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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FIFA) 순위 199위(꼴찌)인 '아메리칸 사모아'. 2001년 4월 2002년 한일 월드컵 오세아니아 1차 예선 호주와의 경기에서 31대0으로 지며 A매치 세계 최다 득점차 패배 공인기록을 세운 나라. 축구실력은 세계 최하위이지만 열정만큼은 브라질 못지않다는 평을 받고 있는 나라.


그런데 축구를 사랑하는 아메리칸 사모아 국민들이 요즘 크게 관심을 기울이는 게 또 하나 생겼다. 바로 한국 방송과 한국어다. 전체 인구 6만에 불과한 이 나라에도 이른바 한류바람이 불고 있는 셈이다.


그에 따라 아메리칸 사모아 대학(American Samoa Community College)이 지난해 처음 개설한 '사랑해요, 한국어' 반이 지난 19일 제2기 수료식을 가졌다. 수강생은 모두 25명, 책 낭독(읽기 시험)을 통과한 10명만이 '읽기 수료증'을 받았다. 무려 15명이 중간에 탈락했으니 '읽기 수료증' 받기가 만만치 않았던 셈이다.


'읽기 시험'을 통과한 10명은 카멜라(20세, 여, 유치원 교사-필리피노), 포노(60세, 여, 현지 정부 공무원-아메리칸 사모아), 애니(50세, 여, 사모아대학 사무원-아메리칸 사모아), 길다(45세, 여, 여행사 사장-필리피노), 챙(40세, 남, 공인회계사-중국인), 루비(35세, 여, 회사원-필리피노), 페이(55세, 여, 자영업-서 사모아), 낸시(36세, 여, VJ 리포터-서 사모아), 노엘(17세)과 아이렌(18세) 등이다. 이중 고등학생인 노엘과 아이렌은 길다씨의 딸이다. 나이, 직업, 민족이 정말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카멜라의 경우 올해 초 1기반 중반부터 합류한 경우다. 그는 1기 때는 읽지도 못했다. 하지만 2기까지 수업을 받으며 마침내 수료증을 받았다. 포노는 매일 항공예약일을 하며 힘들게 수업을 했다. 그는 "하루 종일 항공예약으로 전화기를 놓을 틈 없이 일한 후 7시에 바로 한국어 수업이 시작돼 큰소리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 중에 너무 배가 고프다"고 말할 정도로 수업에 열의를 보였다.


떨어진 사람들도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반니(25세, 여, 주부, 아메리칸 사모아)는 한국에 근무하는 남편(미 육군)을 만나러 다음 달에 한국에 간다. 그 때 깜짝 놀라게 해줄 목적으로 한국어를 배웠던 것. "아들의 감기 때문에 결강이 많아서…"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외 읽기 시험을 놓친 대부분 학생들은 가족들이 반드시 함께 저녁 식사를 해야 하는 경우, 교회 수요예배 등 이유였다.


10일 만에 한글 읽은 사람들, 그 때 감격이란...


필자는 지난해부터 자원봉사로 강의를 맡았다. 로스앤젤레스 소재 '권마태 한글학교' 교사연수교육에 참가한 필자는 '권마태 한글교재'를 갖고 수업에 들어갔다.


당시 수업생들은 ㄱ, ㄴ도 모르는 완전 초보상태였다. 작년에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난감했다. 그러나 올해는 첫날부터 자신 있게 '권마태 한글교재'를 크게 확대한 포스터를 '사랑해요, 한국어' 배너 밑 칠판에 붙였다. 'ㄱ, ㄴ, ㄷ'이 아니라 'ㄱ ㅋ, ㄷ ㅌ, ㅂ ㅍ, ㅈ ㅊ, ㄴ ㅁ, ㅇ ㅎ, ㄹ ㅅ' 을 '그 크, 드 트, 브 프, 즈 츠, 느 므, 으 흐, 르 스'로 읽게 하고, 'ㅏ, ㅑ, ㅓ, ㅕ' 를 'ㅑ-ㅏ, ㅕ-ㅓ, ㅛ-ㅗ, ㅠ-ㅜ, ㅡ-ㅣ'로 읽게 했다.


특히 'ㅑ---'를 계속 발음하고 있으면 자동으로 'ㅏ'로 끝나게 되는 것을 필자 자신도 배우면서 일깨워 주었다. "읽을 수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필기체 글씨를 반복하고 읽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 둘 적응하기 시작하더니 9-10일째 되는 날 지시봉을 갖다 대기만 하면 한글을 줄줄 읽기 시작했다. 한국판 일간지 신문을 한부씩 나누어 주었더니 아직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웃으면서 줄줄 읽었다.


한글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외국인들이 불과 10일 만에 한글을 읽게 된 것이다. 그 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을 얻었다.


그 때 학생들에게 왜 한국어를 배우느냐고 물어봤다. 최고 점수를 받은 카멜라양은 자신이 가르치는 유치원에 한국 어린이들이 많아서 한국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한국 문화를 쉽게 더 접하고 싶다고 바람을 덧붙였다.


최고령 포노씨는 한국에서 군속으로 근무중인 아들을 보기 위해 내년 한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방송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경치를 익히기 위해 한글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챙씨는 자영업을 하는 한국인 5개 업소의 세무보고를 맡고 있다. 그는 "서류를 분류하는 것은 물론, 대화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 외 다양한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할 목적으로 한국어를 배운다고 털어놓았다.


학생들 수준이 늘면서 필자를 놀라게 할 만한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한 학생은 먹는 배, 타는 배, 사람이나 동물의 배가 어떻게 다른지 질문하는 가 하면, 어떤 학생은 먹는 밤과 낮의 반대말인 밤을 어떻게 각각 달리 읽어야 하는지 물었다. 두 개 밤을 잘 구분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식품점에서 까먹는 군밤을 사서 나눠먹기도 했다.


한편, 로스앤젤레스 소재 '권마태 한글학교'(교장 권마태 목사)에서 교재 30세트(90권)와 교사용 DVD, 학생용 DVD(영어 해설판) 한 세트씩을 아메리칸 사모아대학에 기증하여 '사랑해요, 한국어'반에서 교재로 사용하도록 했다. 앞으로 '사랑해요, 한국어' 제2기반은 말하기, 쓰기 강의를 계속하고, 2008년 1월초 제3기반 강의를 시작할 계획이다.


'사랑해요, 한국어'반 소식은 현지 일간지 <Samoa News>, <Pago Pago Times], < Malama-TV> 등 신문, 방송을 통하여 지역 톱뉴스로 보도되었다.


태그:#'사랑해요,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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