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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 수돗가..절인 배추를 헹군다.
 노천 수돗가..절인 배추를 헹군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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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설과 맞먹을 만큼 요란한  ‘김장철’ 이다. 24일, 25일 전국 고속도로는 김장 김치와 배추를 가득 싣고 이동하는 차량들로 붐볐다.  “배추가 금값이기 때문” 이라고 각종 언론에서는 말한다. 11월 21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유통센터 소매 평균가가 포기당 3480원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배추가 ‘금값’이다 보니 시골에 연고지가 있는 사람들은 직접 방문해서 한 푼이라도 싸게 구매하려고 한다. 또,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은 만사 제쳐두고 ‘고향 앞으로’ 하다 보니 도로가 몸살이라는 것.

부모님이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덕에 배추 값이 금값이든 똥값이든 무감각한 편이다. 집 앞 작은 텃밭에 세 고랑 정도 심으면 우리가족 김장배추는 모두 해결된다. 올해는 130포기를 담았다. 다섯 집(누님 두 분, 형님, 부모님, 그리고 우리집) 식구 한 해 나기에 130포기 정도면 적당하다.

아버지는 ‘총감독’, 난 짬밥 부족으로 ‘잡부’

김장 김치 ..배추속 넣기
 김장 김치 ..배추속 넣기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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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토요일, 만사 제쳐두고 부모님이 살고 있는 충남 예산으로 달려갔다. 김장하러! 좀 더 일찍 출발했어야 했다. 오전 10시, 경기도 안양에서 서해안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도로가 주차장 같았다. 서 서울 톨게이트까지 2시간이 걸렸다. 평소에는 10분 거리다. 국도를 타기로 했다. 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수원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다.

수원에서 발안을 거쳐 삽교천으로 가는 국도를 타기 위해서다. 고향집에 도착하니 오후 2시다. 4시간 걸린 것이다. 서울 태릉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한 형님 가족은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형님 가족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누님들은 일찌감치 도착해서 배추를 절여 놓았다. 차가 막힐 것을 예상, 인천에서 새벽 5시에 출발했다고 한다.

25일, 아침 밥상 치우자마자 일이 시작됐다. 앞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절인 배추를 물로 씻어낸 다음 물기를 쪽 뺐다. 절인 배추에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배추속’을 넣는 고난이도 작업(?)은 올해 일흔아홉인 60년 경력 어머니와 약 30년 경력을 자랑하는 두 분 누님과 형수님이 맡았다.

‘짬밥(경력)’ 이 부족한 아내는 김치 담그고 난 후 먹어야 할 돼지고기를 삶았다. 갓 담근 겉저리에 삶은 돼지고기 싸서 한 입 집어넣으면 굉장히 맛있다.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다. 매형은 거실에서 작업자들 일손이 멈추지 않도록 배추를 골고루 분배했고 나와 스물일곱 조카 녀석은 부지런히 수돗가에서 배추를 날랐다.

올해 일흔 아홉이신 아버지는 ‘명예 총감독’이었다. 명예직이 대부분 그렇듯이 별로 할 일이 없다. 배추가 김치가 되어 통에 담아질 때까지 방 안에서 TV를 보셨다. 김장이 거의 끝날 때까지 나의 2세 하영이(열 살)와 호연이(세살)는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세살배기 호연이 녀석이 ‘천방지축’ 뛰어다녔으면 작업 능률이 50%는 떨어졌을 것이다.

김장하는 동안 ...나의 2세들은 어수선한 모양으로 쿨쿨 잠을 자고
 김장하는 동안 ...나의 2세들은 어수선한 모양으로 쿨쿨 잠을 자고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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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이 몇 년인데 그것도 딱딱 맞추지 못해?” 조카녀석 한 마디에 웃음이 터졌다. 60년 경략 어머니도 멋쩍은 듯 틀니 빠진 홀쭉한 볼 가득 웃음을 띤다. 배추 속이 많이 모자랐다. 남은 배추는 겉저리를 담기로 했다.

겉저리는 남자가 버무리는 것이라며 매형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아내처럼 나도 ‘짬밥’ (경력)이 부족해서 구경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50대 매형의 버무림 질은 20대 청년처럼 힘차고 화려했다.

김장 끝내고 먹는 점심은 꿀맛이다. 겉저리에 삶은 돼지고기 싸서 한 입 넣으니 기대하던 대로 꿀맛이다. 막걸리 한 잔 생각이 간절했지만 운전을 해야 할 입장이기에 꾹꾹 눌러 참았다. 막걸리 한 잔과 가족들 안전을 바꿀 수는 없는 일.

점심 식사 이후 아버지 생신 축하식이 이어졌다. 일흔 아홉 생신은 음력 11월 25일(양력 08년 1월 4일)이지만 한겨울 추위에 빙판이 생기면 가족들이 모이기가 힘이 든다. 기왕 모인 김에 케이크라도 잘라 놓자고 의견 일치를 보았던 것.

국도가 빠르다? 천만에 말씀... 자그마치 6시간이나

배추속 넣기
 배추속 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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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일요일, 돌아오는 길은 더 멀었다. 서해안 고속도로 당진 톨게이트는 예상대로 주차장이었다. 계획대로 국도를 빠졌지만 섣부른 판단이었다. 고속도로보다 훨씬 더 막혔다. 밤 12시가 돼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그마치 6시간이 걸린 것이다. 평소 같으면 1시간 20분 거리다.

내 뒤를 따라 30분 후에 출발한 형수님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5시간 30분만에 서울 태릉에 도착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한 지 벌써 5년째다. 어머니는 “힘에 부쳐서 더 이상 김장 못 해주겠다”는 말을 5년째 반복하신다. 그러다가 막상 김장철이 되면 마음이 그새 바뀌셨는지 김장하러 내려오라고 전화를 하신다.

어머니 전화를 받으면 일단 마음이 놓이고 기쁘다. 아직 김장할 정도로 건강에 자신이 있다는 증거다. 어머니에게 내년 김장철에도 내 후년 김장철에도 전화를 받고 싶다. 더 욕심을 부린다면 10년 후에도, 배추 값 걱정 하지 않고 김장을 했으면 좋겠다.

이번 김장은 명절날 같았다. 도로가 막히는 것도 거의 명절 수준이었고 온 가족이 모여 오래간만에 고향집에 웃음꽃이 피었던 것도 명절 수준이다. 10년 후에도 명절처럼 김장철을 맞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장철,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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