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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 옥스퍼드 출신 인류학자 콜린 턴불이 쓴 <숲 사람들>을 읽었다. 무자비하게 진행되는 개발 열풍에 휘둘려 대다수 소수 민족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상황에서도 아직도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중앙아프리카 키 작은 원시 부족 피그미, 그 중에서도 콩고의 이투리 숲을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밤부티 피그미 ‘형제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었다.

 

내가 피그미 ‘부족민’이 아니라 피그미 ‘형제들’이라고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길어야 일년 정도, 그것도 여러 명의 보조 인력과 함께 별도의 숙소에 머무르면서 원주민들의 삶을 관찰하고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현지연구를 진행하는 대부분의 인류학자들과는 달리, 콜린 턴불은 달랑 혼자 몸으로 숲 속 깊은 곳 피그미들의 터전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오두막을 짓고 3년 동안 함께 먹고 사냥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영화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나 <반지의 제왕> 등에서 엿보이듯 서구인들은 울창한 숲을 악령의 세계와 동일시하곤 한다. 프랑스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도 아프리카 적도 지방의 숲을 다녀오고는, “나는 내 모든 감각과 내 피부의 모든 모공을 다해 처녀림을, 그 현기증 나는 깊이를, 그 숨막히는 습기를, 그 침묵을 깨는 돌연하고 무시무시한 소리들을 체험해보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그는 “나는 거기서 지옥의 한 모습을 보았다”라고까지 단언하고 있으니, 숲, 특히 울창한 원시림에서 서구인들이 느끼는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중앙아프리카의 울창한 열대우림 속으로 들어가, 몇 달이 아닌 3년씩이나 피그미들과 함께 똑같은 방식으로 생활을 한 턴불의 용기는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이 책에서 피그미 부족민들을 스스럼없이 ‘형제’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러한 용기에 힘입은 것이다.

 

턴불이 함께 생활했던 피그미 부족민들도 그의 용기를 알아보고, 그를 낯선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 아니라 마치 자기네 부족의 일원인 것처럼 대우했다. 자기네 식으로 이름을 새로 지어 불러주고 이방인에게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 자신들의 전통 의례에도 참석을 허용하는 등 낯선 세계에서 온 그를 마치 같은 식구처럼 여긴 것이다.

 

2.

 

이 책 <숲 사람들>이 아주 특별한 인류학 책으로 평가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즉, 대부분의 다른 인류학 책에서는 현지 원주민들이 단지 연구대상으로서 한 묶음으로 취급되고 있기에 이름도 개성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 반면, 이 책에서는 지은이가 현지 원주민들과 한 가족이 되어 오랫동안 함께 생활했기에 그들이 켄게, 마시시, 모케, 세푸 등 각자의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고 또한 놀랄 만큼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1961년 이 책이 처음 출간됐을 때, 저명한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여사가 “글이 어찌나 유려하게 흘러가는지, 이 책이 치밀한 과학적 연구 성과물이라는 사실조차 한동안 잊어버린 채 빠져들고 말았다”고 경탄한 것처럼, 이 책은 마치 한 편의 모험 소설이나 어드벤처 영화처럼 낯설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사람’을 탐구하는 인류학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학술 서적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대중 독자들의 교양 서적으로서도 주목을 받고 있어서 출간 이후 지금까지도 아마존 등 대형서점의 스테디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이 책이 단순한 모험담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밤부티 피그미 부족 구성원 전체가 동원되는 사냥의 진행 과정, 주변 흑인 마을에 잠시 머무르는 생활과 숲 속에서 떠돌이 캠프 생활을 번갈아 하는 거주 방식에 숨어 있는 경제적 동기, 연중 열리는 여러 가지 전통 의례와 축제의 저변에 깔려 있는 사상과 철학, 누이를 서로 교환하는 독특한 결혼 제도가 생겨난 배경, 추장도 법관도 지도자도 중재자도 없는 상황에서 갈등과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특유의 방식 등 밤부티 피그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풍부한 설명과 예리한 분석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때 이 책의 지은이 턴불은 모험가가 아니라 인류학자로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새롭게 접하게 되는 밤부티 피그미 부족의 삶과 문화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평균 신장이 140cm에 불과하고 숲 속에서 원시적인 수렵채집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피그미 부족은 한때 인간이 아니라 유인원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오늘날에 와서 그런 오해는 사라졌지만, 다른 흑인 부족의 노예로 살아가는 원시인쯤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직도 일반적이다. 그러니 그런 그들이 나름대로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특히, 오랜 옛날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 축제들을 거행하면서 보여주는 이들의 문화 감각은 상당히 사려 깊고 합리적이며 또한 유연한 모습이어서, 전통 문화라 하면 그것이 이치에 닿든 안 닿든 간에 또 그것이 사람을 위하는 것이든 아니든 간에 예전부터 내려온 낡은 틀과 진부한 내용만을 고집하는 우리 현대인들을 충격한다.

 

예컨대, 죽은 자를 추모하는 몰리모 축제에서 쓰는 악기인 몰리모 피리를 찾으러 피그미 남자들과 함께 숲 속에 갔던 턴불이 보게 되는 것은, 섬세한 조각과 성스러운 문양이 새겨져 있는 나무 피리가 아니라 흑인 마을의 공사장에서 쓰다 남은 것처럼 보이는 금속 상하수도관을 잘라 만든 초라한 것이었다.

