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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9회에 이어)

 

경전을 한 쪽 한 쪽 읽어나가면서 지난날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어머니 모시는 것을 가지고 자꾸 미안해 하시기에 그러지 말라고 사 드린 책들을 내가 먼저 읽으면서 어머니의 존재를 다시 새겨보게 되었던 것이다.

 

‘아비나 어미가 홀로되어 외딴 방에서 혼자 있게 되면 마치 남의 늙은이가 객으로 와서 의탁하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여 방 한번 치워 드리는 일 없고 살펴보거나 문안하는 일도 없네’라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큰형님 집에서 어머니가 외딴방에 종일 누워 생활할 때는 단 한 번도 일부러 찾아 뵌 적이 없었다. 서울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하룻밤 신세를 져야 될 때만 형님네 들러서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는 정도였다.

 

한 번 이야기를 꺼내면 끝이 없고 냄새가 진동하는 어머니 방에 오래 머무르려 하지도 않았다. 작은형님이 식사 때마다 어머니 틀니를 받아내서 그릇에 담아 칫솔로 닦을 때는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께름칙하여 외면하곤 했었다.

 

‘처자를 먹일 때는 체면 불구하고 온갖 비루한 짓도 다 하면서… (중간 줄임)… 아내나 첩과의 약속은 꼭꼭 지키면서도 어버이 부탁과 약속은 쉽게 저버린다’는 곳을 읽으면서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림책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를 어머니랑 같이 보았다. 그림책의 힘은 역시 그림에 있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어머니는 그림 하나하나를 풀이까지 해 가며 책을 읽었다.

 

 

“이거는 보듬꼬 안자서 젖 멕이는기네. 젖도 좋다.”

“아만 보듬꼬 젖 멕일 쌔가 어딘노. 등에 업고 쇠죽 끄리믄서 겨드랑 미트로 돌려서 젖 물리고 쇠죽 뒤직이믄 김이 올라와서 숨은 막히고 아는 울고 아이고오. 오줌이라도 싸믄 그것 치울쌔도 엄씨 밥 해야지.”

 

나는 책장을 또 넘긴다. 어머니 이야기는 또 몇 십 년을 건넌다.

 

“아가 그다내 커서 목욕시키네. 너거 큰 누야 일본서 놓고 목욕시키다가 조선에 나옹께 목욕이 오댄노. 걸레로 오줌 딱을 쌔도 없었다.”

 

애를 배서 낳기까지 과정이 담긴 부분을 읽으면서 한 서린 추억담을 내 놓으셨다.

 

“아를 배믄 냄새도 맡기 싫던 고기도 갑자기 먹고 싶고 따신데 자꾸 눕고 싶고 몸이 무거버서 마루에도 몬 올라서서 기어서 오르내리고. 아이고오. 그래도 삼베 끈으로 배를 둘둘 묶어각꼬 꼴 베고 나무하고 앙그랬나.”

 

“미역국은커녕 무시국이라도 한 바내기 먹고 싶었지만 누가 끄리주노. 호박잎 국밥이 먹고 싶었는데 간네띠기가 한 그릇 각꼬 온 걸 너거 아부지가 홀딱 닦아 먹어삐리고 나는 팥잎 국밥 건더기 건져 먹었다가 가슴이 쪼개지는 거 가태서 숨도 못쉬고… 아이고오.”

 

나는 경전의 주요한 대목들을 컴퓨터에 입력해서 어머니가 읽기 좋게 편집을 했다. 글씨도 키워서 인쇄를 했는데 어머니 사진을 넣었더니 제법 그럴 듯 했다. 의미 전달이 쉽지 않은 고어체는 요즘말로 풀어썼다.

 

어머니는 재미있게 책을 보시다가 갑자기 자기 설움에 겨웠는지 책을 집어 던져버리셨다.

 

“이렁거는 젊은 것들이 좀 봐야지. 이걸 내가 보믄 뭐 어짜락꼬? 찌랄하고 할끼 업승께! 이렁거나 일그락카고 있어!”

 

어머니를 ‘의식화’시키려다 도리어 화만 돋운 셈이다.

 

(31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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