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8일 아침 학교 앞에는 어김없이 전단지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서 있다. 늘 그렇듯 전단지를 아무 생각없이 받는다. 어학원이나 고시 학원 광고겠지 하며 보는 순간, 동공이 커진다. '대학생들의 사랑공간'이란다. '광고까지 하다니 놀랍군' 생각한다. 전단지 하단부를 보니 웬 대학교 이름들이 죽 적혀 있다. 대학 이름을 다 읽어갈 때 즈음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며 거친 말을 내뱉고 싶어진다.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국민대 단국대 동국대 동덕여대 덕성여대 서강대 서울교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서울여대 성균관대 성신여대 세종대 숙명여대 숭실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한양대 홍익대 학생만 가입가능

대학생, 대학원생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한 사이트가 나눠준 전단. 서울에 소재한 몇 개 대학으로 가입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대학생, 대학원생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한 사이트가 나눠준 전단. 서울에 소재한 몇 개 대학으로 가입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 권예지

관련사진보기


가입시 '재학 증명서 발급 위임장' 작성 필수

이 곳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신청 및 입금과 함께 위임장을 작성해야 한다. '신청인을 대신해 재학(졸업)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다'는 위임장이다. 그리고 재학증명 인증을 받은 경우에만 회원 자격이 주어진다.

지난 22일 오픈한 이 곳에 현재 24명의 학생이 가입되어 있다. 비회원 상태에서는 등록회원 목록만 볼 수 있으며 성별, 생년, 학교와 전공을 확인할 수 있다. '여학생의 경우 학과를 공개하기 어려우면 이과, 문과계열로 기입해도 좋다'고 친절히 설명까지 해준다.

운영은 이렇다. 가입 회원 중 마음에 드는 회원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프러포즈 받은 회원이 승낙할 경우 프러포즈 비용을 사이트에 지불한다. 만남 유형도 가지각색이다. 1:1 만남, 전화 프러포즈, 메일 프러포즈, 메신저 프러포즈, 무제한 프러포즈 등이다.

홈페이지 캡쳐화면
 홈페이지 캡쳐화면

대학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인가?

누구나 못 생긴 사람보다는 잘 생긴 사람과 사귀기를 원한다. 게다가 돈도 많고, 학력도 높고 갖출 것 다 갖췄다면 금상첨화다. 결혼을 전제로 하느냐 안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잠깐을 만나더라도 최고 멋진 사람을 내 옆에 두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대학생들 사이에 이런 현상이 예전에 비해 더 심해졌다. 내 남자친구는 혹은 여자친구는 무슨 차를 갖고 있다, 의대생이다, 어느 지역에 산다 등의 자랑을 늘어 놓는다. 주로 물질적이거나 학교 서열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특히나 '학교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소재다.

학생들은, 언론과 선생님, 가정,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깨닫기 전에 공부 못하는 서러움을 먼저 터득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공부 1등'이라는 꼭대기 점만 보고 달려간다. 사람을 나누는 기준도 '등수'가 되었다. 얼마나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고 판단할 줄 아느냐가 아니라 어떤 점수를 받았느냐가 중요해졌다. 사람은 출신 학교와 재산으로 나뉠 수 있다. 명문대 출신과 비명문대 출신. 재산에 따라 상중하. 사람이 두 가지 요소만 가지고 있을까? 아니다. 이 사실은 누구나 안다.

알면서도 두 가지 기준만 고집한다. 대학생 때는 본격적으로 돈을 버는 시기가 아니기에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학력'이 된다. 특히나 청년실업난이 지속되며 더욱 중요해졌다. 학력은 취직의 필수 요소라는 속설이 있다. 말 그대로 속설이다.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해도 취직하지 못한 사람이 있기도 하다. 즉, 대학이 사람의 모든 부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번 계기를 통해 생각해 본다. 우리가 '학력'이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사람을 평가하지는 않았는지, 하나의 잣대로 수많은 가능성을 짓밟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대학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태그:#대학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