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 친구는 집이 참 가난했다. 어느 날이던가, 초등학교 선생은 그 친구를 비롯한 몇 몇 아이들에게 밥풀을 좀 가져오라고 했다. 물자가 귀했던 시절, 그 선생은 밥풀로 편지봉투를 붙이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고 황당하기까지 한 선생의 요구였다. 자신의 업무를 위해 아이들에게 밥풀을 가져오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땐 그런 엉뚱한 선생들이 많았다. 

어쨌든 지명된 그 친구와 반 아이들은 다음날 각자 자그마한 봉투를 가져왔다. 저마다 그 봉투에 밥풀을 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반 아이들의 봉투를 차례로 찢던 선생의 얼굴이 그 친구의 봉투를 찢을 때 심하게 일그러졌다. 선생은 그 아이의 이름을 크게 호명하면서 짜증을 냈다. ‘밥풀을 가져오라고 했지 누가 국수를 가져오라고 했어?’ 선생은 이런 호통을 치면서 그 친구가 가져온 봉투를 냅다 교실 바닥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때, 그 어린 친구의 얼굴에 비친 낭패감은 근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양푼이 국수 한 사발이요!
 양푼이 국수 한 사발이요!
ⓒ 김대갑

관련사진보기


남편이 없던 그 친구의 엄마는 시장 바닥에서 허름한 국수장사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친구네 집도 국수가 주식이었다. 적어도 하루에 두 끼 정도는 꼭 국수를 먹는다고 했다. 그나마 하루에 한 끼 정도 먹는 국수도 보리밥이었다. 간혹, 아주 간혹 보리에 쌀이 들어간 밥을 먹는다고 했다. 아주 특별한 날에만.

어느 날, 그 친구가 자신의 집에 놀러가자고 했다. 반 아이들 중에 제일 뒷자리에 앉은 그 친구는 늘 풀이 죽어 있었다. 그에게 말을 건네는 친구들도 거의 없었다. 늘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던 그 친구. 그 친구는 도시락도 잘 싸오지 않았다. 그런 그 친구가 너무 불쌍해서 난 그 친구에게 내 도시락을 내밀며 같이 먹자고 했다. 그 친구는 내가 건네준 도시락을 보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정말 네 도시락이 맛있다면서 흥겹게 먹었다.

그 다음날, 친구는 나에게 자기 집에 놀러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시장에 가서 엄마에게 잠시 들르자고 했다. 친구는 "나에게 너 국수 좋아하니"라고 물어보았고, 난 스스럼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기는 이 세상에서 국수를 가장 싫어한다며, 정말 징그럽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그 친구는 국수가 없으면 당장 먹을 게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노라고 이야기했다.

 분주한 국수집 주방
 분주한 국수집 주방
ⓒ 김대갑

관련사진보기


그 친구의 엄마는 시장의 후미진 골목에서 초라한 좌판을 차려놓고 국수를 팔고 있었다. 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탁자와 한쪽 다리가 찌그러진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손님이래야 한 두 사람. 나이든 어른 두 사람이 양푼이에 푸짐하게 담은 국수를 먹고 있었다. 난 그때 처음 알았다. 어른들이 국수를 저런 그릇에 담아 먹는 것을. 또 그때 처음으로 양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또 알았다. 친구의 엄마가 내 놓은 그 양푼이 국수가 그렇게 맛있는 것을.

참 세월은 유수같이 흐른다. 벌써 엊그제 같은 일이 40년 전의 추억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장구한 세월 속에서 그 친구와는 연락이 끊겼지만 그때 먹었던 양푼이 국수의 추억은 어찌 이리도 생생한지.
 
 양푼이 국수엔 김치가 최고!
 양푼이 국수엔 김치가 최고!
ⓒ 김대갑

관련사진보기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러 면허시험소에 가던 길에 만난 양푼이 국수집. 보통은 1500원이고 곱빼기는 2000원이라는 간판을 보고 내 발길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하였다. 길가 구석진 곳에 허름한 판자로 약간의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는 얇은 비닐을 쳐놓은 곳. 때 묻은 탁자와 의자는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늦은 점심시간이지만 국수 집 안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주로 노인들과 부녀자들이었다. 그들 사이에 끼어 나도 국수를 시켰다. 곧 이어 나오는 국수. 탁자 위에 놓인 양념장과 땡초를 살짝 넣고 휘휘 저은 후에 국물을 우선 맛보았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은근하게 퍼지는 국물의 개운한 맛. 예전에 먹던 그 국물맛과 어찌 그리 유사한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양푼이 국수 맛은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어느새 비어진 양푼이. 백설기처럼 하얀 면발은 어느새 내 위장 속으로 들어가고, 양푼이에는 약간의 붉은 빛을 발하는 국물만이 남아 있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옆 자리에 앉은 초로의 사내가 열심히 국수를 먹고 있다. 젓가락질을 하는 그 사내의 오른 손마디가 제법 굵다. 손마디 사이로 피곤과 노동, 삶의 질곡이 뚝뚝 묻어난다.

양푼이 국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민초의 음식으로 살아 남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함



#양푼이 국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