 

예전에는 나무로 공들여 만들었지만 금속 피리가 더 오래 가고, 강물 속에 보관하기도 더 쉬워서 그걸로 바꿨다는 것이 피그미들의 설명이다. 중요한 것은 몰리모 축제 기간 동안 쉼 없는 노래를 통하여 숲을 깨우고 숲을 다시 행복하게 그리고 기쁘게 만드는 일이지,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쓰는 피리가 나무냐 금속이냐를 따지는 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라는 것이다.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의 편리를 도모하는 피그미 부족의 이러한 유연한 문화 감각은 초경을 치르는 소녀들의 성인식 엘리마와 할례를 하는 소년들의 성인식 은쿰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피그미 부족의 성인식에는 주변 흑인 마을에서 거행되는 성인식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혹독한 신체 학대나 엄격한 격리 생활이 없다.


물론 피그미 부족의 성인식에도 육체적 고통이 다소 따르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제 성인의 문턱을 넘어섬을 몸으로 잠시 느끼게 해주는 정도의 상징적인 수준에 불과하며 전체적으로는 유쾌하고 즐거운 축하 행사로 진행된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듯이 어둡고 주술적이며 야만적인 모습이 결코 아니다.

 

피그미 소녀 역시 격리되지만 흑인 마을의 격리와는 달랐다. 아직 초경을 맞지 않은 자기친구들이나 언니들과 함께 지냈기 때문이다. 엘리마 집에서 소녀들은 그 행복한 사건을 함께 축하했다. 존경받는 친척 할머니로부터 임신하고 어머니가 되어 사는 방법을 배웠다. 소녀들은 어른으로 사는 법뿐 아니라 여자 어른의 노래를 부르는 법도 익혔다. 엘리마 집에서는 밤낮 없이 늙은 여인들의 구성진 목소리와 젊은 소녀들의 높고 발랄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엘리마 축제는 여자들뿐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방에서 피그미들이 축하하러 왔고 총각들은 아름다운 소녀들 모습을 잠깐이라도 보려는 마음에 엘리마 집을 둘러싸고 앉거나 서서 시간을 보냈다. 소녀들과 총각들이 함께 부르는 엘리마 노래도 있었다. 소녀들이 복잡한 화음을 이루며 가볍게 떨어지는 곡조의 노래를 부르면 총각들은 우렁차게 합창하며 응답했다. 피그미에게 엘리마는 삶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일 중 하나였다. (242쪽)

 

이처럼 온 마을 사람들이 여자가 되는 일을 축하하고 있으니 밤부티 피그미 사회에서 남녀차별은 거의 없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다른 아프리카 흑인 사회에서와는 달리 밤부티 피그미는 여자라고 차별하는 일은 없다. 여자에게도 충분한 몫의 역할이 주어지고 사냥조차도 남녀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남자들도 버섯이나 견과류를 채집하는 일, 빨래나 아기 목욕 같은 일을 거리낌 없이 해내며 토론이 벌어질 때는 여자들도 스스럼없이 남자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입을 연다. 이 정도면 남녀평등의 문제에 관한 한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 있다고 자부하는 이곳 뉴질랜드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문명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은 아주 오래 전에 잃어버린 숲을, 밤부티 피그미들은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자 고향으로 간직하면서 그 숲 속에서 너무나 행복하고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밤부티 피그미는 숲에 속한 존재다. (……) 숲은 그들의 세상이다. 그리고 밤부티 피그미의 애정과 신뢰에 대한 답례로 숲은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숲 속 동물을 사냥하고, 이방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지천에 깔린 야생 과일을 거두어 먹을 줄 알기 때문이다. (……) 밤부티 피그미는 이방인들에게는 철저히 차단된 비밀의 언어를 알고 있다. 그걸 알지 못한다면 숲 속의 삶은 아예 불가능하다.


밤부티 피그미는 마음대로 숲 속을 돌아다닌다. 몇몇이 작은 무리를 짓기도 하고 사냥을 위해 여럿이 모이기도 한다. 숲에서 위험할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두려움도 없다. 어려움이 없으므로 악령의 존재를 믿을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 숲은 선한 세상이다. (24쪽)

 

3.

 

아주 먼 옛날 인간의 조상은 숲 속 나무 위에서 생활을 하다가 땅으로 내려왔다고 하니, 숲은 말하자면 우리 인간이 떠나온 고향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의 고향인 숲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나와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숲에 대해서 그리움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며, 익숙한 숲일지라도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면 금방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오래 전에 영화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를 보면서 나는 소름이 돋는 공포보다는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절망을 느꼈는데, 그것은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라는 사실의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 <숲 사람들>을 읽는 동안, 오래 전에 품었던 내 절망감이 위로 받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숲을 자신들의 세상으로 삼고 있는 인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숲이 품고 있는 어둠까지도 그것이 숲에서 온 것이라면 좋은 것이라고 믿는 착하고 평화롭고 유쾌한 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숲 사람들>은 오늘날 거의 사라져 버려서 우리 인간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우리의 고향, 숲에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는 희망의 책이다. 자신이 떠나온 고향이지만 이제는 기억할 수도 없는 시원(始原)의 숲이 몹시도 그리운 사람에게는 더 없이 좋은 책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숲 사람들 (The Forest People)

ㅇ 콜린 M. 턴불 (Colin M. Turnbull) 지음
ㅇ 이상원 옮김
ㅇ 황소자리 펴냄
ㅇ 2007년 11월 5일 첫판 1쇄
ㅇ 값 14,500원


숲 사람들 - 인류학의 지형을 획기적으로 넓힌 피그미 탐사 보고서!

콜린 M. 턴불 지음, 이상원 옮김, 황소자리(2007)


태그:#숲 사람들, #피그미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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