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문명이 우리가 사는 곳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분명 지역민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그 문명이 사람살이와 정신, 문화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면 말이다.
삼국으로 나뉘어졌던 한반도의 고대는 신라에 의해 통일을 이루었고 통일신라의 문화가 곧 한반도의 정신을 이어오는 문화가 됐다. 그 발판이 된 문명이 바로 신라불교다. 구미는 불교가 처음 신라땅에 뿌리를 내린 초전지다.
고구려의 승려인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첫 발을 디디고 모례장자집에서 기거하며 대중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 곳이다. 고대의 종교는 한 시대를 만들어내는 문명의 역할을 했으니 그러므로 구미는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뿌리내린 고대문명의 종착지라고 할 수 있다.
일연선사가 쓴 삼국유사에 의하면 ‘아도화상’은 위나라 아굴마(阿堀磨)의 아들이다. 일명 묵호자라고도 하는데 어머니 고씨 도령(道寧)의 명을 받아 19세의 나이로(신라 19대 눌지왕 때) 불교를 전파하러 고구려에서 신라로 몰래 들어갔다.
선산군 도개면 도개리에 있는 모례(毛禮) 장자의 집에 굴을 파고 살며 낮에는 가축을 치고 밤에는 불법의 진리를 강론하며 3년 동안 살았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는 불교가 융성했으나 신라는 고유의 신앙과 외래문물에 대해 배타적이어서 불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으니 아도화상은 숨어서 포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모례의 시주를 통해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한겨울에도 펴있는 태조산자락에 터를 잡아 신라 최초의 가람인 ‘도리사’를 짓고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한 아도화상은 고대의 구도자였으리라.
지금 이곳에는 모례의 집에 있었던 우물로 추정되는 전모례가정(傳毛禮家井)이 있는데 도문화재자료 제296호로 지정돼 있다. 아울러 묵호자라는 이름으로 불교전파의 첫 문을 열었던 고구려인 아도화상과 불교초전지임을 기념하기 위한 55평 규모의 신라불교초전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또한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져 길(道)이 열린(開) 곳’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도개리는 환경친화마을로 지정돼 전통담장과 조경으로 환경을 정비했고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전통문화체험마을로 조성될 예정이다.
신라초전지마을은 그 초입부터 천 오백년전 불심을 가슴에 안고 신라인들을 포교하러 온 아도화상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낮은 담장에 짙게 드리워진 단풍나무며, 선돌에 새겨진 부드러운 신라인의 미소, 여전히 우물을 채우고 있는 우물물이 중생제도를 위해 일생을 바친 구도자의 모습으로 온전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구미시 소식지 '예스구미'에 게재된 글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