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대통령선거가 막이 올랐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지지가 여전히 높다. 그래서일까. 그의 지지율을 두고 국민의 어리석음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오만이다. 명토박아둔다. 범여권 후보들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은, 문제점이 곰비임비 불거짐에도 이명박의 지지율이 고공인 까닭은, 이회창의 지지율이 2위인 까닭은, 현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민의에 있다.
최근까지도 노 대통령의 언행에선 ‘성공한 대통령’을 자부하는 게 엿보인다. 하지만 유권자는 바보가 아니다. 정동영 후보가 지지부진한 까닭은 노 정권을 계승하려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정반대다. 계승하고 있어서다.
노 정권 5년 동안 비정규직은 급증했다. 농민은 물론, 영세자영업자와 도시빈민의 생활도 고통스러워졌다. 남북정상회담도 집권 말기에 서둘러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다. 정권에 대한 서릿발 심판 앞에서 범여권은 겸허할 일이다. 이명박이나 이회창에게 쏠리는 표심은 결코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말만 요란했던 정권에 대한 심판이자 변화를 이루고 싶은 민심의 표현이다.
현 정권 심판하겠다는 게 이명박 지지율의 핵심 바로 그 틈을 가장 잘 이용한 야당이 한나라당이고 이명박 후보다. 이 후보는 일찌감치 '경제 대통령'을 내걸었다. 그에게 도덕성을 기대한 국민은 아무도 없다. 흠이 있더라도 뭔가 변화를 이루리란 기대가 크다. 지지율이 도통 흔들리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자만해서일까. 이명박은 마땅히 해명할 일까지 언구럭 부리며 넘기고 있다. 그는 후보 등록을 마친 뒤 "정말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 제가 가진 모든 경험과 경륜, 지혜를 다해 온몸을 던져 열심히 일하겠다"고 호소했다.
'열심히 일하겠다'는 다짐은 선거 국면에서 그가 즐겨 쓰는 말이다. 문제는 엉뚱하게 그 말을 남발하는 데 있다. 가령 이 후보는 두 자녀의 위장취업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열심히 일만 하면서 살아왔다"면서 “그러다 보니 제 주변을 꼼꼼히 챙기지 못한 허물도 있었다”고 해명했다. 대다수 언론은 그의 발언을 두고 "사과의 뜻을 거듭 표명했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사과인가.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묻고 싶다. 자녀 위장취업이 열심히 일만하면서 살아온 결과란 말인가. 주변을 꼼꼼히 챙기지 못해서 빚어진 일인가. 아니다. 그런 발언은 사과가 아니다. 참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이 후보는 아직 사건의 핵심에 답하지 않았다. 정색을 하고 거듭 묻는 까닭이다. 자녀의 위장취업을 누가 결정했는가. 열심은커녕 아예 일조차 하지 않은 자녀에게 월급을 줄 만큼 지나치게 주변을 꼼꼼히 챙긴 게 아닌가. 그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야말로 심각한 문제다. 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에 살천스레 '법질서'를 강조해왔기에 더 그렇다.
자녀 위장 취업을 누가 결정했는가 명확하게 밝혀라 BBK 주가조작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는 "대선이 비전과 정책경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BBK 의혹에 갇혀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기까지 온 데는 가장 큰 책임이 이 후보에게 있다. 그럼에도 BBK 사건을 비롯해 의혹이나 논란에 앞으로는 직접 입을 열지 않겠단다. '네거티브 공세'라는 게 이유다. 과연 그러한가. 위장취업이나 주가조작 사건 의혹은 '네거티브 공세'가 아니다. 김경준씨 가족의 표현을 빌리면 "(함께 일하던) 한사람은 국제 금융사기꾼이라 불리면서 구치소에서 겨울을 보내고, 다른 한 사람은 차기대통령을 꿈꾸는 모순된 2007년 겨울"은 마땅히 풀려야 한다. 입을 닫을 게 아니라 제대로 열어야 할 때다. 하루빨리 정책선거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이 후보가 끝까지 위장취업을 얼버무린다면,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에 '공정 수사'라는 압력만 줄기차게 행사한다면,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떠나갈 수밖에 없다. 이미 흔들리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그가 노 정권을 심판할 자격이 있을까, 회의적 눈길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명박 지지자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노 정권을 심판할 적임자를 바꿀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