검 취지에 맞지 않으며, 수사 기간도 축소해야 한다”며, "이런 부분이 시정되지 못한다면 전체회의 통과가 힘들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의 입장번복인 셈이다. 합의통과된 안에 비해 축소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소위에서 합의가 이루어져 통과된 법안을 갖고 한나라당 지도부가 뒤늦게 수정요구를 하고 나서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그리고 내용면에서도 한나라당의 수정요구를 납득하기 어렵다.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를 위한 불법 증여·상속 의혹 부분에 대해서는 재판이 진행중인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불법 상속과 관련된 증거조작, 증거인멸교사 등의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이다. 따라서 법리적 판단에 따라 그 대상에 대한 조정은 가능하겠지만, 이 부분을 수사대상에서 송두리째 들어내자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리고 언론계나 학계에 대한 로비의혹은 제외하자는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언론계와 학계에 삼성으로부터 검은 돈을 받고 그 이익을 대변해온 '삼성장학생'들이 있다면 그 죄질 또한 공직자들보다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 차제에 부도덕한 '삼성장학생'들의 형성과정도 밝혀내야 한다.

 

또한 이번 특검수사가 갖는 광범위한 대상을 감안할 때, 그것을 감당할만한 일정한 기간과 인력의 확보는 불가피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변죽만 울리고 마는 특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이들 내용을 이유로 법사위 처리에 제동을 거는 것은 옳지 못하다. 소위를 통과했다 해도 문제점이 발견되면 재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 지도부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의 원점 재검토이다.

 

한나라당이 이제와서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법안 처리에 반대하고 나선다면, 결국 '삼성특검'을 회피하려는 모습밖에 되지 않는다.

 

청와대도 거부권 발언 자제해야

 

한나라당의 원점 재검토 요구가 국회 통과를 위한 1차 고비라면,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도 또 하나의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의 태도이다.

 

벌써부터 언론들은 특검법에 대한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번 특검법에 대해 수사대상 등의 문제를 들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특히 "특검법과 함께 공직비리수사처법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거부권 행사가 필요한 지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청와대의 이러한 요구가 무시된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더욱이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을 겨냥해 제기했던 '당선축하금'까지 사실상의 수사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청와대에 대한 삼성의 로비가능성 부분은 덮어버리려 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국회가 '삼성특검법'을 어렵게 통과시킨다 해도,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삼성 특검은 표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가 역사적인 삼성 특검을 무산시킨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삼성특검에 제동을 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여러 불만이 있다하더라도, 차제에 삼성의 문제를 거르고 가야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특검법을 수용하는 것이 옳다.

 

청와대는 오늘중에 특검법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한다. 아직 법안이 확정되어 국회를 통과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청와대로서는 국회에서의 논의결과를 일단 지켜본다는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그럴 상황이라면, 청와대가 다시 '거부권' 가능성을 언급하며 특검 추진에 김을 빼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국회의 특검추진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삼성특검, 이번에 못하면 기약없다

 

삼성은 그동안 무소불위의 경제권력을 휘두르는 우리 사회의 '성역'으로 자리해왔다. 우리 경제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삼성관련 의혹은 언제나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덮고 넘어가는 문제가 되어왔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사회에는 '삼성공화국'이 구축되었고, 삼성에 대한 법적·제도적 통제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 점에서 삼성관련 의혹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특검은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일이 될 수 있다.

 

'삼성특검'은 단지 삼성이라는 특정 재벌의 비리를 밝혀내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삼성그룹과 국가권력기관들의 정경유착 고리를 파헤친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언론계·학계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 부패한 로비와 유착관계가 얼마나 광범하게 형성되어 있는가를 밝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삼성특검'은, 제대로 하기만 한다면,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를 밝혀내는 과정이 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나라를 위해서도, 삼성을 위해서도 이제는 한번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국회 법안심사소위 통과로 삼성특검의 첫 단추는 끼워졌다. 그러나 정치사회적으로 워낙 커다란 파장을 몰고올 사안이기에, 특검을 무산시키려는 역풍 또한 만만치않을 것이다.

 

이번 정기국회 회기내에 특검법이 통과되지 못한다면 삼성특검은 다시 기약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12월 19일 이후에는 권력교체기에 들어가게 되고,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실시된다. 이런 정치일정 속에서 임기말의 17대 국회가 삼성특검을 재론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삼성특검은 12월 대선과도 무관한 문제이다. 특검수사도 대선이 끝난 뒤에야 시작될 것이고, 특정 정파의 유·불리와 관련된 문제도 아니다.

 

따라서 17대 국회는 이번이 아니면 어려워진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이번 회기에 반드시 삼성특검법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삼성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게 하는 성과를 17대 국회의 업적으로 기록하게 되기를 바란다.


태그:#삼성특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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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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