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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바람의 눈썹이 짙어진다.

잠복한 어둠이 모여 있는 관목 덤불 아래

상형문자처럼 찍혀 있는 새의 발자국

 

아하, 새들이 자리를 옮기고 있구나.

 

아직 하늘을 떠나지 못한 새의 붉은 목젖이

지평선에 도열한 억새의 머리 끝에서

길게 타오르고

 

높은 나뭇가지 빈 둥지 속

눈썹이 하얀 계절풍이 겨울을 품고 앉아

이따금씩 깊어진 계절을 흔들고 있다.

 

 

<시작 노트>

 

늦가을에서 초겨울, 마을 뒷산을 오르다 보면 잎 다 떨어진 나무의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까치집들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지금쯤은 다 비어 있으리라 생각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관목 숲 아래 붉은 흙 위에 찍혀있는 새의 발자국들도 더러 눈에 띈다.

 

철새는 따스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그만이지만 이 땅에 붙박혀 사는 텃새는 겨울이 되면 어디에 둥지를 짓고 살아가는 것일까? 이제 자신밖에는 기댈 곳 없는 나는 또 어디에?

 

산을 내려오면서 만나는 저녁 해가 이 땅에 붙박혀 사는 텃새의 여린 목젖처럼 보이고 높은 나뭇가지 위 빈 둥지 속에 어느새 차가운 북서계절풍이 겨울을 품고 앉아 있음을 보게 되는 11월의 어느 날.


#까치집#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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